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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률의 영화읽기] 자유와 해방을 향한 무한질주10편 10색 - 영화, 생각을 지배하다 : 델마와루이스

    [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쪼다여도 남자다
    ‘남성/여성’을 ‘하늘/땅’을 넘어 ‘선/악’의 수준까지 생각하는 시대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들(비단 남자들뿐이랴. 스스로를 ‘폄하’하는 여자들도 많다. 이렇게 해서 남자들이 이끄는 권력으로부터 얻는 ‘사랑 또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여자들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이 있다.

    이렇듯 남성우월주의를 진리인 양 생각하는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 여성은 전리품 취급을 당했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서조차 금지했던 중세시절에 비하면 지금이야말로 비약적 처우개선이 된, 즉 천지개벽을 한 세상이라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세’가 도래했다고 한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근로자와 여성근로자의 각종 차별이 든든히 존재하는 것을 보면, 말세까지는 아닌 것 같다.

    여성이 도구인가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무지·편견·차별·억압 등을 다루고 있는데, 로드무비 형식을 빌린 버디무비(Buddy film)입니다. 그래서 마치 세상은 사파리요, 델마와 루이스는 토끼, 그녀들을 탐하고 억압하는 남성들은 사자 늑대와 같은 맹금류로 취급됩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이 맹금류들이 득시글한 아수라 속에서 토끼 같은, 힘없고 착한 여자들이 늑대(남자)에게 소속 또는 늑대를 부양하며 힘겹게 살다가, 이틀 계획의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만 본의 아니게 일탈하고, 방황하고, 저항하고, 마침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해방’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26년 전에 만들어졌으나,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옛이야기처럼 느껴지지도 낯설지도 않습니다. 되레 팍팍 다가옵니다. 특히 온갖 차별이 심하고, 그 차별을 당연시하는 나라에 살다보니 더욱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민을 대의(代議)한다는 국회의원이 비정규직 급식노동자들을 ‘그냥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비하하기도 하는 나라입니다. 일타쌍피라고, 성차별에 신분차별까지 서슴없이 한 것이지요. 이뿐인가요. 박근혜 정권이 윤병세 장관을 앞세워 위안부에 대한 ‘불가역적 합의’라는 걸 이끌어냈다고 하고, 이것을 양국의 미래 발전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외교적 성과인 양 내세우는 것을 보면, 참담하기까지 하지요. 이 외교 성과야말로 인권 유린만으로도 엄청난 죄악에 해당하지만, 여성차별로 보자면 ‘끝판왕’이라 볼 수 있겠지요.

    자유와 해방의 여정
    ‘델마와 루이스’를 단순히 패미니즘 영화로만 보기에는 아깝습니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얻으려고 했던 것은 잘못된 인식과 제도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입니다. 일부 식자들은 저항이나 투쟁이 없는 자유와 해방이라 아쉽다고 하겠지만, 인식의 자각-인식의 변화-인식의 전환이라는 측면으로만 들여다봐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삐삐용’과 ‘쇼생크 탈출’과 맥을 같이 하지요. 델마와 루이스의 행위를 놓고 파시즘화 된 페니미즘이라 비판하는 쪽도 있습니다만, 이는 상황이나 맥락 또는 원인과 동떨어져 볼 때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델마(지나 데이비스)는 외모와 달리 천진난만하고 좀 맹합니다. 그래서 툭하면 일을 치지요. 약간의 끼도 있어 남자들이 들러붙고, 델마는 또 이 들러붙는 남자들을 굳이 마다하지 않아요. 아이러니하게도 델마가 남자를 증오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루이스(수잔 서랜든)의 경우는 증오나 싫어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남자에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닌 것같습니다.

    델마는 남자들과의 성적인 문제와 연관된 ‘관계’로 사건을 만들어요. 휴게소 술집에서 만난 할랜이라는 불량스러운 남자, 주유하다가 거리에서 만난 좀도둑 제이디, 심지어는 불신검문으로 만난 남자경찰까지. 이 때문에 루이스가 살인까지 하게 되고 막다른 길로 몰립니다만, 강한 루이스가 모두 어찌어찌 감당합니다. 그 이유는 델마가 말썽의 요인은 제공했으나, 델마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델마가 저지른 일을 루이스가 열심히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절망에 빠졌을 때, 이 ‘결정적 문제’를 델마가 기상천외한 ‘혁신적’ 방법으로 해결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게를 터는 강도짓이요, 경찰을 감금하는 범죄행위이지만 말입니다.

    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소설집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 장편소설 ‘오래된 뿔’ 등을 발표하였다. 수년 간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 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계속 가는 거야, 밟아!
    루이스는 이른바 ‘텍사스 추억’을 가지고 있는 여잡니다. 아마도 강간쯤으로 짐작되는 추억입니다. 때문에 이 여자가 남성을 대하는 방식은 조심스럽고, 호의적이지가 않습니다. 또 사고와 생활 방식이 ‘모범적’인 편이지요. 스스로 생계를 챙기며 건달 같은 연주자와 동거를 해요. 반면 델마는 가정주부예요. 물론 남편이 돈만 밝히고 아내를 부속품 정도로 아는 게 문제지요. 부부가 합의된 섹스도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좀도둑 제이디와의 섹스를 루이스에게 자랑하고, 또 루이스가 이를 ‘축하’해줄 정도니까요. 이른바 자유로운 여자가, 구속 자체에 대한 개념이나 고민조차 없는 여자가 바로 델마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대책 없는 델마가 루이스를 해방시켜 줘요.

    이 영화의 매력이 이 점입니다. 터프한 루이스가 나름 얌전녀 델마를 일깨우고, 이렇게 의식 변화를 겪은 델마가 루이스를 해방시켜준다는 겁니다. 얼핏 루이스에게 델마가 사단의 원인이자 짐인 것 같습니다만, 들여다보면 상생관계인 것입니다. 정말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루이스가 쩔쩔맵니다. 이때 델마가 루이스를 이끌지요. 몸은 해방될 수 없으나, 정신은 해방될 수 있는 길로…. 델마가 루이스를 이 영원한 자유와 해방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2017년 지금. 델마와 루이스는 어떤 세상을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광률 소설가  ryul@dj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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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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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태 2017-08-12 17:19:28

      저번에 소개하신 '머니볼'영화를 멈 재미있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영화도 시간내서 꼭보겠습니다ㅡ^^   삭제

      • ksy05 2017-08-12 15:56:59

        안그래도 아직 못본 명작이라 보려했는데, 이 글을 읽고 델마와 루이스를 보면 좀 더 많은 면에서 깨닫는게 있겠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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