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고민 Q&A] ‘고려장’ 유래가 궁금해요
[어르신 고민 Q&A] ‘고려장’ 유래가 궁금해요
  • 임춘식
  • 승인 2017.10.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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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Q. 우리 부부는 4남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석명절을 외롭게 지냈습니다. ‘현대판 고려장’ 신세였답니다. 우리뿐만 아니더라고요. 도대체 ‘고려장’이라는 말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 유래를 알고 싶습니다.(대전, 여 77)

A.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역사를 잘 안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우물쭈물하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이 모두 맞는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정작 국민인 우리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고려장’입니다.

요즘 사람들도 흔히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려장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 있었던, 부모님이 늙고 병들면 산속에 버려두고 죽게 하는 가슴 아픈 장례 풍습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정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옛날에 한 남자가 70세가 된 늙은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가 산속에 버렸습니다. 지게를 버리고 막 돌아서려 할 때, 따라왔던 그의 아들이 지게를 다시 가져가려 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남자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더니, “아버지가 늙어 70세가 되면 이 지게로 져다 버리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에 남자는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가서 효도를 다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모가 늙으면 깊은 산속에 버리고 오는 풍습을 ‘고려장’이라고 이해합니다. 사실, 고려 시대에 고려장이란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로 고려는 효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였으며, 늙은 부모를 잘 모시지 않을 경우 벌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고려장이라는 말은 어디서 온 걸까요? 고려장이라는 풍습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의 왕릉을 도굴할 때 너희는 고려 때부터 효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왕릉을 도굴해도 괜찮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 지어낸 것입니다.

어쨌든, 고려 때 병든 노인을 죽도록 내버려두는 풍속으로요. 정확히는 ‘고려 때, 병든 노인을 산 채로 구덩이 속에 들여다가 죽으면 그 곳에 장사지냈다는 풍속’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이러한 고려장이 우리나라 장례풍습이라는 데 의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대판 고려장’, ‘신 고려장’이라는 말이 종종 등장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고려장이 이제 와서 다시 나타났다”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이 고려장이 사실은 우리나라 풍습이 아니라면 믿어지지 않습니다.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던 ‘고려사’에는 오복(五福)이라는 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려시기의 다섯 종류의 상복에 대해 알려주면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삼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고, 관리는 100일간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정성스럽게 부모의 상을 보냈던 고려 사람들이, 부모를 내다 버리는 고려장이라는 풍속을 가졌을 리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왜 고려장이 정말 우리나라의 풍속이었다고 믿게 되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 있던 설화와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고려장이라는 장례 풍속을 믿게 되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중국의 ‘효자전’에는 원곡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곡의 아버지가 늙은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속에 버리고 돌아오는데, 원곡이 자기도 아버지가 늙으면 이렇게 버리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크게 뉘우치고 할아버지를 데려왔다는 내용인데, 고려장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또 ‘고려대장경’의 기로국(棄老國) 설화는, 노인을 봉양해서는 안 되는 기로국에서 몰래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던 대신이 아버지의 지혜로 나라의 위기를 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설화는 일본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들이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다 보면, 정말 우리나라의 풍속이었다고 착각할 만합니다.

우리나라 고려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깁니다. 사실 그 반대라고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니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고 현재까지 어르신을 공경하고 어르신에게 효도하는 자랑스러운 동방예의지국입니다.

고려장은 없었습니다. 고려장이 있었다고 믿고 있는 고구려, 혹은 고려의 역사에 대해 찾아보았을 때 고려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책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려의 역사를 알려주는 ‘고려사’에도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나와 있지 않고습니다.

고려 이후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아도 우리나라에 고려장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정작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책은 1924년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동화집’ 뿐입니다. 하지만 고려장과는 반대되는 역사 사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고구려 땅은 우리가 남아서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그들의 왕이 도주하고 백성들이 흩어져 산골짜기에 숨었지만, 우리 대군이 철수한 뒤에는 반드시 나머지 병사를 다시 모을 것이니, 이는 우리에게 큰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왕 아버지의 시체를 무덤에서 파내어 싣고 그의 생모를 사로잡아 돌아간 후, 고구려왕이 제 발로 와서 사죄를 하면, 그 시체와 생모를 돌려주어 은혜와 신의로써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고려장이 정말 우리나라의 풍속이었다고 믿게 되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 있던 설화와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고려장이라는 장례 풍속을 믿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두 중국의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와 고려장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깁니다. 사실 그 반대라고도 볼 수 있기도 해요. 대한민국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고 현재까지 어르신을 공경하고 어르신에게 효도하는 동방예의지국이었으니까요. 이처럼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부모와 노인을 공경하고 돕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웃어른을 존중하고 공경했던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역사가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절대 고려장이라는 단어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애초에 없는 단어이며 일본이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깎아내리고 역사를 폄하하고 자신들의 도굴행위를 (어차피 버린 부모의 무덤이다) 정당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려장’은 원래 없었습니다. 일본에 의한 역사 왜곡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도 일제에 의해서 날조된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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