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의 몽골·바이칼 기행] ③ 아비의 심장이 뜨거운 앙가라 강
[김선미의 몽골·바이칼 기행] ③ 아비의 심장이 뜨거운 앙가라 강
2500만 년 전부터 아비의 심장은 그렇게 뜨겁게 뛰었다
  • 김선미 언론인
  • 승인 2017.09.20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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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스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이칼 호와 앙가라 강의 경계. 왼쪽이 바이칼 호, 오른쪽 아래쪽이 앙가라 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굿모닝충청 김선미 언론인] 336명의 아들 중 유일한 딸이었던 앙가라 공주는 아비 바이칼 신의 기쁨이었다. 무릇 부모란 자식에게 좋은 짝을 맺어주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헌데 예나 지금이나 종종 자식과 자식사랑이 너무 지극한 부모의 뜻이 어긋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작나무 사이로 아스라이 보이는 바이칼 호와 앙가라 강.

앙가라 공주는 아비가 일찍이 정혼시킨 청년을 마다하고 북극의 에니세이를 사랑해 그를 찾아 나섰다. 금지옥엽 어떻게 키운 딸인데...아비는 딸의 배신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격노한 아비는 주위에 있는 큰 바위 하나를 번쩍 들어 딸을 향해 던졌다. 바위는 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그만, 딸에게 떨어져 앙가라 공주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바이칼호, 나가는 물은 사랑 찾아 떠나는 앙가라강이 유일

바이칼신과 앙가라공주의 슬픈 전설을 마주할 수 있는 체르스키 전망대 오르는 길.

앙가라 강과 바이칼 호의 경계 지점에 우뚝 솟은 바위, 바이칼 신과 바위가 된 앙가라 공주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작은 샤먼바위’의 전설이다. 브랴티야족 샤먼들은 이곳에서 바이칼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샤먼바위는 알혼섬에 있다. 실제 바이칼 호에는 300개가 넘는 강과 개천이 유입되지만 나가는 물은 앙가라 강이 유일하다. 앙가라 강은 북쪽으로 흐르다 예니세이 강과 합류하여 북극해로 흘러들어간다.

샤먼의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오색천이 주변의 나무는 물론 전망대 난간에까지 매어져 있다.

이 전설에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비 바이칼 신이 던진 것은 돌이 아니었다. 아무리 딸의 배신에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해도 어찌 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었겠는가. 하기야 요즘엔 자식의 생명을 파리 목숨보다도 하찮게 취급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말이다. 바이칼 신은 돌 대신 자신의 심장을 꺼내 던졌다.

바이칼 신이 앙가라 공주에게 던진 것은 바위가 아니었다

두 연인이 걷고 있는 고요한 앙가라강변.

혹독한 시베리아의 추위에도 샤먼바위 부근은 물살이 세고 빨라 얼지 않는다고 한다. 딸을 너무나도 사랑한 아비의 심장은 2,500만 년 전부터 그렇게 뜨겁게 뛰며 혹한으로부터 딸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노래하는 시인, 이지상의 감수성 풍부한 상상력이다. 나는 이 버전에 한 표를 던진다.

체르스키 전망대는 걸어서 올라가도 되지만 리프트를 탈 수 있다.

바이칼과 앙가라의 슬픈 전설을 잉태한 곳, 바이칼 호와 갈라지는, 앙가라 강의 시작점을 조망하기 위해 리프트를 타고 체르스키 전망대에 올랐다. 자작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야생화가 피어있는 경사진 들판은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바이칼호와 앙가라강을 동시에 조망하는 체르스키 전망대

떠들썩한 관광지임에도 물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바이칼 호수. 리스트비얀카

바이칼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대한 로망은 나만 가졌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근 국내에서 바이칼 호-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 열풍이 불면서 인터넷에는 현지인도 알까 싶은 온갖 정보와 사진을 담은 여행기가 차고 넘친다. 하기야 머릿속으로는 하루에도 기와집 열두 채도 더 지으면서 행동은 굼뜨기 짝이 없는 나 같은 사람까지 짐 꾸려 길 떠났으니 오죽하랴.

바이칼과 앙가라강을 동시에 볼 수 있어 관광객이 몰려드는 리스트비얀카에 밀려드는 차량 행렬들.

바이칼 호수와 앙가라 강을 동시에 볼 수 있어 관광객이 몰려드는 작은 관광도시 리스트비얀카 같은 곳은 한국의 피서철 도떼기시장 이상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 70km 떨어진, 버스로 한 시간쯤 소요되는 바이칼 호와 비교적 가까운 곳인 이곳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더 복잡했겠지만 좁은 도로에 끝없이 밀려드는 차량과 사람들로 혼을 뺀다.

바이칼-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 열풍, 북적이는 바이칼의 도시들

해변을 즐기듯 바다 같은 호수에서 여름을 만끽하는 사람들.

좁은 길 한편에 촘촘하게 들어선 숙박업소, 식당, 카페, 바다 같은 호수를 종횡무진 누비며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과 모터보트 등등. 한국, 중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내 여행객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해변을 즐기듯 바다 같은 호수에서 선탠을 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먹어줘야 하는 바이칼 호에만 서식하는 그 유명한 오물.

바이칼 호에만 서식하는 그 유명한 생선 오물(Omul)을 파는 노천 재래시장 역시 발 디딜 틈이 없다. 말린 것, 뜨거운 방식의 훈제, 찬 훈제, 절임 등등 생선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리방법을 동원한, 청어와 비슷하게 생긴 오물은 민물고기 특유의 비릿한 내음에 굉장히 기름지다. 지방이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현재는 멸종위기 생물로 지정돼 허가된 사람만 잡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훈제, 건조, 절임 등 갖가지 조리방법으로 먹는 오물은 지방이 무려 30%나 차지한다고 한다.

시장에서 산 오물과 보드카를 들고 관광객이 넘쳐나는 리스트비얀카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앙가라강변을 찾았다. 강은 바이칼 신의 분노와 앙가라 공주의 애절한 사랑도 무심히 흘려보내는 듯 햇살에 물결을 반짝이며 고요했다.

리스트비얀카 앙가라 강변의 풍경들.
리스트비얀카 앙가라 강변의 풍경들.
리스트비얀카 앙가라 강변의 풍경들.
리스트비얀카 앙가라강 근처에 있는 러시아식 여름 별장인 다차.
세계 최대의 담수를 자랑하는 거대한 호수를 옆에 두고 있음에도 빗물을 모아 사용한다.

※ 이 글은 <세종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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