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노인' 공동육아 새모델 구현
'유아+노인' 공동육아 새모델 구현
직장보육시설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 박현숙 원장
  • 최재근 기자
  • 승인 2012.07.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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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아이들과 경로당 노인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동거(?)를 한다. 피붙이도 아니다. 단지 같은 동네에 살 뿐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생소한 조합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노인들은 한없이 살갑고 행복한 모습이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가슴팍에 안기고, 노인들은 '아이고 우리 새끼' 하며 쓰다듬고 보듬어준다.

지역사회와 부모, 교사, 아이들이 함께 만드는 공간. 대전 유성구 관평동 대덕테크노밸리 내에 있는 '뿌리와새싹 커뮤니티센터'가 지역공동체복원을 위해 펼치고 있는 실험이다. 벌써 3년이 지났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보란 듯이 성공을 일궈나가는 중이다. 동네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학부모들이 마음으로 섞이고 부대끼면서 지역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는 박현숙 원장.
그 중심에 '뿌리와새싹 어린이집' 박현숙 원장(46)이 있다. 박 원장은 대전 사람이 아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다. 하지만 ‘이대 나온’ 여성이다. 남들처럼 평범한 길을 가고자 했다면 서울에서 맘 편히 살 수도 있었다. 그런 그가 3년 전 대전으로 왔다. 오로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은 영유아 교육에 학부모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 학부모들이 조합을 만들어 출자를 하고, 어린이집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연히 교육은 영어나 수학과 관련된 지식습득이 아니라 생태교육을 통한 아이들의 오감(五感)발달을 지향한다.

"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보니 태어날 아이 교육이 걱정되는 거예요. 유치원 교사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 일반적으로 실시되던 영유아교육은 믿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던 중 70년대부터 서울에서 빈민탁아 운동을 하던 연구그룹이 중산층 영유아에 대한 보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 공동육아라는 화두를 던졌고, 실제 94년 서울 신촌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설립한다고 참여할 학부모들을 모으더라고요. 눈이 번쩍 뜨였죠.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초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신촌어린이집'에 교사로써, 학부모로써, 조합원으로써 참여를 했죠."

그렇게 7년을 보냈다. 아이는 바르게 성장했다. 그것을 보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대한 박 원장의 신념은 더욱 두터워졌다. 때마침 남편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경기도 평택으로 귀농을 했다. 남편을 따라 평택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박 원장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대한 생각의 끈은 놓지 않았다. 곧바로 어린이집 설립에 나섰고 평택 최초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탄생시켰다.

"평택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중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서 아이들과 노인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당시 참여했던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을 통해서 였지요. 대덕테크노밸리를 개발한 한화가 기업들이 참여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놓는다는 것인데, 너무 덩치가 크고 별다른 지원책도 없어 다들 운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유아와 노인 공동공간이라는 취지에 끌리더라고요. 그래서 결심을 하게 됐죠. 그때가 2008년 이었어요."

낯설었다. 아는 이도 없고, 기업이나 주민들이 공동육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더구나 생태유아교육프로그램을 이해하지 못하고 ‘애들을 놀리기만 한다’는 소문까지 나기도 했다. 암담했다. 그래도 일단 인근 기업 600여 곳에 설명회 공문을 보내고 찾아갔다. 반응은 냉담했다. 매번 “직원 중에 애 있는 집이 2, 3명밖에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번듯한 직장보육시설을 지었지만 막상 참여해야 할 기업들은 관심도,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설명회에는 10여 업체만 참여했다.

“속이 타 들어갔죠. 긴가 민가 했던 생각이 현실로 닥쳤어요. 포기할 수는 없었죠. 전략을 바꿨습니다. 기업의 윗선을 만나는 대신 아이를 가진 직원들을 직접 접촉하며 어린이 집을 홍보하는 ‘맨투맨’전략으로요. 직원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직원들이 거꾸로 기업에 요청을 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기업들이 하나 둘씩 가입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업체가 45곳. 지금은 50개 업체로 늘어나 진정한 직장보육시설로 자리를 잡았다. 2008년 문을 열 당시 14명이던 아이들은 지금 92명으로 늘어났고 교사도 4명에서 14명이나 됐다. 대기자만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부모들도 열심이다. 뿌리와새싹어린이집 부모회를 결성, 연말이면 봉사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따로 아빠모임도 있다. 캠핑도 가고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수행중이다. 아이들 키우기가 수월해지다 보니 셋째를 갖는 부모들도 늘었단다.

▲ 뿌리경로당 할아버지가 뿌리와새싹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곤충에 대해 얘기해주고 있다.

어린이집의 안정은 경로당과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뿌리경로당과 함께하는 아동-노인 통합프로그램은 우수 사례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상까지 받았다. 세시(歲時)와 절기(節氣)에 맞춰 전통놀이를 하는 것은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먹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대보름날이나 단오날에는 지역 주민과 함께한다. 노인, 아이들은 물론 지역주민들도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노인일자리 창출과고 연계해 아이들이 하는 일상 나들이에 노인 6명이 함께 하고 있다.

어린이 공간인 뿌리와새싹어린이집과 뿌리와새싹어린이집부모회(아빠회)와 노인들의 공간인 뿌리경로당이 ‘뿌리와새싹 커뮤니티 센터’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

커뮤니티 센터 사무국장은 남편인 권영학(48)씨가 맡아 든든한 지원군이자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남편이 어린이집 운영 이외의 모든 일을 다 해줘요. 사무적인 것은 물론 부모회, 경로당과 관련된 일들은 총괄해서 관리를 해주니까 수월하죠.”

어린이집에서 박원장은 ‘깨몽’으로 통한다. 공동육아 초창기 때 피곤하다보니 자주 졸아서 잠 좀 깨라고 남편이 지어준 별칭이란다. 남편 권씨는 ‘조약돌’로 불린다. 모나지 말고 둥글둥글 살고자 지은 이름이다.

“부모가 아니라면 못했을 거예요.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직장보육시설도 정부에서 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민간에게 전가한 것이지요. 정부에서 저출산을 고민하고 있지만 보육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봐요. 정부나 지자체가 이제라도 보육문제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안심하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시설을 더욱 확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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