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의 작은옹달샘] 광주시민이 폭도라던 후배, 이 영화를 봤을까
[지요하의 작은옹달샘] 광주시민이 폭도라던 후배, 이 영화를 봤을까
아내와 함께 ‘택시운전사’ 두 번 보며 눈물 흘린 이유
  • 지요하
  • 승인 2017.08.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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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독일인 기자 힌치피터가 광주 거리에서 데모대 청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쇼박스
지요하 소설가

[굿모닝충청 지요하 소설가] 지난 5일 오후 아내와 함께 서산의 영화관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왔다. 사흘 후인 7일에는 딸아이와 함께 셋이서 또 봤다.

우리 부부가 같은 영화를 두 번이나 본 이유는 명백하다. 질곡 같았던 시대의 아픔들을 가슴으로 공유하고 있어서다. 37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아픔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그 비극은 어는 면에선 '현재진행형'으로 잔존하고 있다. 역사의식을 지니고 민주주의와 인권보호를 끊임없이 지향하는 시민으로서 더욱 절절한 눈으로 그때를 뒤돌아보고자 했다.이유가 하나 더 있다. 광주에 지니고 있는 일종의 채무의식, 더 나아가 '민주화의 성지'를 향한 애정과 존경심 때문에 의무감 같은 게 생겨났다. 광주 향한 망언, 통증으로 남다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택시운전사>는 내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다. 청년 시절 간접 경험했던 광주의 참상을 노년기에 접어든 오늘 영화로 직접 경험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참혹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여러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그 중 하나는 1980년대 중후반 태안성당에서 ‘가톨릭농민회’ 분회장을 지낼 때였다. 당시 독일인 기자가 찍은 비디오를 신자와 비신자들에게 보여주는 문제로 서산경찰서 정보과 형사들과 다퉜다.

결국 비신자들은 상영 장소인 강당에 입장시키지 않고 신자들에게만 보여준다는 조건으로 비디오 상영을 할 수 있었다. 그때 타협 과정에서 들었던 형사 한 사람의 폭언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아린 통증으로 남아 있다.

나와 학연 관계이기도 한 그 형사는 제13대 대통령 선거 시기이던 1987년 11월의 어느 날 저녁 우리 집 거실에서 광주의 비극에 관해 논쟁을 벌이던 중 놀라운 발언을 했다.

"당시에 내가 광주에 가 있던 부대장이었다면 더 많이 죽였을 겨. 더 많이 죽였어야 허는데 덜 죽여서 지금도 문제가 되는 겨!"

가까운 주방에서 저녁 일을 하던 모친과 아내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는 그 친구를 검찰에 고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함께 왔던 또 다른 정보과 형사의 읍소에 고발을 포기하고 말았다.

끔찍한 폭언을 던진 그 친구는 얼마 후 시인으로 등단했고, 수필도 쓰는 등 열심히 문인 활동 중이다.

또 한 가지 기억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공수부대원이었던 이웃마을 김아무개 후배와의 일이다. 어느 날 그 친구와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게 됐는데, 자연스럽게 광주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그에게 물었다.

“일개 병사였지만, 공수부대원으로서 광주 시민들에게 죄의식 같은 걸 갖고 있지 않나?”

그러자 그는 서슴없이 답했다.

“폭도들이었는데요, 뭘….”

나는 긴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

나는 그 후배를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어쩌다 보게 되어도 아예 말을 걸지 않았다.

오늘도 계속되는 전두환의 만행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건듯건듯 여러 '군바리'들, '똥별'들의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당시 최고 실권자였던 전두환을 비롯해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신군부 실세들이었던 노태우, 정호용, 유학성, 박준병, 박희도, 장기오, 최세창, 장세동, 허삼수, 허화평 등등….광주를 생각하면 자연적으로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대개 천수를 누리고 있는 자들이다. 불법으로 군대를 움직여 자국민들에게 마구잡이로 해를 가한 자들이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누린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더욱이 전두환은 최근 왜곡과 허위와 날조가 가득한 <전두환 회고록>이라는 책을 발간했다가 법원으로부터 판매금지 가처분을 받았다. 털끝만큼의 양심도 없어 보이는 그런 짓은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을 향한 모욕이자, 광주시민들을 향한 또 한 번의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전두환 등을 역사와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못한 게 새삼 천추의 한으로 느껴지는 요즘. 아마도 아내와 함께 또 한 번 이 영화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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