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뛰게하는 레드와인의 유혹
심장을 뛰게하는 레드와인의 유혹
최해욱의 ‘와인 이야기’ ㅣ ‘프렌치 패러독스’
  • 최해욱
  • 승인 2012.07.10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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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강의준비를 하며 자료를 모으던 중 우연히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 이전 우리나라의 와인소비가 정점을 찍었는데, 이 바탕에는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프랑스인들이 미국인과 영국인 못지않게 고지방 식이를 하고도 심장병에 덜 걸리는 현상, 그 원인은 레드와인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라는 주제가 버티고 있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 레드와인 소비량이 전체 와인 수입량의 80%를 넘어섰다는 기사(조금 시간이 지났지만)를 확인할 수 있었다.

프렌치 패러독스는 이미 여러 차례 신문지상에서 오르내리고 많은 찬반 논란이 오고간 주제이다. 필자는 마침 이 이슈의 발원지인 프랑스 수드 우에스트(Sud-ouest·남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인 뚤루즈(Toulouse)에서 와인학(Oenologie)을 전공했고 그곳의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전문가들까지 다년간에 걸쳐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었으며, 또 학술적인 연구자료 역시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무척이나 익숙한 주제이다.

최근 뮤지컬과 영화로도 개봉될 정도로 잘 알려진 알렉상드르 듀마(Alexandre dumas: 1824-1895, 프랑스의 극작가)의 대표작인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에서 나오는 정의에 불타는 시골뜨기 촌놈 달타냥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남서부의 가스꼬뉴(Gascogne)지방은 예로부터 프랑스 식도락의 한 축을 이루는 먹거리의 천국이다.

천혜의 자연조건 덕에 항시 제공되는 양배추와 콩, 감자 등 각종 신선한 야채와 허브 향신료, 그리고 오리나 거위, 돼지고기 등을 넣어 진하게 끓여 만든 수프인 ‘가르뷔르(Garbure)’나 뚤루즈 특산품인 ‘소시지(Saucisse de Toulouse)’를 넣어 언뜻 보면 우리의 메주와 무척이나도 흡사한 불린 콩요리 ‘까술레(Cassoulet)’ 등이 이 지방을 대표하는 유명한 요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은 지방이 많은 돼지나 오리의 부산물로 만든 여러 가지 요리들을 아침(Petit Dejuner)을 제외하고는 항시 즐겨 먹는다.

돼지다리를 통째로 훈제하여 숙성시킨 후 잘라 먹는 육포 비슷한 ‘장봉(Jambon)’은 그리 지방이 많은 음식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오리나 거위의 간을 인위적으로 비대하게 만들어 먹는 ‘푸아그라(Foie Gras)’를 비롯해 오리의 껍질을 기름에 튀겨 만든 ‘프리통 드 까나(Fritons de Canard)’, 돼지나 오리의 내장이나 부산물을 갈아 으깨어 만든 ‘빠떼(Pâte)’ 나 ‘떼린(Terrine)’ 등은 마치 우리의 된장이나 김치처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유 식단인 동시에 이 고장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한 음식들이다.

하지만 이 음식들은 이름만 들어도 가히 상상이 가듯이 심장질환의 주된 원인이 되는 엄청난 지방을 함유하고 있는 식품의 대명사들로 이런 지방 덩어리들을 주식으로 하는 이 고장 사람들이 되레 심장질환이 없이 건강하게 천수를 누린다는 사실은 예로부터 여러 사람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켜 왔다.

이 주제는 20세기 초부터 경제와 문화문제로 대두되어 1986년 OIV(Organisation international de la vigne et du vin·국제 포도 와인 기구)에서 처음으로 정의되었고, 1989년 ‘프렌치 패러독스의 항산화제(The French Paradox Antioxidants)’ 라는 주제로 George Riley Kernodle의 연구를 거쳐 보르도 대학의 르노(Renaud) 박사를 필두로 한 ‘지중해 식단과 오메가-3’ 연구진에 의하여 구체적인 결과가 발표되며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내용인 즉 프랑스인의 심장병 발병비율은 10만명 당 145명으로 미국의 315명보다 2배 이상 낮았으며 특히 이 주제의 발원지였던 수드 우에스트 지역 사람들은 무자비한 지방섭취량에도 불구하고 심장질환 발병률이 80명밖에 되지 않아 일찍부터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인 식단을 가진 미국인들보다 1/4 수준이라니 가히 놀라울 만도 하다.

연구진의 관심은 당연히 이들이 섭취하는 음식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같은 식문화와 식습관을 지닌 프랑스 사람들 내에서도 특히 제르(Gers)지방의 남성비율이 프랑스 전국 평균보다 20퍼센트 이상 높고 90세 이상 남성의 비율도 전국 평균치의 2배나 높은 점에 주목한다.

이들이 주기적으로 섭취하던 식품들, 특히 이 근방에서 생산된 165개의 와인샘플을 분석하던 중 제르지역 와인 가운데서도 이 지역에서만 나는 토산 포도 품종인 ‘따나(Tannat)’로 생산된 와인인 마디랑(Madiran)에는 타닌(Procynidin)의 수치가 프랑스 와인의 대명사로 알려진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나 메를로(Merlot)품종보다 약 2배가량이 더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200-300mg 정도의 프로시아니딘 흡수는 혈압을 낮춰주고 동맥경화를 낮추어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때는 레스베라톨이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이는 칼로리의 흡수를 저해해서 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심장질환의 억제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침 이 마디랑 지역은 프랑스 20세기의 와인 양조사를 쓴 근대 양조학의 아버지(Pére de l'Oenologie moderne)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밀 뻬노(Emile Peynaud)’의 고향이기도 하다. 15세에 양조장에서 잡부로 술 담그는 일을 시작한 그는 그 당시에는 비정상적인 증상으로 여겨졌던 젖산 발효의 메커니즘을 발견하여 양조기술로 일반화를 시킨 것을 비롯하여 8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발견으로 양조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건강에 좋은 포도품종을 생산하는 지역에서 맛좋은 와인을 담그는 방법을 대중화시킨 사람이 태어난 것은 우연치고는 기막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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