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스님의 ‘산방원려(山房源慮)’] 디오게네스와 자유, 그리고 철인(哲人)의 삶
[탄탄스님의 ‘산방원려(山房源慮)’] 디오게네스와 자유, 그리고 철인(哲人)의 삶
  • 탄탄(呑呑) 스님
  • 승인 2017.08.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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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呑呑)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충북 청주에 유래 없는 폭우로 인명 피해와 물질적 손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문헌에 보면 옛적에도 무심천이 범람하여 큰 홍수가 여러 번 났다고 하는데, 천재지변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여도 요즘 인재가 상당히 기승하는 것 같다.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 받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정치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지만 한 마디 고집해 본다면, 얼마 전 우리지역 도의원이라는 함량 미달이고 저급인 사람이 국민을 들쥐에 비교하였으며, 또 어떤 고위공직자는 민중을 개돼지로 취급하여 많은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물론 가진 자들의 오만과 독선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몰지각하고 품위 없는 정치인들이 골 깊은 산사에서 불교공부 좀 하고 인문학적 지식을 익혀 좀 더 인격수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공자님께서도 수신제가(修身齊家)하고 치국 평천하(治國 平天下)하라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수양을 바르게 하여 가정을 잘 이끌고 나라와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 대장부의 길이라는 뜻이다. 본인 자질도 저급이고 저질인 자들이 정치를 하며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를테면 불가의 가르침 또한 부처님 가르침을 말함이며, 곧 불교를 신행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핵심 요체이다. 무더위와 싸우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이 여러 날 되다보니 몇 권의 책을 보게 되었는데, 이 지면에 서양철학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서양정신의 중심축을 이원적으로 분류해 보면 헬레니즘(그리스 문화, 예술을 바탕으로 하는 정신)과 히브리즘(기독교 사조 중심의 유대교 정신)이다.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 정신의 융합이 서양의 정신세계임을 부정할 여지가 없다.

젊은 날에 연역적(널리 일반화된 명제로부터 특수한 명제를 이끌어내는 과정) 사고와, 귀납적(개별적 사례로부터 일반화된 명제를 이끌어내는 과정 즉 개별적 사례를 전제로 하여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 성찰에 도취도 되어 보았다. 그러나 지난시절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하여서였는지 많은 철인들 중에 우리 역사에서는 매월당 김시습에 매료되었다면, 그리스 철인 중에는 디오게네스 삶이 그토록 멋지고 근사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흑해 연안의 시노프라는 곳에서 출생한 영락없는 변두리 촌놈이었다. 키닉학파, 즉 견유학파(犬儒學派)의 대표적 인물인 그는 ‘통 속의 디오게네스’라고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젊어서는 화폐위조죄로 고향에서 쫓겨나 아테네로 망명하였는데, 어찌되었건 정신적 의미에서의 가짜 돈 주조, 즉 공인된 가치와는 다른 가치의 창조를 지향한 철인(哲人)이었다.

안티스테네스의 학통을 이어 온갖 물질적 허식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생필품으로 사는 자연상태야 말로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주장하며, 옷도 걸치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으며, 들개처럼 길거리에서 잠자고, 통속을 집삼아 사는 생활을 지향했던 이유로 개라는 별명이 생겨 그 일파를 견유학파라고 하였다.

그가 버려진 통속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와 곁에 서서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시오”라고 말하자 “폐하, 내게 그늘이 지지 않도록 좀 비켜주는 것입니다”라고 한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보통의 우리네 범부들은 임금이 그러한 질문을 했다면 취직이나 현금을 요구하였을 터인데 말이다. 온갖 인습과 권위로부터 해방되는 것, 이것이 영혼의 자족을 지향하는 그의 철학적 실천이었다.

그의 제자 크라테스(테바이)는 이 같은 스승의 학설을 널리 펴서 ‘무소유’야 말로 일체의 고통과 갈등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라고 주장하여 훗날 ‘스토아학파’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철저한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며 살았던 디오게네스 그는 철저한 주변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거지 철학자의 눈에 귀족출신의 플라톤이 곱게 보였을 리 없다. 호사스러웠던 플라톤의 살림살이가 눈엣가시였는데, 디오게네스는 비 오는 날 일부러 진흙탕에 몸을 굴렸다가 플라톤의 집을 찾아가서는 고급 카펫위에 몸을 굴려 카펫을 더럽혔다고 한다. 놀란 플라톤에게 “당신의 오만방자함을 이렇게 짓밟아 주고 싶어서”라고 했다니 과연 냉소주의자 답답다.

이런 디오게네스와는 달리 쾌락주의를 지지해 키레네학파를 연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아리스티포스는 디오게네스가 시냇가에서 푸성귀를 씻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고개 숙이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푸성귀만 먹는 신세는 면할 수 있을 것을.”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가난하게 먹고 사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고개 숙이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이라고 응수하였다고 한다.

디오게네스는 날씨가 좋으면 바깥에서 잠을 자고 “하늘보다 더 좋은 지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꽃과 나무보다 더 좋은 장식품이 어디 있으며”, 궂은 날이면 커다란 물통에서 잠을 자고는 “이 얼마나 훌륭한 집인가? 가구도 필요 없고 자물쇠나 열쇠 필요 없으니 말이야”라며 아테네 거리를 방랑하고 지냈다고 하니 과연 괴짜 철학자였다.

