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싸잡아 거침없는 직격탄을 날렸다. 타깃으로 삼은 박 시장보다 되레 정 의원 자신이 마치 한풀이하듯 도를 넘는 폭언을 쏟아낸 것이다.

대체 박 시장의 어떤 발언이 정 의원의 심기를 그토록 건드린 것일까. 박 시장은 이날 오전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전날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고소,고발한 데 대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을 국가기관과 사회단체, 언론, 지식인 모든 사람을 동원해 음해, 사찰, 공작을 했다”며 “최대의 정치보복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했던 것이고, 그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이 불행한 선택을 한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의 직접 피해 당사자인 박 서울시장이 국정원 공작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해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바로 이에 화가 치밀어 정 의원은 작심한 듯 억눌렀던 감정을 폭발시켰다. 표현의 수위는 거의 정제되지 않은 채 터져나왔다.

두 사람의 발언을 짚어보면,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에 대한 인식에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 시장으로서는 이 전 대통령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국정원의 정치공작으로, 가족을 포함한 서울시정 등에 대한 온갖 압박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당한 직접 당사자라는 점에서 충분히 할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권력이 저지른 공작정치로 인한 적폐는 반드시 청산돼야 할 필수조치로, 그런 과정을 통해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인식에서다.

반면에 정 의원으로서도 직접 가해자는 아니었을지언정,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면서 이 전 대통령과 한 솥 밥을 먹었던 과거 이력을 감안할 때 반박은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표현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과, 주장 또한 평정심, 균형감, 합리성을 모두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따가운 지적과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대뜸 “노무현을 이명박이 죽였다는 말이냐”고 신경질적으로 몰아붙이면서, 노 전 대통령 자살 당시의 검증되지 않은 정황을 마치 확인된 사실인 양 기정사실화한 대목은 논란의 여지가 커 보인다. 또 ‘적폐청산=한풀이 정치보복’이라는 일방적 등식의 논리를 전제한 뒤, “적폐청산을 내걸고 정치보복의 헌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 굿판을 즉각 중단하라”고 언급,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마치 적폐청산으로 자신이 큰 정치보복이나 곤욕을 당하고 있기라도 한 듯, 감정풀이식 대응을 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다. 박 시장의 이날 인터뷰 발언에 정 의원을 자극시킬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최근 올린 그의 또다른 페이스북 글도 눈에 거슬린다.

그가 “’적폐청산’이라 쓰고 ‘정치보복’이라 읽는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바로 전날 페이스북에서도 그는 “오늘 박원순 서울시장이 첫 짱돌을 들어 이 전 대통령에게 던졌다. 개그우먼 김미화 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부끄럼 없이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현실이 어이 상실'이라고 맹비난했다. 박원순 문성근 김미화 씨가 이명박 정부시절 밥을 굶었나요, 린치를 당했나요, 징역을 살았나요”라고 되물었다.

정 의원의 표현은 “밥 굶지 않고, 린치 당하지 않고, 징역만 살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압박과 공작을 당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설마 이 나라를 경찰국가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하는 발언이다. 지나친 생각일까?

정치권의 한 중진의원은 “국가와 정부가 국민에 우선한다는 반 민주적인 주장으로, 굉장히 천박한 극우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면서 “특히 국회의원 4선 중진에 새누리당 원내대표까지 지내면서 권력을 향유하기만 했던 사람의 인식이 이 모양이라면 ‘보수꼴통’이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고 맹비난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적폐청산’ 움직임을 ‘정치보복’으로 반박하는 주장에 대해 “모기가 보이면 잡아야지 (보여서 잡으면) 아까 문 데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같은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 "그에 대한 한이 있어 정치보복을 가한다 해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잘잘못은 밝히되 용서하는 게 더 멋있지 않겠냐"고 밝혔다. 한 때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 전 의원마저 이런 논리를 펴고 있는데, 하물며 정 의원은 대체 무슨 주장을 늘어놓는 것일까? 정 전 의원에 비해, 자칭 이 전 대통령과 더 가까운 측근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과 정치보복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며 “이렇게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에 ‘정치보복’이라는 말로 찬물을 끼얹으려는 구태 정치인의 작태는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헌법유린 행위를 바로잡는 것을 정치보복이라고 한다면, 법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의 소치"라며 "차라리 '자신이 권력의 덕을 봤으니 좀 적당히 봐달라'고 실토하는 게 솔직하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