[시사프리즘] 육필(肉筆)의 향기
[시사프리즘] 육필(肉筆)의 향기
  • 김현정 교수
  • 승인 2017.05.01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현정 교수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굿모닝충청 김현정 교수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보름 앞으로 다가온 대선 열기가 연일 뜨겁다. 원래 예정된 12월이 아닌, 5월 따뜻한 봄날에 치르는 ‘장미대선’이기에 그 열기가 더 후끈 달아오르는 듯하다. 준비된 공약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들은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민들도 훌륭한 대통령을 뽑기 위해 그들의 공약을 면밀히 살펴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방명록에 쓰인 대선후보들의 필체이다. 각기 다른 대선후보들의 필체를 통해 그들의 성격과 심리, 즉 자신감, 소신과 원칙, 성격, 독창성, 유연성 등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이는 필체에 그 사람의 성격과 심리가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라 하겠다.

글씨를 써 놓은 모양새를 뜻하는 이러한 ‘필체’와 비슷하게 쓰이는 단어로,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의미하는 ‘육필’이 있다. 대표적으로 육필원고, 육필편지, 육필엽서 등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작가의 육필자료는 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육필자료는 컴퓨터로 작성하는 획일적인 필체가 아닌 독창성을 지니고 있기에 더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이 원고지에 시를 쓰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볼 수 있다. 그가 일제강점기에 쓴 육필원고가 있었기에 비록 사후지만, 국민들이 애송하는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육필자료는 작가의 삶을 한 자 한 자 오롯이 옮겨놓은 중요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들의 육필자료를 보는 일은 그들의 삶과 문학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육필원고 1-2쪽

지난 3월 14일부터 6월 말까지 대전문학관에서 기획전시하고 있는 ‘육필자료전-텍스트의 즐거움’은 많은 작가들의 육필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특히 황순원, 서정주, 박목월, 천상병, 신동엽, 김성동, 정호승 등 전국문인뿐만 아니라 이재복, 박용래, 이덕영, 김수남 등 대전지역 작가들의 육필자료도 만날 수 있다. 전시되고 있는 육필자료 한편 한편이 모두 소중하게 다가오지만, 유독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신동엽의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이다. 이 장시는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조선일보에 게재될 때 투고본이 그대로 실리지 않고 수정되어 실려 많은 논란이 된 바 있다. 그의 첫 시집 ‘아사녀’에 수록될 때 신동엽 시인이 초고를 개정하여 싣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신동엽 시인이 이병우 교수에게 영역을 부탁하며 편지와 함께 보낸 육필원고로, 이병우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가 강태근 대전문학관 관장에게 전달해 공개된 자료이다. 따라서 이 육필원고는 분명 초고본(1958. 11. 18)도 아니고, 조선일보에 수록된 수정본도 아니며, ‘아사녀’에 수록된 개정작도 아니다. 그리고 이 육필원고가 언제 쓰인 것인지, 언제 이병우 교수에게 전달된 것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를 유추하기 위해서는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에 대한 면밀한 비교 검토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의 육필원고 중 서화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의 입술에선 쓰디쓴 풀맛 샘솟더군요. 잊지 못겠어요. 몸냥은 단 먹백처럼 애절하구 참 즐거웠어요. 여름날이었죠. 꽃이 핀 高原을 난 지나고 있었어요. 무성한 풀섶에서 소와 노닐다가 당신은 허리 아래로 날 불렀죠.

- 序話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마지막 부분인 “무성한 풀섶에서 소와 노닐다가 당신은 허리 아래로 날 불렀죠.”에 있다. 이 시에 나오는 ‘허리 아래로’가 ‘조선일보’에는 ‘꽃으로’, ‘아사녀’에는 ‘가슴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동엽의 육필원고를 꼼꼼히 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신동엽의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신동엽의 육필을 직접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육필원고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봄이 끝나기 전, 봄 향기와 더불어 대전문학관에서 기획전시되고 있는 많은 문인들의 육필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