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제 이 닦는 소리를 경청하면 한 송이 꽃이 피고”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제 이 닦는 소리를 경청하면 한 송이 꽃이 피고”
  • 이규식
  • 승인 2017.05.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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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 닦는 소리를 경청하면 한 송이 꽃이 피고”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정현종, 경청(傾聽) 전부

대화매너에서 경청은 중요하다. 정현종 시인은 그 핵심을 평이한 시어로 풀어나간다.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내심이 관건인데 그것이 그리 여의치 않다. 대화의 원칙은 stop, look, listen으로 말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상대를 바라보면서 말하고 끝까지 듣고 이야기하라는 것인데 이런 원칙이 거꾸로 가는 듯하다. 생각이 나는 동시에 즉시 발설하고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방이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는 도중에 말을 끊거나 가로채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은 몰상식이 아직 건재하고 있다. TV 토론 프로그램으로부터 대선주자 토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말하기, 듣기 매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경청하려면 대화 도중에 고개를 끄덕여 줘야 한다. 상대방 이야기 중간 틈새를 활용하여, 짧게 사이가 생기면 가볍게 끄덕이고 길게 간격이 발생할 경우 크게 끄덕여주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듣고 있는 이야기에 공감이나 이해를 했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듣고 있다’는 표시로 보면 된다. 듣는 내용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최소한의 배려와 아량임에도 이런 동작을 상대의견에 동조하는 제스처라고 생각해서 결코 고개를 움직이지 않는 속 좁은 대화자세가 반복된다. 상대방 목소리가 물리적으로 전달되어 들린다는 차원의 반응에 인색할 필요가 있을까. 

이 작품은 2004년 제12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이라며 시인은 바로 오늘 우리 사회의 소통부재, 경청의 미흡을 내다보았다. 자기 이를 닦는 소리, 아기의 옹알거림,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 왁자지껄한 시장의 소음 더러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억눌렸던 독백 등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서 꽃 한 송이 피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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