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바느질의 역사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바느질의 역사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08.11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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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찜통더위의 한복판을 지나는 8월초, 토요일 오후의 대전 중앙시장은 더위에서 조금 비껴서있었다. 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나는 기간에 맞춰 많은 상인들도 뜨거운 생활을 잠시 식히려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흔히 A동이라고 불리는 메가프라자는 최근에 문을 연 3층의 청년몰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휴가였고 신중앙시장이라고 부르는 B동도 군데군데 문 닫은 곳이 많았다. 더위를 쫓겨 B동 시장1층에 들어서자 주로 주단집이라고 불리는 상점들이 화려한 한복으로 치장하고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건성건성 한복을 구경하는 손님 수나 상점주인 수나 별반 차이가 없을 만큼 한산했다. 재봉틀에 앉아 소일처럼 일상복을 만들고 있는 한 사장님에게 대뜸 물었다.

“주단집하고 한복집하고 어떻게 달라요?”

사장님의 대답은 좀 뜨악하다.
“왜유? 장사할라구유?”

사장님의 설명은 이렇다. 1층에 화려한 점포들을 주단집이라고 하는데 한복 원단과 완성된 한복을 주로 판매하는 집이다. 그리고 작은 평수로 2층 복도에 모여 있는 한복집들은 한복을 만들고 고치는 바느질집이라는 것이다. 이 얘기 저 얘기 잡담 끝에 한복 만드는 일만 57년 해온 한복집 할머니 사장님이 있다고 소개한다. 2층에서 고려한복이라는 간판으로 옷을 만들고 있는 이두임 선생님이다. 올해로 86세, 한복을 만들고 고치는 일로만 이미 60년이 다 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잡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집에는 못 있겄어요. 애들은 때리치라고 하는디, 아침에 눈 뜨고는 갈 데가 있어야 나오는디, 눈 뜨고 갈데없이 집에서 뭘혀요? 나와야지.”  

자리에 앉자마자 한산한 요즘 분위기를 이렇게 던지고는 얘기를 시작했다. 이두임 선생의 고향은 전라남도 해남이다. 당시에는 어르신들이 여자는 음식하고 바느질만 해야 한다고 가르치던 시절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집안 바느질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시작한 바느질은 농사 짓는 일꾼들의 옷을 만들고 또 고치는 일이었다. 그때 시골집에는 찾아보기 힘든 ‘미싱’이 있었다. 그때부터 손바느질이나 재봉틀 일이나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고한다. 

“처녀 때 농사짓는 사람들 옷을 짓고 고치다가 결혼을 혔어. 딸 셋 낳고 우리 막내아들이 지금 52살인디 2월에 낳아놓고는 그해 동짓달에 남편이 죽었는디, 워칙혀?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허니께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했제.”

그렇게 직업적으로 바느질을 시작한 것이 20세 조금 넘었을 때였다.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 바느질 솜씨 좋은 사람도 귀했던지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도시인 광주에서 바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광주에서는 주로 화류계 여성들의 옷을 만들고 고쳤다. 그러니까 화려하고 복잡한 기술을 요하는 옷들이었다.

“그때는 깔깔이라고 부르는 후줄후줄하게 비치는 천이 있었는디 그걸 입고서는 춤을 추면 하늘하늘하잖여. 주로 그걸 많이 혔지.”

그렇게 대도시에 자리를 잡자마자 다시 대전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긴다. 아이 넷을 데리고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인척이 대전에 터를 봐준 것이다. 제일 먼저 일한 곳은 은행동 중앙극장 근처에 있던 바느질집이었다. 당시에는 여기저기 바느질집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대전살이에서 기술도 손맵시도 좋은데다 일까지 빠른 사람에 관한 소문은 빨리 퍼졌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손짓 중에 중앙시장에 있던 고려한복집과 합이 맞았다.

그렇게 고려한복의 전 사장님과 일을 했지만 얼마 안 있어 사장님은 가게를 그만 두게 된다. 그러면서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 가게를 이어갈 사람은 이두임 선생밖에 없다고 한사코 물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기술자로 일했던 시간을 지나 그렇게 고려한복을 맡아 자신의 일로 지내기 시작한지도 이미 40년이 훌쩍 넘었다.

