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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호의 7번국도 라이딩] ④동해안 최고의 코스 ‘주문진-경포대-정동진’
    •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7.07.17 16:02
    • 댓글 4

    7번국도는 부산에서 출발해 경북 포항·영덕·울진과 강원도 삼척·동해·강릉·양양·고성까지 총 연장 513.4㎞,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국내 최고의 여행코스다.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끼고 곳곳에 펼쳐진 해변이 절경을 이루고, 항포구마다 뱃사람들의 진한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때론 자동차로, 때론 자전거로, 때론 걸어서 이 길을 꼭 가고 싶어 하는 이유도 모두 이런 이유다. 거침없는 ‘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가 지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이 길을 달리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소회를 독자들에게 전해왔다. 1만 8000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글이 마치 우리를 7번국도 한복판에 데려다놓은 듯하다. 앞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그의 글을 소개한다.

     

    이제 힘 있게 달리는 구간이다. 지경공원까지 1시간 정도 쉬지 않고 달렸다. 15㎞는 족히 된다. 지경공원은 근린공원이다. 공원이라야 특별한 것 없다. 길이 좋다. 멀리 바다를 보면서 라이딩 할 수 있다. 철조망이 문제다. 마음 또한 장벽을 만든다. 가장 큰 곤란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다지만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하기가 생각뿐이다.

    주문진항까지는 5㎞. 길을 좀 헤맸다. 국도 따라 가다가 다시 해안길로 머리를 돌렸다. 자전거 길은 희미하다. 어느 정부가 했든 간에 좋은 사업은 더 발전시켜야 한다. 한마디로 그냥 방치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야 한다. 동해안 자전거 길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일반도로에 푸른색 줄만 그었다. 풍경이 어지간한 불평불만을 그냥 날려 보내지만.

    1㎞쯤 되는 향호해변·주문진해변을 거쳐 주문진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점심을 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홍게를 먹는 사람이 많았다. 주문진항은 홍게로 유명하다. 다리가 긴 홍게는 먹을 것이 없어 보였다. 옆자리 두 연인은 아무 말 없이 가위로 다리를 자르고 긴 갈고리로 속을 판다. 홍게에 몰입 중이다. “나는 먹고 있다, 고로 행복하다.” 우리는 회덮밥을 시켰다.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경포대까지 꼬박 1시간이다. 쉬지 않고 달린다. 파도는 여전히 성난 사람마냥 징징댄다. 흰 눈을 크게 뜨고 왔다가 모래사장에 가래를 내 뱉고 물러간다. 가도 가도 나오는 해변은 해변마다 구분하기가 어렵다.

    40분 정도 가니 도로 옆에 교산 허균(蛟山 許筠) 시비 안내판이 홀로 서 있었다. 참 볼품없었다. 만고역적의 모습은 지금도 그렇구나. 덤불 속 한 참을 찾았다. 길도 길 같지 않은 숲속 오솔길에 있었다. 교산은 자기 고향 뒷동산 이름이다. 교(蛟), 이무기 교자다. 용이 되지못한 상상의 동물이다. 여러 해 묵은 구렁이도 이무기라 한다.

    벼슬을 하여 세상의 빛이 되려면 능력은 물론 시대적 배경이나 도(道)가 자기와 맞아야 한다. 자기인생을 예측하기는 참 어렵다. 관상(觀相)이나 수상(手相)은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한 인생을 예단 할 수 없다. 우리는 점을 친다. 인생가도에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이 있다. 점은 최후적이다.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후에 찾아야 한다.

    40대 초반 대전시 국장으로 있다가 선거에 나왔다. 당시 사표를 낸 후 시장과 커피타임을 가졌다. 나에게 한 첫 질문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당연히 조직이니 자금에 관한 질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뜸 점을 쳐봤느냐 물었다. 더 많이 산 인생 선배의 지혜다. 살다 보면 세상이 생각대로 노력한 만큼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는 기적도 있고 슬픔도 있다.

