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틈새’에서 길을 찾는 시각예술가 류경열 씨
[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틈새’에서 길을 찾는 시각예술가 류경열 씨
대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차세대 아티스타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06.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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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②
대전문화재단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차세대 아티스타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은 개인 창작을 극대화 시켜나갈 수 있으며, 신진 예술가들은 서로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문화예술 인적 인프라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7년 모두 24명을 선정했으며 이들의 창작활동과 예술세계를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들이 취재해 널리 알리고자 한다.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대흥동 골목에는 벽과 건물에 난 오랜 상처의 틈새를 붓으로 메우는 작가가 있다. 한 달가량으로 예상하고 시작했던 작은 기획은 어느새 1년 넘게 이어졌고 이 시간 동안 대흥동 거리에 그의 붓질로 채워진 상처들은 200여 개가 넘어갔다.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대성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근무하다 전업 작가로 나선 시각예술가 류경열 씨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 작가로 나섰을 때에는 좀 붕 뜬 느낌이 있었어요. 그때 대흥동을 중심으로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을 추구하는 박석신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화첩기행으로도 유명하시죠. 그분이 중심이 되어 이벤트로 진행하던 틈새벽화 프로젝트인데 저에게 가볍게 제안을 하시더군요. 모두들 한 달 정도 하다 말 줄 알았다는데, 혼자 1년 동안 200개 가까이 채우다보니까 어느 정도 저만의 영역이 구축이 되더라고요. 거대한 벽화가 아니라 작게 갈라진 틈새에다가 제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색감에 대한 자신감도 찾게 되고 나만의 그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류 씨는 첫돌 전부터 자동차를 세밀하게 그려낼 정도로 그림에 대한 흥미와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는 기계의 구조나 회로와 같은 작고 세밀한 것들을 좋아하고 잘 그렸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학업에 밀려 미술과 멀어졌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미술을 시작했다.

이후 미술교육과에 들어간 류 씨는 석사과정까지 조소를 전공한다.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또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 뜨거워지는 예술 활동에 대한 욕망을 누를 수 없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직장을 과감하게 박차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다. 남들이 뭐라고 할지라도 그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 있지만 내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제가 건네는 것들을 금방 흡수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재미도 있고 만족스러워요. 그런데 교사생활이라는 것이 미술과는 상관없는 일도 해야 합니다. 학부모님들도 만나야하고, 잡무도 처리해야하고, 또 퇴근하더라도 일의 연장선상인 경우가 많아요. 이런 생활에 안주하다가는 평생 내 것을 펼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에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서다

류 씨는 자신이 아직 전업 예술가로서 발을 뗀지 2년차이고 조소에서 서양화로 세부 장르를 바꾸었다. 그렇기에 아직 자신의 예술은 성장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작업하려고 하지만 중간 중간 계획대로 되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이제는 나중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는 아직 완벽할 수 없으니까. 이런 것들을 경험 삼아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올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류 씨는 작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틈새벽화 작업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캔버스나 나무, 철 등에 마띠에르 기법을 사용하여 떠오르는 대로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다시 말해 작은 벽화들을 다시 실내 전시용 작품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첫 번째 개인전에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작품을 만들 때는 신나고 즐거웠지만 더 확고한 방향성과 깊이 있는 의미를 담아내는 일에 부족했다고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작년 개인전의 주제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유를 반영하기보다는 일상성과 몸에 밴 즉흥성이 더 많이 드러나고 있었어요. 이런 부분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이것조차도 전체적으로 보면 내 예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한발 한발 나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 길 위에 서는 일, 그 새로운 길 위에 내딛는 발걸음은 누구라도 두려울 수밖에 없다. 류 씨도 많은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불투명한 앞날에 자유로울 수 없지만 자신의 예술을 위해 길 위에 섰다. 류 씨가 가진 특유의 즉흥성과 겸손함 그리고 낙천성이 만드는 삼중주가 그가 선택하고 한 걸음씩 내딛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사실 전업 작가로 뛰어든 일도 어느 정도 제 즉흥적 성격이 작용했어요. 비록 여러 어려움을 만날 테지만 겸손한 자세로 묵묵히 내 작품을 하려고 합니다. 저도 두렵죠. 과연 이게 먹힐까? 맞는 걸까? 주목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의구심과 불확실성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고통조차도 즐기는 것이라고 답을 내렸습니다.”

