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김선미 언론인] 대통령의 멀고 험한 길, 더 멀고 험한 아들의 길
“가짜 파슨스 동기 인터뷰, 그런 거는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 한다”
목이 늘어진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허름한 소파에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대통령의 아들. 아버지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틀 후 한 방송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대선기간 내내 시달렸던 고용정보원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 대선기간 동안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다. “나가서 해명하면 거짓말이라고 공격할 것 아닌가. 함정을 파놓고 도발하는 것이 분명한데 넘어갈 사람이 누가 있나” 승리의 기쁨을 전하는 대통령 가족의 화기애애한 인터뷰가 아니다.
인터뷰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말해주는 듯한 ‘목 늘어진 티셔츠’가 문득 안쓰러웠다. 누군가는 격의 없는 소탈한 모습이라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대통령의 아들이 격 떨어진다고 비난할 것이 뻔하다. 좋은 옷 입고 나왔으면 명품으로 휘감았다는 야유도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하고,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구박한다고 했다.
목 늘어진 티셔츠, 누구는 소탈 누구는 격 떨어진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아들로 산다는 것, 아버지가 대통령에 오르기 전에도 그랬지만 이후는 비틀즈의 노래처럼 길고 험한 길(The long and winding road)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극한의 직업으로 들어선 것 못지않게 아들 준용씨의 삶 또한 꽃길보다는 대선 과정에서 그랬듯 극한의 길일 가능성이 높다.
목 늘어진 티셔츠를 보며 짠한 마음과 함께 프란시스코 고야의 검은 그림 중 하나인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가 떠오른 것도 그런 이유이다. 자신의 경쟁자가 될지 모르는 아들들을 차례로 잡아먹는 고야의 무시무시한 그림에 아버지의 무게에 짓눌린 역대 대통령 아들들의 굴곡진 삶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아들들의 삶은 대체로 평탄치 못했다. 마약을 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폐족처럼 지내고 있다. 이중에는 물론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이 크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다. 모두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둔 원죄인지도 모른다.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림을 떠올린 이유
아들의 병역비리 때문에 낙마해야 했던 이회창, 아들의 특혜 고용 시비로 곤혹을 치른 문재인의 사례에서 보듯 이제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기 보다는 가혹한 검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틈만 있으면 꼬투리를 잡으려고 덫을 놓고 기다리는 반대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환호를 보내고 있는 지지세력 조차 온갖 비난과 조롱, 저주를 쏟으며 등을 돌릴 것이다.
반대세력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대통령 가족의 특혜나 전횡에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결국 과거의 업보이긴 하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아닌 돈 있고 힘 있고 뒷배 있는 자들의 편법과 특권을 진절머리 나게 봐왔고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을 아버지로 뒀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아들이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죄인처럼 숨 죽여 지내야 하는 것은 또 타당한 일인가. 물론 그 누구도 특혜와 편법 불법은 당연히 안 되고 대통령의 가족은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역으로 대통령의 가족이라고 해서 필요 이상의 가혹한 검증대에 세우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 가족이라고 더 가혹하게 다루는 것은 타당한가
최근 게임업계에 최고로 핫한 뉴스가 둘 있다고 한다. 눈치 챘겠지만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넷마블과 스타트업 게임회사 티노게임즈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인 넷마블은 준용씨가 방송 인터뷰를 하던 날 코스피에 상장해 14조원대의 대박 신화를 기록했다. 고교를 중퇴한 방준혁 창업주는 단박에 3조원의 자산가로 등극했다.
스타트업 게임회사인 ‘티노게임즈’는 준용씨가 동업자 4명과 함께 2015년에 설립한 회사로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디자인 총괄을 맡고 있다고 한다. 모바일 게임 ‘마제스티아’ 출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이 대박 나고 회사가 승승장구하면 어떤 평가가 나올까. 자력으로 성공했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칙에 따르면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내며 온갖 특혜, 편법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준용씨는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남 앞에 나서기보다 작업실에 처박혀서 혼자 작업하는 게 즐겁다.”고 밝히면서도 "나 혼자 똑바로 산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대통령의 아들로서 앞으로가 더 두렵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누가 됐든 특권도 반칙도, 차별도 배제도 없어야
넷마블을 능가하는 황금알을 낳을지 모르는 ‘작업이 즐거운 작가일 뿐’이라는 한 젊은이의 꿈과 바람이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좌절되거나 왜곡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오해는 마시라. 이는 비단 문준용 씨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 나올 모든 대통령의 아들, 가족들에 해당되는 일이다. 그가 누가 됐든 특권도 반칙도 없고, 차별도 배제도 없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소망하는 진정한 민주국가이고 선진국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