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조금만 천천히, 느리지만 행복하게 쉬어가는 삶
[시민기자의 눈] 조금만 천천히, 느리지만 행복하게 쉬어가는 삶
  • 이희내
  • 승인 2017.05.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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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굿모닝충청 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가끔 외국으로 취재를 나가면,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이미지에 대해 종종 듣곤 한다.

스피드한 일처리, 워크 홀릭, 불도저… 아마도 업무의 빠른 처리, 일에 대한 열정,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면등을 이런 단어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마치 미담처럼 듣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과연 속도감 넘치는, 워크 홀릭적 삶을 사는 우리네 인생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몇 년 전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작품 주제를 생각하며 자료를 찾다가,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트란 슬로시티라는 곳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슬로시티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제작팀이 찾는 게 바로 이거다 싶어 바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슬로시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연의 시간’으로 살고 있기에 고장 난 시계도 고칠 필요가 없다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우 시티 네 군데 중 하나, 그 이름도 푸르른 청산도(靑山島)였다.

노오란 유채꽃 향연이 가득한 곳, 금방이라도 서편제 한편이 울려퍼질 것 같은 곳, 금빛 게으른 소 울음과 정직한 땀방울이 거름된 땅. 쭉 뻗은 도로는 아니지만 천천히 갈 수 있는 굽이굽이 길이 펼쳐진 곳. 대전에서도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머나먼 섬 .
유난히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청산도를 2017년 봄, 다시 찾았다.

사람도, 시간도 쉬어가는 섬 靑山島
전남 완도군, 남쪽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청산도. 완도항에서 배로 45분을 가야하는 섬은 거리뿐만 아니라 도시의 삶과도 멀리 떨어진 곳이다. 여의도의 14배나 되는 이곳엔 약 2600명의 사람들이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미 그 아름다운 풍광은 서편제, 봄의 왈츠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다. 2007년 아시아의 첫 슬로우 시티로 지정된 후 더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는 섬. 과연 2017년 봄을 지나고 있는 청산도에는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선착장 앞에는 청산에 단 하나뿐인 버스가 늦어진 배를 기다리고 있다. 정해진 시간 없이 배 도착과 함께 출발한다는 버스. 반들반들한 나무 요금통 역시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굽이 길을 누비고 있다. 기사 아저씨 역시 40여년이 넘게 이 곳을 지키고 계신다고 했다.

이따금 울리는 버스 경적소리는 주민들의 자명종이 되어준다. 이처럼 청산도의 버스는 주민들의 다리이자 시계로 활약 중이었다.

이렇듯 기다림이 미학이 되고, 배려가 되는 슬로시티 청산도.

그래서 이곳엔 시간이 다른 곳보다 더 천천히, 그리고 많이 주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빠르게의 속도 미학을 부르짖었던 대한민국.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감내했는지도 생각해 보자. 제대로 검증조차 안 되며 속도감에 취해 진행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 문제의 수면에 올라앉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쉬어가며,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삶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세상을 찬찬히 볼 수 있으니 좋고, 느리지만 깊다. 느림은 따듯함과 부드러움이며 인격과 오래갈 미래이다. 때로는 시간을 내어 기다리기도 하고 기다려주기도 하면서 여유있게 살아갈 수 있다면, 삶은 풍요롭고 아름답게 된다.

도시처럼 빠르고 곧은 도로는 아니지만 가끔씩 뒤돌아볼 수 있는 길을 걷는 청산도 사람들처럼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빨리 빨리 앞만 보고 가는 삶의 속도에서가 아니라 삶의 호흡을 조절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평화, 안식과 창조의 기쁨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결국 느리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제일 빠른 길일 수도 있다. 여유를 갖고 즐기면 삶이 더 윤택해지고 좋은 것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엔돌핀이 생성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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