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몸짓 하나로 공간을 채운다 무용가 황지영
[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몸짓 하나로 공간을 채운다 무용가 황지영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07.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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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⑧
대전문화재단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차세대 아티스타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은 개인 창작을 극대화 시켜나갈 수 있으며, 신진 예술가들은 서로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문화예술 인적 인프라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7년 모두 24명을 선정했으며 이들의 창작활동과 예술세계를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들이 취재해 널리 알리고자 한다.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조명 하나만 켜진 어두운 무대 위에 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며 날아든다. 잠시 내려앉는가 싶더니 나비는 곧 힘찬 날갯짓으로 새가 되어 날아간다. 새는 낙엽으로, 카멜레온으로, 고뇌에 찬 사람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현대기술을 동원한 컴퓨터그래픽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몸으로 만드는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무용가 황지영 씨는 대전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한 뒤 석사와 박사학위를 수료하고 지금은 학술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는 ‘메타 댄스 프로젝트’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충남대학교와 강원대학교에서 무용학과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황지영 씨의 무용 경력은 다른 사람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무용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무렵부터 무용가의 삶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황 씨는 대학에 입학하기 바로 전에 무용을 택했다. 그럼에도 지금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춤이 참 좋았거든요.”

춤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댄스플로어에 발을 디디는 순간, 몸에는 전율이 일고 마음이 붕 뜨기 시작해요. 그렇게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출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무용은 1회성이잖아요. 두 달간 힘들게 연습해서 무대에 한 번 올리는데, 준비하는 기간 동안 온몸을 쥐어짜면서 안무를 만들고 무용수들과의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 몸은 피곤하고, 그런데 이 모든 고통이 무대에 올라 관객 앞에서 춤을 추고 나면 그냥 다 행복한 기억으로 바뀌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모두 끌어안고 서로를 격려하는 과정도 뿌듯하기만 하고요. 몸짓 하나하나로 관객과 소통하는 희열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무용 안에는 고전무용,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여러 장르가 있다. 이중 황 씨가 선택하고 몸을 담고 있는 분야는 현대무용이다. 황 씨는 많은 사람들이 무용은 몸으로만 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했다. 본인도 그런 줄 알았지만 직접 현대무용을 시작하고 또 공부하면서 머리를 포함해 모든 부분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현대무용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 또 보고 해석하는 것을 어떻게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연구하고 고민해 표현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까 머리도 많이 써야 하는 거예요. 그 과정이 힘들면서도 재미있어요.”

무용으로 관계를 파고 들다

현대무용은 1920년대 후반, 춤도 시대가 마주한 문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예술의 전면에 나섰다. 동작이 무용을 만드는 재료로 쓰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작 그 자체가 무용의 본질이고 실체임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인위적인 동작을 재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 움직임으로 보여 주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과 같은 스토리텔링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그림과 글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보여준다면 무용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매체로 근육의 움직임을 선택한 사람이다.

“현대무용이 이렇기 때문에 무용가가 춤을 통해 전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해요. 저요? 저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관계’예요. 나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주목하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있는 관계를 고민하고 보여주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 개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까지 보여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요. 작은 문제들을 풀어나가다 보면 전체의 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면 사람 사이의 관계들은 무용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추상을 눈에 보이고 잡힐 것 같은 이야기로 보여주는 예술로서 무용은 몸으로 어떻게 말하는지 방법론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무용가가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죠.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움직임에 대한 연구예요. 단순히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니까요.”

잠깐 답답한 표정을 짓던 황지영 씨는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걸어와 의자에 앉는 동작을 직접 보여주었다. 말보다 몸이 앞서는 무용가의 본성 그대로였다. 먼저 발레리나의 우아한 동작으로 사뿐사뿐 걸어와서 깃털처럼 가볍게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같은 동선으로 움직여 의자에 앉았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벽에 부딪히며 쓰러질 듯 휘청휘청 걸어와서 털썩, 의자에 몸을 던지고도 마치 덜 찬 쓰레기 봉지처럼 의자의 등받이에 쓰러졌다. 

“이것이 현대무용과 발레가 다른 점이예요. 같은 장면이라도 관객들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걸어올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될 터이고요. 이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까, 벽과 부딪히게 할까, 더 나긋하게 표현해볼까, 이것이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고민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죠.”