류 씨는 이런 특유의 뚝심은 좋은 기회도 만들었다. 개인전을 열고 틈새벽화 작업을 계속 이어가던 중 대전문화재단의 차세대 아티스타를 만났고 또 선정되기에 이른다. 그는 새로운 기회를 기뻐하면서도 뜻밖이라고 했다.

“제가 알기에도 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지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됐더라고요. 좀 의아하기도 했어요. 이제 첫 개인전을 열고 길 위에서 작업한 일 말고는 큰 경력도 없고 작가로 경력이 긴 것도 아니까요. 아마 그냥 열심히 해보라는 취지인 것 같아요.”

틈새와 잊혀져가는 것들을 그리다
 
작업실 여기저기에 놓인 그의 작품에서 어느 정도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동물들은 단순화된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평면들은 류 씨 특유의 색감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다시 평면은 작은 패턴들이 반복되는 하부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보면 다시 원래의 형상이 하나하나 재구성되는 그림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여러 단계의 사유를 거친 듯했다. 먼저 그림의 주된 소재가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과 동물 들이는 사실부터 시작했다.

“저는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잊혀져가는 사물, 식물, 동물에 대한 것이죠. 계기는 틈새벽화를 다시 시작하러 대흥동을 둘러보던 중 생겨났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원래 있던 것들이 사라지고, 또 비바람으로 모든 것이 조금씩 낡아가고 있었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림은 그대로 있는데, 계속 그 자리에 있고 싶을 텐데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사라지거나 다치거나 하더군요.”

현재 작업에 등장하는 고릴라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류 씨는 한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고릴라가 천천히 잊혀진다고 느끼고는 고릴라를 그림 속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이렇게 등장한 주인공을 표현하는 방식은 프랙탈과 같은 자연이 보여주는 패턴을 사용하고 있다. 프랙탈은 작은 구조가 증식하여 이와 유사한 큰 구조를 이루는 자연물의 패턴이다. 생체의 혈관 구조, 리아스식 해안선, 나뭇가지의 모양과 브로콜리의 모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표현양식과 더불어 류 씨는 자신이 느낀 세계를 그림에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계 전체는 영원히 있지만 작은 존재들은 그 안에서 깜박이듯 금방 사라지고 잊힌다. 시간의 작용이다. 그는 이런 자연의 운동법칙에 주목하고 있다.

류 씨의 또 다른 개성은 그의 그림 속 틈새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낙서 같은 패턴들은 모여 고유한 밀도를 만들어내고 이 전체저인 그림의 분위기를 떠받친다. 그런데 이 패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미세한 틈새가 나타난다. 작은 틈새는 크게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은 공간이야말로 세계를 구성하고 특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미시세계는 사실 대부분 빈 공간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만질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원리와 같다. 이렇듯 그는 세계 속에 숨겨진 하나의 진실을 자신의 그림을 통해 드러내려 하고 있다.

나만의 길을 향하다

“차세대 아티스타 프로그램에 선정되면서 두 개의 전시회가 잡힌 상태입니다. 작년부터 야외에서 했던 작업들을 야외가 아닌 실내로, 캔버스가 아닌 사진으로 표현한 디지털 인쇄물로 보여주는 아카이빙 사진전이 그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 작업하는 그림들이고요. 문화공간주차에서 10월 셋째 주와 마지막 주를 일주일씩 연결해서 열 예정입니다.”

그는 이렇게 계속 미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계획이다. 예술가의 내면에 집착하기보다는 세상과 소통하고 대중과 호흡을 나누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만나는 사람의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묵묵히 작품을 해나가면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될 거라고 믿고 있다.

“지금으로는 나만의 것, 내 개성을 찾는 일이 목표이죠. 아직은 감각적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더 이론화하고 새로운 경험을 축적해 하나의 스타일을 발견하는 것이죠. 결국엔 저도 제 그림을 봤을 때 누가 보더라도 류경열의 그림이구나, 알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류경열 씨는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허문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을 좋아한다고 했다. 벽화 위주의 대중미술을 하는 사람으로 즉흥적인 스타일도 마음에 맞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항해에 나선 2년차 전업 작가는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오늘도 용기 있는 발자국을 내딛고 있다. 그래서 키스 해링보다 그의 이름이 먼저 검색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과 함께 노은동 어디 그의 작업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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