    허균은 그 시대와 맞지 않았다. 지적 소수자로 ‘불온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홍길동’의 길동이처럼 율도국이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 영국의 민주주의는 1215년 대헌장으로 시작하여 1689년 명예혁명으로 완성했다. 적어도 500년이 필요했다. 허균도 알았을 게다. 교산의 교는 미완성이 본질이다. 그는 시로 자기 마음을 위로했다.

    빈 항아리 차를 거르고
    한 잡음 향 피우고
    외딴집에 누워
    건곤(乾坤)고금을 가늠하노니
    사람들은 누실(陋室)이라 하여
    살지 못하려니 하건만
    나에게는 신선의 세계이다.

    홀로 숨어 사는 즐거움을 표현했다. 진심이 아닐 게다. 비장한 것이다. 그가 귀향 처에서 지은 한중록(閑中錄) 서문에서 그의 심정의 일단을 털어 놓았다. 선비가 어찌 벼슬을 더럽다 하여 버리고 산림에서 오래 살기를 바라겠는가. 도가 세속과 맞지 않고 그 운명이 때와 어긋나 고상함을 빌미로 세상을 피한 것이다.

    그는 역적으로 몰려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이상은 ‘홍길동전’을 통하여 후세에 불씨를 남겼다. 그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잊혀야 진짜 죽은 것이다. 그의 이름이 아직도 우리 세상에 엄연히 살아있다.

    경포대 해수욕장까지는 비교적 완만하다. 점점 사람이 많아진다. 경포대 입구에서 잠시 쉬었다. 멈춰서 쉬어가기에 좋게 쉼터이다. 경포호수로 간다. 경포호는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다. 반시간이면 된다. 경포호를 끼고 경포대와 허난설헌 생가 터, 고택인 선교장을 둘러볼 수 있다. 그냥 한 바퀴 호수를 둘러봤다. 혜민스님이 한 질문이 생각났다. “지금 내 마음이 바쁜 거여요? 세상이 바쁜 거여요?” 참 마음만으로 안 된다.

    경포해변 끝은 강문해변의 시작이다. 바로 해변 옆에 서낭당이 있다. 웬 서낭당이냐. 이름도 특이하다. 진또배기 서낭당. 도대체 진또배기가 무슨 뜻일까? 진또배기는 강원도 사투리다. 장승이 박혀 있는 것을 장승배기라고 하는 것처럼 솟대가 박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진또배기에는 세 마리의 오리를 깎아 막대기 끝에 달아매놓은 솟대가 있다. 옛사람들은 이것이 풍수해·수재·화재를 막아준다고 생각했다. 현세에도 자연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두 해변경계를 가르는 작은 하천 위로 다리를 만들었다. 강문 솟대 다리다. 인공적이지만 보기에 좋았다. 연인들과 젊은이들이 여러 자세를 취한다. 가슴에 사랑이 있기에 풍경이 아름답게 보일게다. 순간순간 사랑하면, 순간순간 행복하다.

    이제 정동진으로 간다. 도시에서 벗어나 산길·마을길·농로로 한참을 간다. 돌아가는 길이다. 해안가에 강릉비행장이 있다. 1시간을 쉬지 않고 갔다. 강문해변에서 12㎞ 정도 왔다. 쉬어갈만 한 곳이 보인다. 음식점이다. 간판에 ‘강릉불고깃집’이라고 쓰여 있다. 꽤 유명한가. 한가로운 농촌 마을에 이렇게 큰 음식점이 있는 것이 평범치 않다. 십여 명의 단체손님들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시원한 물을 얻어 마셨다.