황 씨는 이런 움직임과 안무에 덧붙여 현대무용이 가진 또 하나의 표현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공연장과 같은 다양한 공간의 특성을 활용하고 그 안에 설치해 공연에 더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장치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공간의 구조, 조명, 음향까지 더 효과적인 조연으로 활용해 더 많은 내용들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공부할 거리도 더 늘어났다고 푸념 아닌 푸념도 풀어놓았다.

이런 고민과 노력의 결과로 빛을 본 그의 작품이 있다. 그가 안무를 짜고 출연한 초연작으로, 올 6월에 대전 예술가의 집에서 주최한 제16회 뉴댄스 페스티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더미’라는 작품이다. ‘더미’라는 단어는 마네킹, 꼭두각시, 로봇의 별칭으로 사용되기도 하면서 또 바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더미’는 이런 상징을 가지고 권력에 대한 질문을 몸으로 표현해내면서 동시에 그것이 갖고 있는 무지와 무기력을 드러내려 시도한 작품이다. 이렇게 작품을 고민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지향점이나 롤모델이 있었다면 누구였는지도 궁금했다. 그가 가진 성향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롤모델을 정하고 춤을 춘 기억은 없어요. 이건 제 성격 같기도 해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무엇을 꿈꾸는가’라는 좌담을 열었는데 그때 ‘나는 무슨 꿈을 꾸지?’라는 생각을 했죠. 막상 떠올리려니 딱히 꿈을 꼽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해봤죠. 늘 눈을 들면 제 앞에 춤이 있었고, 그래서 춤을 췄어요. 먼 미래의 그림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었던 거죠. 후회도 없고요. 그냥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코스모폴리탄 무용가

매 순간에 충실한 그의 자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메타 댄스 프로젝트’라는 무용단에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메타 댄스 프로젝트’는 대전의 안무가와 댄서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이곳에 모인 무용가들은 개인적인 예술 활동과 단체 활동을 병행하면서 국제적으로 뻗어나가고 발판을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황 씨는 새로운 동기를 찾는다. 개인의 역량이 바로 전체의 발판이 된다는 사실이고 우물을 뛰어넘어 바다로 나가려면 몸이 부서지도록 부딪혀야 한다는 현실이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기 시작한 이즈음 그는 대전문화재단에서 찾고 있던 차세대 아티스타에 선정되었다. 1회 공모에 지원했던 선배를 통해 알게 된 후 실패를 겪고 선정된 그는 올해로 아티스타 2년차이다. 황 씨는 1년차 아티스타 사업을 통에 다녀온 ‘아메리카 댄스 페스티벌’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의 무용가와 안무가들이 참가하는 ‘아메리카 댄스 페스티벌’은 캐롤라이나주 듀크대학에서 6주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그 시간 동안 완벽하게 춤에만 집중할 수 있게 짜인 일정은 참가자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일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말 춤만 췄어요. 세계적인 안무가들의 공연을 보고 또 계속 춤을 추는 거예요. 요가나 발레 수업을 들어갈 수도 있고요. 춤만 출 수 있으니까 아무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게 참 좋았어요. 사실 무용가라고 해도 춤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데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란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있는 공간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춤만 출 수 있었던 일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세계적인 무용가들과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댄서들을 보면서 새로운 표현과 움직임,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시야가 많이 트였고 정서적으로도 흡족했고 자아를 찾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그의 얘기를 듣는 일 만으로도 자유롭게 춤에 집중하는 현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황 씨는 아티스타 2년차인 올해 개인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은 공간과 재정의 규모에 맞게 설계된 새로운 시도로 채워질 것이라고 했다. 

“점점 소외되고 고립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어요. 혼자여서 고독한 사람들의 서글픈 삶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제목은 ‘도시의 다락방’이라는 걸고 소주제들을 나열한 옴니버스 형식이 될 거에요.”

아직 완전하게 틀을 갖추지 않은 공연에 대해 말을 아끼는 황 씨이지만 10월 공연을 목표로 공간과 연출, 움직임 하나하나에 관한 고민을 숨기지 않았다. 공연 준비뿐 아니라 그는 더 많은 예술가와의 교류를 준비하고 있다. 차세대 아티스타들의 모임도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고 여기에 다른 장르, 다른 지역의 예술가들과 소통하며 현대무용이라는 장르의 발판을 더 넓혀갈 계획이다. 많은 사람, 더 넓은 지역과의 교류가 바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제 황지영 씨의 현대무용이 대전뿐 아니라 전국, 또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예술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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