“딸만 따지면 셋인디 셋 모두 바느질일을 했던 때도 있었쟈. 그때는 일이 넘쳐서 기술자들도 많이 데리고 혔어. 젊은이들 중에 오래 일허기 쉽지 않어. 그랴도 그적에는 여기 있으면 처녀들이 와서 바느질 가르쳐달라고 혔어. 한 번에 다섯 명씩도 가르치고 그럈는디 이작 아무도 웂어.”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시대가 변하고 가치가 바뀌는 얘기이다. 다만 변치 않는 사실 하나는 그 가운데 사람이 있다는 것. 화제는 요즘 옷으로 이어졌다.

“작년, 재작년까지만 해도 다 놀아도 내 일은 밀려나갔었는디, 그런데 인자 나이가 많으니께 아무래도 안 찾어. 한복도 노인정에서 단체로 하는 경우 아니면 거의 웂고.”

아무래도 한복에 여름은 비수기이다. 그러나 고려한복은 항상 바빴다. 모시옷을 전문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관리가 손쉬운 인견이라고 불리는 인조모시이 나오면서 비싼 모시는 시장에서 밀려나갔다.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또 다려 입어야하는 과정이 시대에 맞지 않았다.

“그때는 께끼, 적삼, 남방, 바지 이런 것 다 모시로 혔지. 모시밖에 웂응께. 근디 비싸고 손질 어렵고 그려서 밀려나고 일이 웂어.”

요즘 직접 바느질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바느질이 너무 어려운 기술이어서 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렵지. 그런데 그것도 자기 솜씨라, 아무리 오래 혀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고, 꼼꼼하고 이뻐게 해야 헌께. 시장 양반들이 고마운 것이 뭐냐 허믄 어디서 이상헌 옷이 오면 전부 고려집이여. 어렵고 고치는데 힘든 것 보내 주니께 허기 싫어도 어디서 이리 가랬다고 오믄 보낸 사람 생각해서 다 혔지. 그렇게 놀지는 않았는디.”

어떻게 그렇게 솜씨가 좋은지도 궁금했다. 그러니 그냥 오래 하니까 그리 되었단다. 본인 자랑 자기 입으로 못하는 성격이 드러났다. 그러면서 수선 중인 한복 한 벌을 꺼낸다. 여기저기 까다롭게 고치는 과정을 설명한다. 말 그대로 전문 용어들이다.

“한번은 공주 갑사에서 국악 선생이 치마, 저고리, 도포 이런 거 단체로 많이 해갔는디. 낭중에 1등 먹었다고 고맙다고 찾아오고, 사진 보내주고 그런 경우도 있었쥬.”

좀 식상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매어 못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아무리 늙어도 바늘귀는 꿰어야 바느질을 할 수 있’으니까. 90세에 가까운 노인분이 혼자 앉아 바느질을 한다는 얘기는 아직도 바늘귀를 꿸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 질문에 묘기대행진 같은 답이 따라온다. 이두임 선생님이 즐겨 쓰는 세 개의 작은 바늘을 보여주면서 ‘이 바늘귀는 젊은 사람도 못꿴다’는 것이다. 노하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먼저 검정 실은 흰 바탕에, 흰 실은 검은 바탕에 두고 보면 눈으로 보면 손이 알아서 바늘구멍을 찾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아직 눈은 신경 쓸게 웂는디 허리가 제일 아퍼요. 병원 가면 앉아서 일하지 말라고 하는디 습관이 되갔고 의자에서는 못 허겄어. 그리구 일만 잡으면 허리 아픈 줄 모르는디 집에서는 밥도 못해 먹겄어.”

이렇게 한 해 한 해 달라지는 몸 때문에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자조와 함께 바느질로 생활할 미래도 걱정이었다. 기술자 대여섯과 같이 일해도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일을 감당 못했던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전부터 매해 일감이 줄어 회복이 안 되는 상황이 더 걱정이었다.

“집이 판암동인디 시방도 버스타고 댕겨, 놀아도 여그서 놀라고들 그러니께, 그냥 나오는 거여. 원래 가을은 좀 나은디 올해는 어떨지 몰르것어유.”

어느 순간이 되면 이렇게 일도 노는 일이고 기다리는 일도 노는 일이 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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