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추억의 현재 진행형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추억의 현재 진행형
  • 이규식
  • 승인 2017.10.21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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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현재 진행형

바다를 나누는 일도 마음으로 먼저 한다는
여기서 나의 눈은 혼자 그물을 걷고 있다 
그가 오목교를 지나 포장마차에서 보내던 겨울은 
넝쿨이 된 손을 잡고 천천히 지나고
 
나의 소리는 어딘가에서 쉬지 않고 돌아온다  
언젠가는 나를 향해 그물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죽은 눈은 웃지 않는다는 말이
여기서 돌아갈 이유가 되진 않겠지
 
나는 나의 새로운 이름을 짓고 있다 여기서
꽃을 피우는 비법을 조금 전 하나 더 찾았다는 
테이블 위에 소주를 세 병째 갖다 놓고
미역국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누구에게 축하인사를 해야 하는 것인가
꽃잎은 흐르는 물에 있어야 흘러가는 것일까

다리 위로 걸어 나가는 너의 눈을 본다
입맛을 당기던 숨소리 들리는 여기서
세발낙지의 다리들이 참기름과 소금장에 꿈틀거린다
다리 아래 10년 동안, 여기서 물이 흐르고 있다

- 이덕주, ‘여기서’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시는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쓰여질 때 더욱 힘이 생긴다. 과거의 시점이든 미래의 어느 순간이든 그 중심축은 현재자리가 되어야 하며 과거의 시적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발화되던 과거시점의 현재라는 순간을 그려야 한다.

이덕주 시인은 고교시절 문재를 발휘하여 주목받았는데 대학 졸업 이후 오랜 기간 직장생활로 인하여 문학에서 멀어졌다. 50대 중반 새로이 문단에 진입하여 시와 평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으로 지명도를 넓히고 있다. 친화력과 나름 내공이 쌓인 창작경륜 그리고 불교철학에 대한 이해는 이덕주 시인의 저력이다. 시에서의 ‘현재성’의 생명력에 천착해온 시인은 지금 오목교 인근 술집에 앉아 있다.

“여기서” “오목교를 지나 포장마차에서 보내던 겨울”, 그 이전부터 화자와 연관된 사건이 이어진 10여 년 전 당시의 추억을 “그물을 걷어내듯이” 회상하고 있다. 화자와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는 지금 행방을 모른다. 한 시절 가깝게 지냈지만 지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생사조차 알 길 없는 친구를 떠올리며 “테이블 위에 소주를 세 병째 갖다 놓고” 나름 상상을 부풀려 간다. 추억과 상상의 교집합 속에 현장의 장면이 등장한다. “입맛을 당기던 숨소리 들리는 여기서/ 세발낙지의 다리들이 참기름과 소금장에 꿈틀”거린다. 먼 과거로부터 지금 여기까지 물은 흐르고 흐르는 물이 있어서 꽃잎도 흐른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그물에 걸린 꽃잎처럼 “다리 위로 걸어 나가는 너의 눈을 본다”.

시인이 지금 여기서 길어 올린 추억의 실물감과 현장성, 미래로까지 이어지는 생각의 그물에서 잠시 독자들에게 저마다 간직한 추억과 사연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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