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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프리즘] 다산 정약용과 행복의 의미

    김현정 교수
    문학평론가, 세명대 

    [굿모닝충청 김현정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 부교수] 지난 6월 8일에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도색작업을 하던 인부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년 전 결혼한 사랑하는 아내와 아직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5남매를 위해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던 그가 갑자기 밧줄이 끊겨 15층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남은 가족의 생계 또한 막막해졌다.

    평소 인부들은 공포증을 잊기 위해 휴대폰의 음악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일하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파트주민 한 명이 휴대전화의 음악소리가 시끄럽다고 동료들과 함께 밧줄을 타고 도색작업을 하던 한 인부의 밧줄을 끊은,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주민의 성화에 다른 인부들은 휴대전화를 껐으나 그 소리를 못 들은 인부는 계속 도색작업을 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처음엔 겁을 주려고 칼을 들고 올라갔는데 음악소리가 계속 흘러나와 홧김에 줄을 끊었다”라는 그의 진술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다. 그 주민 또한 숨진 인부와 비슷한 힘겹게 일하는 노동자라는 점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가 3-4년 전에 폭력 등의 혐의로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고,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는데 일을 얻지 못해 술을 마신 상태였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고귀한 생명을 너무 하찮게 여기는 모습이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러한 황당하고 어이없는, 슬픈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때 문득 다산 정약용이 떠올랐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아버지 사도를 위한 정조의 숙원사업인 수원화성을 완성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정약용이 아니라 정조가 승하한 뒤 서학 혐의를 받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지를 떠나는 정약용을 말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셋째 형 약종이 옥사했고 그는 둘째 형 약전과 함께 기나긴 귀양살이를 떠난 것이다. 최근에 나온 다산과 관련된 저서인 ‘다산, 행복의 기술’(장승구, 커뮤니케이션북스)에 따르면 신유박해로 다산은 커다란 트라우마를 입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 (권력)상실의 트라우마, 지인으로부터의 배신감, 유배지에서의 외로움, 모욕감, 경제적 고통, 부자유의 고통 등. 하나의 트라우마만 있어도 힘들 텐데, 다산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시는 당시 힘들고 외롭고 쓸쓸한 심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곡식 있어도 먹을 사람 없는가 하면 / 자식 많은 자는 배고파 걱정이고 / 높은 벼슬아친 꼭 바보여야 한다면 / 영리한 자는 써먹을 곳이 없지 / 온갖 복을 다 갖춘 집 적고 / 최고의 길은 늘 쇠퇴하기 마련이야 / 아비가 인색하면 자식은 방탕하기 쉽고 / 아내가 지혜로우면 사내는 꼭 어리석으며 / 달이 차면 구름이 자주 끼고 / 꽃이 피면 바람이 망쳐 놓지 / 천지만물이 다 그렇고 그런 것 / 혼자 웃는 걸 아는 사람이 없네

    -‘혼자 웃다(‘獨笑’)’ 전문


    그럼에도 그는 결코 삶을 좌절하거나 포기하기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어려운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이 세상에는 어느 집이나 완전한 복(完福)이 드물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다산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복이 아닌, 맑고 그윽한 복인 청복(淸福)을 추구하였다. 유배지의 고난을 자신을 좀 더 단련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 자아실현의 장으로 삼았던 것이다.

    요즘 극도의 외로움과 분노, 트라우마를 또 다른 분노로 표출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정신적 공황, 조울증, 정신분열증 등으로 명명하여 감금 내지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가두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트라우마를 지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아를 단련하여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나아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김현정  kim66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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