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유등천 따라 구비구비 옛이야기가 핀다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유등천 따라 구비구비 옛이야기가 핀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63) 새벽에 만나는 가을 풍경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09.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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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우리말이 다양하다는 게 비슷한 뜻을 가진 유의어들이 많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날이 밝은 무렵이라는 뜻의 새벽만 봐도 그렇다. 꼭두새벽은 아주 이른 새벽을 말하고 어슴새벽은 조금 어둑어둑한 새벽을 말한다 그리고 첫새벽은 날이 막 새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을 뜻한다.

새벽 5시 30분이 가까워지자 옛 충남도청사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30분 정각이 되자 삼십 명 가까운 인원이 됐다. 이들은 대전스토리투어 가운데 새벽에 운영하는 코스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이른바 새벽힐링투어는 말 그대로 새벽에 대전의 풍경을 보는 프로그램이다. 대전스토리투어를 이끌고 있는 대전체험여행협동조합의 안여종 대표는 참가자들에게 새벽을 설명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꼭두새벽에 나와 어슴새벽에 길을 접어들게 되는 오늘의 코스는요. 유등천을 따라 걷다가 무수동 유회당에서 아침을 만나는 길입니다”

옛 충남도청사를 출발한 버스는 20여분 남짓 달려가 대전과 맞닿아 있는 금산군 복수면 구만리 천변에 도착했다. 구만리라는 이정표를 보자, 앞길이 구만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쉽게 잊혀지지 않을 지명이다.

차에서 내리는 참가자들 대부분은 중년의 나이를 보였다. 20대 딸을 데려온 엄마, 50대 후반의 부부, 40대 중반의 친구들, 참가자들은 모두 처음 보는 이들이었지만 새벽을 공유하려는 공감대는 비슷해 보였다.

유등천변 따라 걷기
새벽의 어둠이 가시기 전이어서 풍경보다는 발걸음을 조심하게 됐다. 몇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날은 금세 밝았다. 유등천변 농가에서 들려오는 개소리 닭소리 만으로도 이곳이 시골 천변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키작은 야생화.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이산 저산 날아다니는 산새의 울음만으로도 복잡했던 마음을 내려놓기에 충분했다. 많은 이들은 낮은 감탄사를 뱉어냈다.

“코스모스 참 이쁘다” ‘꽃보다 당신이 더 이뻐“

이런 농담도 중년의 아저씨를 사이에서 나왔다. 유등천 새벽길을 걷는 매력 중 하나가 징검다리다. 많은 이들이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거나, 아니면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가 냇물을 건널 때 징검다리를 이용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참가자들은 징검다리를 걷다가 잠시 돌 위에서 발 아래 흐르는 물을 쳐다보곤 했다. 안여종 대표가 돌 위에 서있는 이들에게 귀를 손으로 모으고 물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어머, 물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네” “신기하네” “이런 거 처음 해봐요”

손바닥으로 살포시 귀를 모으자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그냥 듣는 물소리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돌을 스치고 지나는 물소리가 새벽공기를 깨우고 있었다. 누군가 징검다리의 기억 가운데 유난히 생각나는 장면을 꼽으라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소설의 앞부분에는 소년이 징검다리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소심한 소년은 소녀가 징검다리에서 물장난을 칠 때마다 비켜달라고 말을 못하고 소녀가 갈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자 소녀는 “바보”라는 말과 함께 돌멩이를 소년에게 던진다. 소녀와 소년의 애틋한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전의 국어교과서에 이 소설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중년의 세대들은 잠시나마 추억 속 소년 소녀에게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징검다리를 지나 코스의 중반쯤 되었을 때 안여종 대표가 수달 얘기를 꺼냈다.

“제가 얼마 전에 이곳에 아들과 함께 놀러왔는데 바위에 앉아있는 저희를 물속에 있던 수달이 눈만 꿈벅꿈벅하며 바라 보더라고요“

수달은 천연기념물로 유등천이 그만큼 친환경적인 생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수달과 감돌고기 등 유등천의 생태에 대한 설명에 참가자들을 귀를 기울였다.

한 시간 가량 쉬엄쉬엄 걷자 침산동 수련교가 나왔다. 일행은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유회당이 있는 무수동으로 향했다.

무수동 은행나무 아래 새벽국수 그리고 유회당
무수는 말 그대로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근심 걱정없는 평안한 분위기가 반긴다. 일행은 초가지붕으로 만든 정자 앞에 섰다. 정자에는 현판이 네 개가 붙어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름도 네 개를 붙였다고 한다.

광영정을 비롯해 인풍루, 관가헌, 애월란 등으로 불리는 정자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행을 안내하던 가이드 둘이 차안에서 박스 두 개를 꺼내왔다. 짐을 풀고 그들이 차린 것은 국수였다. 멸치육수가 진한 국수는 별미였다. 새벽기행길에 국수를 만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 국물 좀 더 주세요” “와 맛이 끝내주네요” “이런 육수는 어떻게 만들어요”

국수 한 그릇에 대한 칭찬은 이어졌다. 말로는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로 깔끔하고 톡 쏘는 매운 맛은 안여종 대표의 부인 솜씨다. 십수 년이 넘는 국수삶기 경력에서 나온 맛이다.

국수그릇을 내려놓고 찾은 곳은 유회당이다.

유회당은 조선시대 학자 권이진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이다. 앞면과 양쪽 면에 난간이 돌려진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다. 여름이면 큰 배롱나무가 관람객을 반기는 명소다. 일행이 찾은 새벽에도 배롱나무는 여전히 분홍꽃을 자랑하고 있었다. 유회(有懷)는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유회당 앞에 서면 하해와 같은 부모님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유회당을 둘러보던 일행은 마침 후손을 만나 짧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마다 소감을 한 마디씩 남겼다.

“대전에 50년 넘게 살았어도 이번 코스는 처음이네요” “대전에 멋진 풍경이 있는 하천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다음에는 친구들 데리고 또 와야겠어요”

아름다운 비경과 빼어난 절경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고 있기에 더욱 정겹고,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어 새벽기행은 신선했다. 알고 보면 볼거리가 많은 대전, 더 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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