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어느 보수주의자의 독백
[시사프리즘] 어느 보수주의자의 독백
  • 강영환
  • 승인 2017.05.29 05: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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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전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

[굿모닝충청 강영환 전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

1. 박근혜대통령을 찍었지만 국민과의 소통을 멀리하면서 최순실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국정을 논한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보수입니다.

2. 국민정서에 밀려서나 과거로부터의 보복의 칼이 아닌, 오로지 법치주의 원칙하에서 모든 국민은 공정하게 재판받아야 한다고 믿는 나는 보수입니다.

3. 대기업의 정경유착과 문어발식 확장, 편법지배구조를 싫어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와 자유시장경제원칙에 맞게 우리 기업은 거듭날 것이라 믿는 나는 보수입니다.

4. 정부의 촘촘하고 많은 역할보다는 ‘작은 정부’로서 민간자율기능을 강화하고, 공무원수를 줄이고, 규제를 최소화하고, 증세를 억제하는 것이 좋다고 믿는 나는 보수입니다.

5. 북한과의 대화와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핵무기와 미사일로 위협하고 이복형을 죽인 김정은에 지금은 퍼주기를 해선 안된다고 믿는 나는 보수입니다.

6. 미국이 마음에 안드는 구석도 많고, 때론 미국 눈치 살피는 정부에 자존심도 상하지만, 우리안보와 경제에 미국은 가장 가까워야 할 나라라고 믿는 나는 보수입니다.

7. 복지가 중요하지만,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는 집행의 효율성을 기해 금수저는 복지를 줄이고 가난한 계층과 서민중심으로 선별적 복지를 선호하는 나는 보수입니다.

8. 대학입시 중심의 획일적 교육정책이 아니라 창의와 인문중심의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며, 특히 자율적 경쟁이 교육의 근간이어야 한다고 믿는 나는 보수입니다.

9. 한 순간 실수로 죄지은 사람들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유영철같은 흉악범에겐 사형을 시켜 거리에 활보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믿는 나는 보수입니다.

10. 동성결혼이나 동성애에 대해선 하늘의 원리를 해치는 길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들 성적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보수입니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일지 궁금합니다. 완전히 망가졌는데 ‘웬 또 보수타령?’이냐고 빈축받을 수 있겠지만, 10개 중 과연 몇 개에 필자와 동일한 생각이나 느낌을 갖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박근혜보수정부와 보수정당 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개명)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 ‘보수’라는 언어는 심각하게 오염되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오염’이 보수의 정체성을 망가뜨렸습니다.
필자 스스로 보수주의자임을 고백한 10개의 주제는 묻혀버리고 썩은 양태만 사람들에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수는 변화하는 세상에 역류하고, 정의롭지 못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며, 약자가 아닌 강자를 위한 정치를 하며, 선거를 이기려고 안보팔이에 냉전논리로만 일관하고, 그래서 결국 보수는 소위 ‘꼴통’세력이자 ‘척결’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런 오염된 보수세력을 끌어내리고 선거로 응징해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정부가 워낙 비상식적인 나쁜 정권으로 고착되었기에, 새 정부는 조금 다른 모습만 보여줘도 상식적으로만 해도 열광적 호응을 얻습니다. 이제 보수는 궤멸의 길에 들어서 마치 20년, 30년 청와대문턱엔 얼씬도 못할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보수를 말했던 이들은 숨죽이고 있습니다.

한국 보수는 큰 위기임엔 틀림없습니다.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복원하기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그러나 ‘정치에서의 보수’는 큰 상처를 입었지만 ‘정신으로서의 보수’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정치싸움에서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떠받든 보수의 정체성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다시 고백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 보수의 정신을 1980년 민주화의 봄을 맞아 사면복권된 김대중 당시 국민연합공동의장의 YWCA연설에서 처음 발견합니다.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그가 꿈꾼 나라에서 보수의 참모습을 느꼈습니다. '자유는 왜 들꽃일까? 정의는 왜 강물일까?' 국가를 보는, 정치를 보는 필자의 눈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자유는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고 이겨내고 커가는, 그래서 경쟁이 매우 중요시되는 가치라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어떠한 보호에 의해 키워져야 할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에도 '스스로 생명을 지켜내야 할 들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들꽃은 스스로의 적응과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다보면 힘세고 체질강한 꽃만 살아남고, 약한 꽃은 시들고 병들고 사라지게 됩니다. 함께 살아가려면 무언가 원칙이 필요합니다. 그 원칙이 바로 정의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의는 강물처럼 흘러야 합니다. 강물은 역행하지 않고, 그저 아래로 흘러갑니다. 정치가 이를 배반할 때, 정의가 구겨질 때 국민은 가만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자유민주주의수호에 동의하며, 증세를 반대하며, 작은 정부를 선호합니다. 스스로의 경쟁이 원칙인 들꽃정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패거리정치, 철새정치를 반대하고 국정농단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권언유착과 정경유착을 반대합니다.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라고 했습니다. 보수의 정체성은 자유와 정의가 살아 숨쉬는 모습입니다. 보수는 온실속 화초가 아니라, 자유로운 들꽃입니다. 보수는 들꽃이 제대로 살아가도록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보수는 개혁해야 합니다. 10개 주제만 남고, 거기에 덧칠된 오염물은 제거되기를 기대하는 저는 보수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보수는 어떤 모습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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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보수 2017-05-31 11:41:12
이제껏 쓴 칼럼들을 쭈욱 살펴보세요. 국정농단 초기시절 박근혜 두둔하는 칼럼만 그렇게 써대시더니 그러면 왜 그당시엔 박근혜만 두둔하셨습니까? 왜 이제 와서 합리적인 보수 코스프레를 하시는건지요? 달면 빨고 쓰면 뱉는게 보수 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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