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즐거운 두 번째 청춘이 모이는 곳, 대흥동 청춘학교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즐거운 두 번째 청춘이 모이는 곳, 대흥동 청춘학교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64) 교장 전성하 씨를 만나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10.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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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성모병원에서 길을 건너 대흥동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고 왼쪽으로 중구청을 지나면서 한 번 더 길을 건너 걷다가보면 오른쪽 어느 건물에서 청춘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러면 다소 툴툴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볼 일이다. 시간이 잘 맞았다면 두 번째 청춘이 불타는 열기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인생의 한창 때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함께 즐기며 배우는 장년의 청춘학교가 그곳이다.

늦은 오후 시간, 텅 빈 교실 한 책상에는 장년의 여성분이 혼자 앉아있다. 사실 살짝 졸고 있다. 청춘학교를 세우고 이끌어가는 사람, 그래서 전 교장이라 불리는 노총각 선생님 전성하 씨는 그 여성분이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혼자 남아 열공하는 분이라고 귀띔한다. 넓은 중앙교실 한편에는 싱크대를 비롯해 냉장고에 밥솥까지, 어지간한 큰집 살림이 들어와 있다. 같이 수업을 하는 주중 5일 동안 바로 이 자리에서 밥을 하고 끓인 국에 김치를 꺼내고, 여기에 각자 집에서 싸온 음식을 더해 큰 잔칫집 같은 식사를 한다. 아니 서로 밥을 퍼주며 한 식구가 되는 장소라고 했다.

“우리 청춘학교는 나이도 성별도 따지지 않아요. 그래도 대부분 연로한 분들이니까 아프기도 하고 집안일도 많고 그렇게 그날그날 유동적인데 지금 서른 명 정도가 일상적으로 나오시고 적게 모이는 날은 스무 명 정도 같이 식사를 합니다.”

나이 많은 청춘들 사이에 나이 어린 교장 전성하 씨는 그렇게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밥을 한다. 한눈에도 큰살림인데 어떻게 유지하는지부터 궁금해졌다. 이런 안쓰러운 질문에 교장의 답은 이렇다.

“많이 퍼내야 또 많이 고입니다.”

많이 사람들이 같이 하면서 퍼내면 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뭔가 고인다는 말이다. 밥도 그렇고 정도 그렇다. 그런데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묻기도 전에 청춘학교 하우스콘서트 얘기가 먼저 튀어나온다. 이 콘서트는 대흥동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을 초청해 청춘학교에서 여는 공연이다. 지역에서 열고 있는 청춘학교도 알리고 지역 뮤지션들의 활동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 관객들도 다양하다. 청춘학교 학생은 물론이고 청춘학교를 물심으로 후원하는 사람들, 그날 공연하는 뮤지션의 팬들도 있고 그냥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와 같이 즐긴다. 그러니까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활동을 같이 나누는 공간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청춘학교를 소개해달라는 질문이 너무 늦었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요즘은 비문해자라고 해요. 청춘학교는 비문해자들이 모여서 한글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쭉 나아가죠. 이제 이일로 발을 내딛은 지 딱 4년 되었습니다.”

시고 쓰고 노래도 부르고 같이 영화도 보고
청춘학교는 전성하 씨 개인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고향인 영동에서 혼자 대전으로 이주해 학교를 다녔던 그가 친구의 권유로 야학을 시작한 때는 1996년이었다. 낮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녁이면 야학에서 공부하기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분위기도 당시에는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청소년들이 대다수였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야학, 그러니까 공적인 교육기관에 다닐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시설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점점 높아졌다. 또 대부분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을 돕는 일에서 문해교육으로 그 기능도 바뀌어왔다. 그렇게 2013년, 나이가 많아 저녁에 공부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청춘학교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었다.

처음 단 한명의 학생과 첫발을 내딛은 청춘학교는 1년 동안 선화동에 있다가 대흥동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복지관이나 관에서 운영하는 비문해자들을 위한 교육시설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했다.    

