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천안역 엘리지
[시민기자의 눈] 천안역 엘리지
  • 홍경석
  • 승인 2017.07.11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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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홍경석 수필가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홍경석 수필가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천안역사 앞엔 천안의 상징인 커다란 능수버들이 우뚝 서있었다. 또한 천안역사 내엔 여행장병안내소가 있었다. TMO(Transportation Movement Office)로도 불리는 이곳엔 항상 열차를 타려는 군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엔 가락국수를 파는 집과 매점, 그리고 충남지방으로 떠나는 차부(현 터미널)가 위치했다. 때는 197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내 나이 열네 살 때로 연어처럼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겨울날 지독스레 춥던 날에도 나는 천안역 앞에서 구두를 닦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학교의 졸업식 날이 도래했다. 하지만 홀아버지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에 의거, 나는 그날 역시도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시간은 더 흘러 꽃피는 춘삼월이 찾아왔다. 또래 아이들이 까만 중학교 교복을 입고 내 눈앞에서 알짱거렸다. ‘니들 지금 내 염장을 지르는 거니?’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을 차마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행여 “앗~ 너, 경석이 아니냐?”며 아는 체라도 하는 국민학교 시절 급우를 만날 수도 있는 때문이었다. 그럼 과연 그 얼마나 ‘쪽 팔리는’ 일인가! 어느 날 봄을 재촉하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체 없이 공설시장 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우산 도매 집에서 비닐우산을 떼왔다. 그걸 천안역에서 나오는 승객들에게 팔았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우산을 팔다보니 정작 내 몸은 비에 젖어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여간 비가 그칠 즈음이 되자 비로소 시장기가 몰려왔다. 차부의 뒤에 있던 천막집 국숫집으로 갔다. “아줌마~ 국수 하나 말아 줘유.” “오늘은 우산 좀 많이 팔았니?”

“비가 오다 말아서 소용 읎슈.” 아줌마는 고봉(高捧)으로 그릇이 넘치도록 국수를 담아주었다. 입이 미어져라 국수를 먹고 있는데 국숫집 아줌마의 아들이 들어섰다. 나보다 서너 살은 어려보이는 녀석이었다.

“엄마~” “어이구, 우리 아들 왔쪄? 국수 줄까?” “응~” 아줌마는 토렴을 한 국수를 자기 아들에게 건넸다. “많이 먹어, 우리 아들~” 그처럼 사랑하는 아들을 정성으로 반기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도 고왔다. 그러면서도 슬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았다. ‘왜 나는 저런 엄마가 없는 것일까?!’ 세월은 여류하여 나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들에 이어 딸도 낳았다. 내가 받지 못 한 것은 대저 가슴에 묻는 한으로 각인되기 마련이다.

하여 나는 두 아이를 진정 사랑과 칭찬으로만 키웠다. 지난해 설날엔 근무로 말미암아 집에 못 온다며 그 전 주말에 두 아이가 모두 집에 온다고 했다. 올 3월엔 딸이 아들보다 먼저 결혼했다.

내 사랑의 모두이자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참 고마운 내 아이들...... 집에 온 아이들이 각자의 집인 경기도 동탄 신도시와 서울로 갈 적엔 반드시 경유해야 마땅한 곳이 바로 천안역이다.
그래서 말인데 나에겐 여전히 ‘천안역 엘리지(elegy)’라지만 아이들이 천안역을 지날 때는 늘 그렇게 천안의 또 다른 명물인 호두과자처럼 달콤하고 좋은 인상만을 지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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