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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향토서정에 스며든 감각과 관능

    사진=김지숙

    향토서정에 스며든 감각과 관능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칩칩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이 동업의 조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이 있었을까. 내일 대화 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번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려 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의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쟁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조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이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 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 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치울 젠 딴은 대단한 나귀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 물울 끓여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 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 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부분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제목은 ‘메밀꽃 필 무렵’이지만 메밀 관련 서술은 거의 찾기 어렵다. 이보다는 주로 ‘혈육찾기’라는 동기를 중심으로 서서가 전개되는데 단편소설이지만 작품의 분위기나 문맥, 작가의 호흡 등은 오히려 시의 경지에 가깝다. 1930년대 중반 일제 강점기 식민지 수탈책동이 고조될 무렵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 소설이 갖는 시적 서정탐닉과 서구 취향, 탐미성향에 대한 작가의 경도 등은 독보적인 색채로 드러난다. 이효석 초기 작품에 나타나던 현실비판과 고발은 보이지 않는다. 허생원과 동이 사이의 혈육의 끈을 짐작케 하는 여러 암시가 개울이라는 자연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펼쳐진다.

    이효석은 이 작품에서 일견 서구취향으로 볼 수 있는 육체적, 관능적 감각을 고유의 토착정서에 투과시켜 그려냄으로써 우리 소설문학에서 독특한 시정을 일구어 냈다. 허생원의 회고형식으로 전개되는 추억과 회한, 삶의 애수는 장터-산길-달빛-메밀꽃-개울 같은 향토적인 자연을 배경삼고 있지만 거기에는 작가가 조성한 신비스러운 정서와 묘한 분위기가 스며들고 있다. 봉평장, 대화장을 거쳐 허생원이 가려고 하는 제천은 지금에야 차편으로 이내 닿는 지척이지만 당시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에서 이 소설이 문체와 감각의 현대성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작품임을 실감한다.


    이규식  victorhugo21@goodmorning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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