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② “울지 않고 출근한 날이 없어요”… 되풀이 되는 ‘악몽’
[커버스토리] ② “울지 않고 출근한 날이 없어요”… 되풀이 되는 ‘악몽’
군대 뺨치는 간호사의 ‘태움’ 문화 - 새내기의 ‘공포의 하루’
  • 남현우 기자
  • 승인 2017.08.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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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남현우 기자] 수도권의 모 사립대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임 모(25) 씨. 그녀가 출근을 하면 으레 듣는 말이 있다. “밤에 라면 먹고 잤니?” 주간·야근 근무시간 상관없이 항상 부은 얼굴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올 해 1년차인 임 씨는 그런 선배들의 농담에 애써 웃으며 한 차례 농담 반 진담 반의 출근 인사를 한 뒤 탈의실로 향한다. 그녀가 얼굴이 잔뜩 부은 채로 출근하는 이유가 울음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기껏해야 동기 몇 뿐이다.

임 씨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행복에 겨운 나날을 보냈다.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에서 꽤나 좋은 병원으로 알려진 이 병원에 최종 합격했다는 기쁨과 함께 ‘청년 실업?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콧노래를 불렀다.

한동안 간호사 T.O가 나지 않아 지난 4월이나 돼야 출근을 하게 되지만 그녀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이런 임 씨의 의욕과 기대는 출근 첫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라졌다.

“간호학과 전공으로 대학에 다닐 때도 선배들의 갈굼 문화는 존재했지만 과 생활을 하지 않으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겪지 않아요. 저 또한 과 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던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간호사 위계질서에 대해 거의 전무한 채로 취직했어요. 병원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피할 수 없더군요. 학생 때처럼 혼자 다니는 곳이 아니니까요.”

임 씨의 출근 첫 날 에피소드는 이러하다. 사회생활의 첫걸음이기에 그녀는 알 수 없는 긴장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일반병동으로 배정받은 임 씨는 선배간호사 A씨와 첫 근무를 함께 하게 됐다.

A씨는 다소 지쳐보이는 얼굴에 표정은 없다고 보일 정도로 굳어있었다. 경직된 인사를 나눈 뒤 A씨와 함께 병동의 병실을 돌며 환자들에게 인사를 하며 특이사항 등을 확인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리로 되돌아온 임 씨는 곧바로 A씨의 부름에 간호사실로 불려갔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탈의실로 들어섰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폭언을 듣게 됐다. A씨는 “아직도 간호 실습생 같아? 굉장히 편하게 서있더라. 한 쪽 다리가 아파서 그래? 왜 짝다리를 짚어?”라며 비속어를 섞어가며 나무랐고, 멍하니 듣던 임 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임 씨는 “황당했다. 평소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어서 낯선 자리에서 쭈뼛쭈뼛 서있곤 하지만 절대 삐딱한 자세로 있지 않았어요. 첫 직장에 첫 상사, 첫 환자 앞에서 누가 그런 자세를 취할 수 있겠어요. 서러움에 울고 있는데 폭언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어요”라며 울먹였다.

그녀는 “오로지 저를 혼내려고 핑계거리를 찾는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어요”라며 “더 서러웠던 것은 단순한 핀잔과 충고에 그치지 않고 저에게 그러더군요. 환자들한테 웃음을 파냐고...” 임 씨는 첫 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 듯 털어놓았다.

선배의 갈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임 씨는 “퇴근 직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어요.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폭행을 당했죠”라며 말을 이었다.

첫 날, 퇴근 시간이 다 되 가자 임 씨는 그날 일을 교대 근무자에게 인계해주는 과정을 밟았다. 임 씨의 교대자는 2년차 선배였고, 별다른 일 없이 인사를 건네며 순조롭게 진행됐다. 문제는 A씨의 인계과정에 있었다.

A씨의 교대자는 그녀보다 한 해 위인 6년차 선배였는데, 인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퇴근시간이 30여 분 지체됐다. 임 씨는 ‘그래도 선배보다 먼저 퇴근할 수 없다’는 생각에 A씨를 기다렸다. 인계가 끝난 뒤 탈의실로 돌아온 A씨는 임 씨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언성을 높였다.
A씨는 “하필이면 첫 출근인 애랑 붙여줘서 제대로 일이 되는 게 없다”며 “B선배도 근무 인계 사항 보더니 한숨 쉬더라. 첫 출근이라곤 해도 일을 너무 못하는 거 같다. 간호사는 왜 하려고 하냐”고 나무라며 손으로 머리를 강하게 밀었다.

임 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에 꾹 참았어요. 그 선배만 유별난 것이라며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렸죠. 그런데 비단 A선배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악몽’ 같았던 출근 첫 날의 사건들이 병원의 ‘간호사 태움’ 문화 중 하나라는 것을 한 해 위 선배들로부터 들어 알게 됐어요”라고 고백했다.

태움 문화는 임 씨 말고도 동기로 들어온 신입 간호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임 씨의 대학 동기이자 같은 병원 동료인 한 모(25) 씨는 “신입 간호사는 화장실에 10시간쯤 못 가는 건 기본”이라고 토로했다.

한 씨는 “하루는 너무 급해서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얼굴로 물컵이 날아오더라”며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한 씨는 또 “심지어 데스크에 텀블러를 올려놓는 것도 금지다. 물 먹을 시간이 있냐며 나무란다”고 덧붙였다.

오늘도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며 출근을 서두르는 임 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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