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개여울의 기다림,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개여울의 기다림,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 이규식
  • 승인 2017.10.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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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상운

개여울의 기다림,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김소월, ‘개여울’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21세기 벽두, 어느 시 전문 계간지가 문인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우리 문학의 가장 위대한 시인 설문조사에서 첫 번째로 꼽힌 김소월, 32살의 짧은 생애, 그리 많지 않은 작품을 남기고 간 그의 시를 나지막히 읽노라면 일정한 리듬이 살아난다. 그의 작품은 상당부분 7·5조 음수율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7·5조가 널리 도입된 것은 현대문학 도입기 창가(唱歌)가 크게 유행하던 때와 일치한다. 주로 애국애족과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면서 서양식 곡을 이용한 노래인데 찬송가나 학교 교가 그리고 최남선의 ‘경부철도가’ 등이 대표적인 7.5조인데 필자가 졸업한 고등학교 교가 “흘러흘러 흘러서 쉬임이 없고/ 솟아솟아 솟아서 그지없는/ 흰 뫼와 한가람은 무궁화 복판/ 거기솟은 우리집 이름도 중앙....”도 이제 보니 7.5조를 충실하게 따랐던 노래였다. 작사가는 역시 최남선 선생이었다. 7.5조 리듬도 결국은 3.4조, 4.4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우리 민족 취향과 성정에 부합하는 가락이었을 것이다. ‘진달래’, ‘풀따기‘, ’접동새‘를 비롯한 김소월의 7·5조 시편들은 겉으로는 창가와 유사한 모습이지만 막상 내면의 정서나 노래하는 지향점에서는 확연히 구분된다.

김소월 시는 뭐니뭐니 해도 ‘님’을 중심으로 노래된다. 님과의 이별, 그 크나큰 상실감과 아울러 재회를 기다리는 가냘프지만 강인한 의지는 김소월뿐만 아니라 1920년대 우리 시의 공통된 관심사로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비분강개 심정아래 ‘님’을 나라, 민족, 국권회복 염원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김소월의 경우 원초적인 그리움과 이별의 출발점인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의 정한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해 보인다.

지금처럼 자극적이고 감각에 치우친 사랑 표현이나 집착, 나아가 복수로 이어지는 어긋난 사랑의 진전과 결말에 익숙한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100년전 소월이 노래한 사랑과 인종, 체념 그리고 나름의 헤아림은 대단히 순진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심성의 토로로 비친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라는 대목의 해석, 속뜻은 결국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라는 마지막 구절로 마감되지 않을까. 오지 않는 당신을 그리워 하며 살아가는 안타까움과 답답함, 그러나 결정적인 체념을 하기에는 너무 그리운 순수한 사랑의 원형을 읽으며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여러 유형의 사랑의 변형 앞에서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라는 대목의 의미를 유추해본다. 궁핍한 시대, 척박하고 짧은 생애에 시인이 토로한 기다림과 정한, 체념과 미련, 야속함과 그리움이 온통 얽히고설킨 이 짧은 시 한편에서 사랑의 기쁨과 슬픔, 기다림과 그리움의 잔잔한 파문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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