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의 작은옹달샘] 세월호 배지를 떼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
[지요하의 작은옹달샘] 세월호 배지를 떼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
공감능력의 공유와 보편화에 대한 소망
  • 지요하
  • 승인 2017.07.2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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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소설가

[굿모닝충청 지요하 소설가] 천주교 신자로서 신앙인의 여러 가지 기본적인 덕목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신앙인의 기본적인 덕목 한 가지는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신앙인은 공감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토대인 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님의 ‘눈물’을 만나기도 한다. ‘나자로’라는 청년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눈물은 인간의 삶 안에서 필연적인 것이기도 하고 숭고한 ‘가치’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동물들에게도 눈물이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 눈물이 없다면 세상엔 무섭고 삭막한 기운만 감돌 것이 분명하다.

눈물은 ‘측은지심’과 관련이 있다. 측은지심, 즉 동정심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눈물이 많은 법이다. 측은지심은 또 ‘공감능력’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에게는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공감능력을 지닌 사람이 많을수록 온정이 쉽게 꽃피고 ‘정의’도 살아나기 마련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 시절 언젠가 각 학교들에 노란 리본을 착용하지 말라는 지시 공문이 내려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사들이 노란 리본을 착용하는 것까지 간섭하는 그 행위는 결코 온당한 것일 수 없다. 그런 공문 자체가 정당성이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공감능력이 없는 정권의 명운을 보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가슴에 노란 배지나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공감능력의 적극적인 표발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 공감능력이 능동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리라는 생각도 하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세월호 배지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에서 만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바치는 기도'의 뒷면에 있는 그림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이 기도를 바친다.

얼마 전 교회에서 한 단체를 이루고 있는 신자들과 하루 나들이를 한 적이 있다. 버스 안에는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먼 길을 가는 중이라 중간에 텔레비전을 시청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무슨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 보이는데, 가슴에 세월호 배지를 달고 있었다. 세월호 배지가 유난스레 돋보이는 그의 모습은 내게 더욱 정답게 느껴졌다.

나에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기억 한 가지가 있다. 2014년 8월 문재인 의원이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 안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모습이다. 천주교의 각 수도회들이 연합으로 세월호 희생자 304인을 추모하는 미사를 매주 봉헌하는 수요일이었다. 매주 그 미사에 참여하던 나는 또다시 광화문 광장에 갔다.

그리고 한 천막 안에서 여러 날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문재인 의원을 볼 수 있었다. 그 날 천막 안에는 함세웅 신부가 함께 있었다. 나를 발견한 함 신부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 나는 문재인 의원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수염이 많이 자라 있고 수척해진 상태인데도 그의 목소리는 강건하면서도 온화했다.

그런데 한 중년 여성이 나타나 문재인 의원을 향해 큰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가짜 단식을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싸워야 할 게 아닙니까! 정치인들의 무능과 비겁함을 그렇게 가짜 단식으로 포장하지 마세요!”

그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하도 커서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천막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나는 문 의원과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문 의원은 그 중년 여성의 욕설에도 아무 대꾸 없이 의연한 자세를 유지했다. 꼿꼿이 상체를 세우고 있는 그의 가슴 한쪽에 달려 있는 큼지막한 세월호 리본이 돋보이고 있었다.

그때의 문재인 의원 가슴의 세월호 리본을 오늘 다시 보는 것 같아 나는 더욱 반가웠다. 버스 안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세월호 배지를 떼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

세월호 유족과 시민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며 함께 눈물 흘리는 시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교우가 뜻밖의 말을 했다.

“이제는 저 배지를 떼어야 해. 그래야 국민 통합이 된다고!”

그러자 여러 교우들이 화답했다.

“저 배지를 실컷 울궈먹었으니 이젠 뗄 때도 됐어.”

그들이 그날 여전히 가슴에 세월호 배지를 달고 사는 나를 의식하고 그런 말들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나는 일순 막막해지는 심사로 침묵하다가 한마디 했다.

“당신들 중에 세월호 배지나 리본을 잠깐이라도 달아본 사람 있어? 안산 합동분향소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 있어? 천주교 신자로서 서울 광화문과 전국 각지 성당에서 열리는 세월호 추모미사나 시국미사에 한 번이라도 참례해 본 사람 있어? 잠깐만이라도 세월호 배지나 리본을 가슴에 달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해도 해야지,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이 무슨 염치로 그런 말을 한다나.”

다행히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어색하면서도 껄끄러운 기운이 버스 안에 가득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 사실에 감사하며 나도 침묵했다.

그 후 나는 서울의 한 신앙공동체의 창립기념행사에서 강의를 하면서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측은지심이나 공감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의 측은지심이나 공감능력을 키우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물으며, 사람다운 사람들의 그런 마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요체임을 열렬히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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