“그곳은 보통 학교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죠. 시간을 정해놓고 정확하게 등교하고 진도 나가고 3년이 지나면 졸업장을 줍니다. 개개인의 이해 정도와 환경, 목적을 따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움직이죠. 반면 우리 청춘학교는 아주 즐겁게 같이 지내는 공동체입니다.”

용기를 내어 글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은 대부분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시간을 비롯한 여건상 공부할 여유가 생긴 사람들로 서로 알음알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구심점으로 동질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교회나 동창회, 계모임 같은 곳에 가도 자신이 못 배웠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 숨겨야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모두가 같은 처지잖아요? 그렇게 식구가 되어서 즐거운 거죠. 시도 쓰고 노래도 배우고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고 대흥동의 좋은 전시공간도 같이 찾아다니죠. 또 이런 청춘이 어디 있겠어요.”

왜 모두 밝은 표정인지, 또 혼자라도 남아서 공부를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시작할 때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좋은 취지이지만 어떻게 운영되는지.

“우리 학생들은 소속감을 가질 정도로 아주 작은 액수만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후원자들이 있어요. 1만원씩 작은 금액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이제 1백 명을 넘었습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운영의 규모로 봐서는 턱없는 금액이다. 아무리 비영리 민간단체라도 교장을 제외하고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하고 선생님들도 있어야 한다.

“선생님들요? 15명 정도 되는데 모두 자원봉사자죠. 음악하는 사람, 연극하는 사람, 화가, 주부, 공부하는 분들 등 많은데, 큰 특징은 모두 와서 후원금 내고 수업해요.”

졸업이 없는 학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돈과 상관없이 모여 알콩달콩 지내고 있으니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을까? 돌아온 답은 하루하루가 재미있는 생활이라는 것이었다.

“원래 이 분들은 글을 무서워했죠. 읽고 쓰는 일이 무서웠잖아요. 평생 숨겨왔던 현실인데, 새로운 눈이 뜨이면서 마치 자식이 처음 걷고 말할 때 느꼈던 희열을 다시 느낀다고 해요. 하나하나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거죠.”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두려움의 대상은 검정고시라고 한다. 처음 보는 시험이기에 모두 두려움에 떨지만 막상 보고나면 떨어져도 후련하고 합격이라도 할라치면 집안에 큰 잔치가 벌어진다고 한다. 생활이 이러니 가까운 곳은 물론이고 산내, 신탄진, 멀리 벌곡에서도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청춘학교는 졸업이 없는 학교이다. 물론 여기서 공부해 예지중고등학교에 진학한 분도 있다. 잡채 정도는 수시로 해오면서 3년 동안 청춘학교 살림을 혼자 도맡아하다시피 했던 할머니가 떠나시자 또 다른 분이 그 역할을 하고 자처하고 있다. 이렇게 같이 지내다보면 가슴 아픈 일도 있다. 오래 함께한 분이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할 때이다.

모두가 즐거운 공동체로 청춘학교가 꿈틀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계속 즐거울 수 있는 미래도 담보해야한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재정적인 문제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후원으로 이끌어왔지만 기업의 후원이 아쉽다고 했다.

“서로 즐거워서 하는 일이기에 영리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두가 어느 정도 생활수준을 만들었으면 싶죠. 어르신들의 글을 모아 책을 내거나 인생을 담은 자서전도 내고 싶고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더 좋은 교육환경을 드리고 싶어요. 어르신들이 배움을 원하는 한 청춘학교가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공익적인 일에 관이나 기업이 적극적으로 후원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마저도 큰 단체로만 쏠리는 게 현실입니다.”

어려움은 있을지언정 청춘학교는 배우고 싶어 하는 두 번째 청춘들과 함께 힘차게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같이 공부를 나누고 또 열심히 동네를 돌아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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