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의 작은옹달샘] 노년 세대의 청년 세대 발목잡기 그만!
[지요하의 작은옹달샘] 노년 세대의 청년 세대 발목잡기 그만!
  • 지요하
  • 승인 2017.06.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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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소설가

[굿모닝충청 지요하 소설가] 일찍이 서울로 이주하여 터를 잡고 사는 선배가 있다. 나름 열심히 사업에 매진하여 어느 정도 부를 이룬 분이다. 내가 종종 소식을 보내는 등 친숙한 편이긴 하지만 가치관이 통하는 사이는 아니다.

고향에 두고 있는 토지를 내가 관리를 해줄 정도로 친숙한 사이면서도 왜 가치관이 전혀 다를까?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정확한 진단은 아니겠지만, 그 선배의 문화적 문맹이 일차 요인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일찍이 문자적 문맹에서는 벗어났지만 문화적 문맹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독서를 하지 않는 습성 때문이다. 그 부인의 전언에 따르면 그가 책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고장에서 땀 흘려 만든 동인지 등을 매번 그 선배에게도 보내며, 한 번은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자신이 금전적으로 도움을 베푼 책인데도, 그런 책조차도 전혀 읽지 않는다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고 더럭 섭섭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매번 책을 보내는 것은 그 책을 그의 부인이 읽고 아들이 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그 선배가 내게 직접 토로한 적도 있다. 자신은 읽지 않지만 집사람이 읽고 아들이 읽는다는 말을 호기롭게 하며 제법 호탕하게 웃은 적도 있다.

나는 그 말이 섭섭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간혹 전화 통화를 할 때 그 부인과 아들의 말소리에 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실려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 대한 반색과 정감 표시는 내 글들을 읽고 감동도 받은 탓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산뜻 좋아진다.

거리행진 제20차 촛불집회 후 거리 행진을 하고 있는 촛불시민들.

70대 중반인 그 선배에게는 서른이 넘은 아들이 하나 있다. 내리 딸만 여럿 낳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얻었는데, 그 선배는 외아들과 세상을 보는 눈이 180도 달라서 가끔 충돌을 빚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선배는 '태극기집회‘에 기를 쓰고 참가하는 도드라진 꼰대인 반면 그 아들은 광화문광장에 가서 밤늦도록 촛불을 드는 ’촛불시민‘이니 그들 부자의 갈등과 충돌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해 제20대 총선 때는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또 한 번 충돌이 빚어졌다고 한다. 북한의 핵 개발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퍼주기를 한 결과라는 아버지와 그것은 반대 정파와 어용언론들의 악의적인 날조일 뿐이라는 아들의 주장이 정면충돌했고, 상심에 지친 아들은 집을 나가서 외박을 한 일도 있다고 한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 선배의 외아들은 아저씨라고 부르는 나와는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 인터넷과 SNS 덕분에 나에게서 자주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내 글들을 통해 나와 내 아이들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고 가치관이 일치하는 것을 보고는 내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난봄의 제19대 대선 국면에서도 그 선배와 외아들의 가치관이 정면충돌했다. 그 선배는 문재인이 당선되면 북한에 마구 퍼주기를 해서 나라 살림이 더 어려워질 거라는 주장을 폈고, 광화문광장에서 또 한 번 촛불을 들고 온 아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왜곡되거나 실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통발달의 시대에 걸맞은 ‘열린 눈’이 필요하고도 중요하다고 연로한 아버지께 되바라진 말을 했다.

친박단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며 서울 시청 일대에서 맞불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3월 10일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인용했다.

그동안 남편과 외아들 사이에서 곤란을 겪었던 부인이 대선 국면에서는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앞으로 살날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당신이 자꾸만 젊은 아들의 앞길을 막고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요.”

당돌한 아내의 응수에 깜짝 놀란 그 선배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아내를 바라보기만 했다.

“당신은 결코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지만, 젊은 아들에게는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야 할 책무가 있어요. 아버지로서 젊은 아들의 뜻을 살피고 따르는 것도 지혜임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지금 나더러 문재인을 찍으라는 겨?”

“그건 나중 일이고요”

“그럼…?”

“옛날 서당에서 공자와 맹자를 가르치던 시절에는 어른의 말씀이 곧 지혜이고 길잡이였지만,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는 노인의 고집을 버리고 젊은이들의 듯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구요.”

처음엔 아내의 뜻밖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화를 내기도 했던 그 선배는 점차 태도가 누그러지더니, 다음날 놀랍게도 자신은 문재인도 홍준표도 찍지 않고 안철수를 찍겠노라는 말을 했단다.

그것만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선배의 부인은 자신과 아들은 물론이고 딸들과 사위들 모두 문재인을 찍기로 했다는 말을 했단다.

결국 제19대 대선에서 부인이 승리했고 그 선배는 패배를 한 셈이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아직도 문재인에 대한 오해와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요즘 문재인이 천정부지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생각을 고수한다.

“촛불은 꺼지기 쉬운 거야. 여차하면 금방 꺼지고 말 거야. 심지가 다 타면 꺼지기 마련이고, 강한 바람 앞에 꺼져 버릴 수도 있어. 촛불의 생명력을 너무 믿었다간 큰 코 다쳐.”

내가 그 선배께 한마디 물었다.

“설마 형님이 그것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그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그건 왜?”

“촛불이 맥없이 꺼져버리거나 소멸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결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종북 세력이고 빨갱이들이지요.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촛불이 혁명의 꽃으로 승화되고 나라를 바꾸는 힘으로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랄 겁니다. 그러니 형님도 형수님과 아들처럼 촛불을 지키는 힘으로 남아 주십시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좀 과한 말을 한 건지도 모르지만, 다행히도 그 선배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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