디오게네스는 불가(佛家)의 선사(禪師)처럼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동료들에게 “자네들은 왜 『오디세우스의 고통』을 읽느라 시간을 허비하는가? 정작 자신의 고통을 돌보지 않으면서 말 일세”라고 하곤 했다.

그는 주위의 사람들이 악기 연주를 익히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한마디 한다. “음률을 고르는데 시간을 보내지 말고 제발 자네들의 영혼을 고르는데 힘써보게나.” 웅변가들을 보고도 한마디 하는데, “웅변가들을 보게, 말끝마다 다른 사람의 죄와 부정을 들추어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죄와 부정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군.”

무엇보다도 디오게네스는 기존의 가치를 맹종하지 않았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다른 기준에서 판단하고 역설하였다. “지금 세상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바꾸어야해. 갖가지 편견에서 점철된 가짜 화폐를 폐지하고, 인습의 낙인도 지워버려야 해. 왕이니 장군이니 귀족이니 하는 낙인들, 권력이나 명예나 지혜니 행복이니 부(富)니 하는 낙인들…, 그런 거짓된 것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실 디오게네스는 화폐위조에 대하여 남다른 감정을 지닐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은행가였고, 화폐위조 혐의로 감옥에 갇혔으며, 디오게네스 역시 공범으로 의심 받았다. 그 혐의는 터무니없었지만 디오게네스는 화폐는 물론 화폐로 얻을 수 있는 부에 대하여 경멸하는 태도를 지니게 된 것도 이런 개인적 사연이 한 몫 하였을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고향 시노페(흑해 연안의 지명)에서 추방당하였고 고향을 떠나면서도 전혀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도시의 통치자가 그에게 떠날 것을 명하였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받아야 할 처벌이 그것이라면 나 역시 당신에게 처벌을 내리겠다. 당신은 이곳 시노페에 남아 있는 벌을 받으시오!”

한 번은 어느 누가 그에게 적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 적을 친구로 대접하시오. 우정이란 전염성이 무척 강한 놈이라서, 그 적도 얼마 안가 당신을 친구로 대접하게 될 것이오.”

디오게네스는 무척 어리석음을 싫어하였으며, 탁월한 지혜를 통하여 인간이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탁월한 지혜는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우며 단순한 삶이었다. “미리 준비하는 자만이 날카롭게 몰아치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을 가볍게 지나갈 수 있다.” 이 말의 뜻은 삶에서 적게 기대할수록 실망도 적어진다는 당연한 법칙을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진정한 마음의 평안은 많이 소유하는 것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적게 가진 것만으로도 만족한 데에서 얻어진다. 적게 구하라. 그러면 너는 얻을 것이요. 만족할 것이다. 많이 구하라. 그러면 너의 갈망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인생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 팔고(八苦)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철학자이다. 그는 우리 스스로에게 부과한 고통과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하였으며, “모든 고통은 마음속에 있다. 우리가 고통을 겪는 까닭은 우리에게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통을 유발하는 자기연민 탓”이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잃어버리고, 우리가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그 사람 또는 물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이를테면 헤어진 나 자신, 물건을 잃어버린 나, 나 자신에 대한 연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디오게네스가 묻는다.

“폐하는 지금 무엇을 가장 바라고 계십니까?”
“그리스를 정복하기를 바라네.”

“그리스를 정복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가장 바라십니까?”
“아마도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하여야겠지.”

“그 다음은 또 무엇을 바라십니까?”
“그러면 온 세상을 정복하여야겠지.”

“그러면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하시려고요?”
“그러고 난 뒤에는 아마도 좀 쉬면서 즐겨야하겠지.”

“이상하군요. 왜 지금 당장 좀 쉬면서 즐기시지 않습니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운명에 저당 잡혀있다. 누구나 사형수이다. 욕망을 간소화하고 단순화하면 충족하기가 수월하다. 단순 소박한 삶은 육체와 정신에도 두루 유익하다. 디오게네스는 대낮에는 램프를 들고 돌아다니며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참된 인간을 찾는 중이요. 대낮인데도 잘 보이지 않기에 이렇게 램프를 들고 찾는 중이라오.”

위생과는 거리가 멀고 방랑하며 지낸 일상이지만 그는 90여 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립(而立)의 나이인 33세에 요절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비하면 천수를 누린 삶이다. 전설에 의하며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저승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강에서 만났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뒤 알렉산더 대왕이 말했다.

“다시 만났군, 정복자와 노예가 말이야.” 디오게네스가 대답한다. “그렇군요. 다시 만났군요. 정복자 디오게네스와 노예 알렉산드로스가 말입니다. 정복을 향한 열정의 노예였던 당신과 모든 열정과 욕망을 정복한 이 디오게네스가 말입니다.” 대자유인인 디오게네스답다고 하겠다.

몇 날을 더 자유로운 철인과 함께 하며 끝물인 무더위를 잊어보려 한다. 여름 한철 몇날며칠 헌책방을 순례하며 백여 권의 음식, 요리, 술과 관련된 책을 수집하다 보니 어느덧 입추도 지나고 처서가 눈앞이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빠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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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17-08-19 17:31:32
정말 좋은 글이네요^^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좋은 글로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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