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머리와 마음을 비울 때 발견하는 ‘나의 기쁨’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머리와 마음을 비울 때 발견하는 ‘나의 기쁨’
  • 이규식
  • 승인 2017.07.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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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머리와 마음을 비울 때 발견하는 ‘나의 기쁨’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와 깊이를 느꼈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할 때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로울 때
어려운 문제의 답이 눈에 들어올 때
무언가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될 때
벽보다 문이 좋아질 때
평범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을 때
하늘이 멀리 있다고 잊지 않을 때
책을 펼쳐서 얼굴을 덮고 누울 때
나는 기쁘고

막차를 기다리듯 시 한 편 기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일 때
나는 기쁘다

- 천양희, ‘나는 기쁘다’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 때로 멍하니 있기
고달프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지금 기쁜지 슬픈지 종잡을 수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예전부터 해오던 일이고 아마 앞으로도 할 일이겠지만 나날이 삶의 무게감과 분망함은 가중된다. 사람 만나기도 힘들어지고 약속을 하기도, 그 약속을 지키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활주변의 여러 물리적, 가시적 환경은 제법 편리해지고 어지간한 수고로움은 기계의 힘으로 해결되는 듯하지만 여전히 바쁘게 쫓기는 삶은 계속된다. 예전에 교양과 자기완성을 위한 여유로운 취미였던 책읽기도 이제는 생존과 경쟁의 방편이 되어가고 있다. 직무상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하여 불가피한 선택이다. 직장에서는 야근, 학교에서는 ‘야자’, 밤늦도록 불이 켜진 점포와 식당에서는 심야영업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잠시 조용히 생각이 머무를 겨를이 없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볼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이른바 ‘멍때리기’의 기회가 소중한 이즈음, 굳이 이벤트성 행사로 벌어지는 멍때리기 대회가 아니더라도 틈을 내어 현실에서 벗어나 머리를 비우고 지금의 나를 찬찬히 돌아보면 좋겠다. 이런 상태를 흔히 명상이나 관조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만 그냥 한동안 머리를 비워두거나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는 단순한 행위면 충분하지 않을까.
 
#.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 하고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되는 경지는 쉽게 도달하기 힘들겠지만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비운채 ‘텅 빈’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길러질 것이다. 그러면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것이고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와 깊이를’ 느끼거나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바로 지금 틈을 내어 소음과 번잡에서 비껴나본다. 조용히 ‘나는 기쁘다’라고 되뇌이면서 자기암시를 반복해 보자. 기억의 저편에 묻혀있던 아름다운 추억이며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과 인간관계, 주위의 사소한 것들이 홀연 기쁘고 아름다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오고 그날이 그날 같던 일상의 반복도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천양희 시인의 ‘나는 기쁘다’는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행복과 감사, 즐거움과 기쁨에 눈을 돌리게 하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처방전으로 읽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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