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영화읽기] 당신은 지금 살아가고 계신가요, 살아지고 계신가요?
[고광률의 영화읽기] 당신은 지금 살아가고 계신가요, 살아지고 계신가요?
10편 10색 - 영화, 생각을 지배하다 : 바그다드 카페 ①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17.10.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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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지금 내 삶은 나의 것인가
삶이라는 것이 때로는 살아지고, 또 때로는 살아가는 것인데, 대다수가 ‘살아지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아예 살아지는 삶과 살아가는 삶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사는 삶이 대다수의 ‘평범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살아지는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는 나치에 복무했던 많은 사람들을 돌이켜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자유의지’는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이 자유의지가 사람을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누군가가 내 삶의 ‘선택’과 ‘책임’을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이런 인간심리를 정확히 간파하고 읽은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는 삶. 세상이 만든 프레임 속에서 그 메커니즘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삶. 대부분 이런 삶을 사는데, 대부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나를 이끄는 그 사람이, 내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나와는 도무지 맞지 않을 때 문제가 심각합니다. 개념 없고 독단적인 직장 상사 또는 가부장적 사고에 찌든 남편을 생각하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그다드 카페》에서 야스민(마리안 제게브레히트)은 걸리적거리는, 좀팽이로 보이는 남자를 과감히 정리하고(아니 남자가 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낯선 땅을 온 몸으로 맞아들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환락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의 언저리쯤으로 보이는 그 황량한 땅은, 모래바람이 날리는 썰렁한 벌판인데, 눈앞에 외줄기 차도만 보일뿐입니다(철로는 나중에 보이지요). 인도가 없어요. 야스민은 갓길 없는 차도를, 자신의 몸집보다 큰 트렁크를 질질 끌며 걸어갑니다. 정착할 수 없는 ‘나그네의 땅’에서 야스민은 몸을 쉴 숙소를 찾아갑니다.

여기서 모텔 여주인 브렌다(C.C.H. 파운더)를 만납니다. 야스민이 일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면, 브렌다는 일상을 던져버린 여자입니다. 불평불만에 가득 차 있고, 그래서 매사가 부정적이고 의욕 또한 없습니다. 삶에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희망도 없는데, 무척 신경질적이기까지 합니다. 파워풀한 신경질인데, 결국 이 신경질이 그녀의 업보이자 ‘에너지’입니다. 가진 것 없는 야스민과 가진 것 있는 브렌다가 이렇게 만납니다. 모텔주인과 숙박객 신분으로.

버려진 여자와 버린 여자
우리는 주어진 것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독일인으로 추정되는 야스민은 남자도 잃고, 아마도 고아로 추정됩니다만, 브렌다는 남편도, 아들 딸 두 명의 멀쩡한 자식도, 종업원과 얼쩡거리는 지인들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그다그 카페와 모텔과 주유소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브렌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무용지물만도 못한 것같습니다. 철부지 천하태평 남편은 제몫을 못 하고(안 하고), 온종일 피아노에만 매달려 있는 십대 아들은 엄마 없는 어린 아기의 아빠[未婚父]입니다. 아마도 사고를 친 것이겠지요. 딸은 또 어떤가요. 딸은, 그리 영양가 있어 보이지 않는 남자친구들 또는 주유소를 들르는 트레일러 운전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노는 것이 전부인 듯합니다. 아마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놀다가 돈이 필요하면 엄마인 브렌다를 찾아오는 것같습니다. 종업원 카후엔가는 카페에 커피기계가 고장 났음에도 만고강산입니다. 수준이 남편이 살과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추어 화가와 트레일러 운전사들을 상대로 문신을 박아주는 여자 데비도 그저 일상을 반복하는 여자입니다.

이들 모두는 브렌다의 신경질에 길들여진 사람들입니다. 얼핏 갑/을 관계처럼 보이는데, 그 때문인지 브렌다는 힘없는 독불장군 행세를 하며 지친 일상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나그네의 땅에 혈혈단신 버려진 야스민에게 브렌다의 사람들과 카페 숙소 주유소는 비빌 언덕입니다.

 

같이 보태고 나누는 삶
브렌다의 껍질은 단단합니다. 야스민은 이 단단한 껍질의 정체가 외로움과 불안이라는 것을 읽어냅니다. 스스로 고립되었건, 누가 고립(왕따)을 시켰건, 브렌다는 혼자입니다. 그러나 야스민과 같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을 거느리고, 장사를 해야만 하는데, 모두 제몫을 하지 못하고 기생하는 사람들뿐입니다. 물론 브렌다의 생각입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스스로 변하라. 그러면 세상이 바뀐다, 라고 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변하지 못하는 브렌다를 야스민이 변화시킵니다. 야스민의 지극정성에 급기야 브렌다의 마음이 열립니다. 이 마음이 열리자, 그 마음  속으로 모두가 드나듭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고, 치유됩니다. 이걸 유대와 나눔 또는 소통이라고 하지요.

바그다드 카페는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풍족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습니다.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벌판 가운데 자리 잡은 외진 카페, 주유하러 들른 운전사들이 커피 한 잔 하고 가는 것이 전부인 카페. 모르긴 몰라도 모텔 또한 장거리 운전사가 어쩌다 자고 가는 게 전부일 것입니다.

주구장창 피아노 건반만 두들겨 대는 십대 아들은 미혼부지요. 또 다른 십대 딸은 바람난 망나니 같습니다. 남편은 또 어떤가요. 아내의 잔소리와 신경질을 못 견뎌 할 뿐, 아내의 잔소리와 신경질의 원인을 생각해보거나, 줄여줄 어떤 노력도 행동도 취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브렌다의 탓이고 잘못입니다. 그래서 (돈 내는) 식객들은 브렌다가 안쓰럽고 측은할 뿐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왜 그렇게 살아, 라는 눈빛들입니다.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살아지는’ 사람들을 향해 속삭입니다.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I'm calling you), 안 들리나요?(Can you hear me?)
가수 제베타 스틸은 몽환적 목소리로 읊조리듯 ‘Calling You’를 부릅니다.
 ‘Calling You’는 꿈결인 듯 잔잔하나, 지나치는 말인 듯 무심하나, 성철스님의 ‘이뭣고?’, 당대(唐代) 선승의 ‘할(喝)!’ 그 이상으로 ‘살아지는’ 삶을 깨우는 죽비처럼 따끔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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