    국도를 따라 고개를 넘고 넘어 북한잠수함이 전시된 강릉 통일공원까지 갔다. 1996년, 북한 잠수함이 남한의 전략시설을 정찰하기 위하여 현재의 강릉시 구역인 진리 해상에 침투했다가 복귀하는 도중 파도에 휩쓸려 좌초하자 포기하고 인근 산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육상으로 북에 귀대하려 시도했으나 발각되어 전멸했다.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북적였다. 자라나는 학생들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할까? 내 또래들은 북한이 남침한 6월 25일을 크게 기억한다. 아직도 대결의 자세이다. 나도 화해를 위한 6·15공동선언보다 6·25가 중하다.

    5분 정도 지나면 정동진역이다. 가는 도중에 미술관이 있다. 하슬라 아트월드이다. 하슬라? 외국말인 줄 알았다. 하슬라는 ‘해 밝음’이라는 의미의 고구려 때부터 불렀던 강릉의 옛 이름이다.

    동해안의 푸른 물결을 볼 수 있는 해안도로 절벽 위 구릉지대에 있었다. 야외 조각공원과 피노키오 미술관, 폼 나는 호텔이 함께 붙어있다. 어떤 분이 이렇게 품격 있는 예술품을 모으고 전시했을까. 존경심이 들었다. 설립자 부부는 인근 대학에서 강의하는 화가 교수이다. 사자처럼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의기양양하게 넘치는 힘으로 사는 분 같다.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싶었다. 이미 해는 저물어 간다. 서둘렀다. 이제 10여 분 후면 친근한 정동진역이다. 정동진은 광화문에서 볼 때 정 동쪽에 위치하여 이름 지어졌다.

    전국에서 가장 바다와 가까이 있는 역이다. 그 옛날 이 역은 석탄수송이 주 업무였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되면서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소나무 옆 의자에서 한 젊은이가 짙은 푸른빛의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정하 시인은 그의 시작 노트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비에 젖으며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다. 비 오는 간이역에서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다.” 이 나무는 비 오는 밤에도 자지 않고 지키는 빛나는 나무일 게다.

    나는 여기 서있는 소나무가 되고 싶다. 쭉 처진 어깨,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소나무가 되고 싶다. 그동안 좌절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막차를 타고 달려와 앞 바다를 바라보고 얼마나 많은 울분과 한을 토해냈나. 다음날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숱한 희망을 걸었다.

    니체는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너무 제거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한다. 삶이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고통은 또한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 니체는 삶을 구원하고자 원한다면 고통을 긍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은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저 멀리 배 모양의 썬크루즈 호텔이 보인다. 멋있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산 위로 배를 올려놨으니…. 하늘에 배가 떠 있다. 어서 가보고 싶다.

    오늘 숙소는 망상역 부근 철길 가에 있다. 앞으로 1시간은 가야한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간다. 자전거 길은 심곡항을 거쳐 금진항으로 이어진다. 이 코스는 차도가 바다에 접해져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멀리서 배 한척이 보인다. 고깃배다. 아침에 나가 지금 돌아오는 배일 게다.

    내가 보는 저 배는 나에게는 행복해 보여도 그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 빈 배로 돌아오면서 아들 수업료 걱정하는 부부일 수 있다.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잎이 물든 이유는 나무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함이다. “행복해 보였는데 당신도 힘들었군요.”

    드디어 망상해수욕장 끝 부분에 위치한 숙소에 왔다. 마지막 햇빛이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다. 오늘 대충 100㎞를 달렸다. 

    임영호 전 코레일 상임감사  0533r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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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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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보스 2017-07-18 14:16:41

      글솜씨 말솜씨 대단하시고요
      항상 권투를 빕니다
      승리하는 의인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삭제

      • 곱배기 2017-07-17 23:32:04

        강릉옛지명(하슬라)알게해주셔서 또 감사드립니다. 다 읽고나면 무한감사로 보답 할 수있을까요?~^^   삭제

        • 이주형 2017-07-17 20:22:50

          자전거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오늘 보니 사진도 참 잘찍으셨네요.   삭제

          • 2017-07-17 20:04:05

            정말 대단하십니다! 자전거탄것도 대단하시지만 멋진글과 사진까지! 항상 열정적인 모습 멋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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