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영화읽기] 각자의 삶이 각자의 몫일까…
[고광률의 영화읽기] 각자의 삶이 각자의 몫일까…
10편 10색 - 영화, 생각을 지배하다 : 바그다드 카페 ②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17.10.27 11: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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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커피가 없는 카페
아마도 신혼여행을 온 듯한 남녀가 길 위에서 티격태격합니다. 싸울 만한 이슈가 있어 싸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거나, 사랑하려 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것같습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것이 일방적이고 거칩니다. 급기야 각기 제 갈 길을 갑니다. 남자는 차로 사라지고, 여자는 큰 트렁크를 챙겨 황량한 벌판길을 터벅터벅 걷습니다. 땀은 비질비질 흐르는데, 흙먼지 길을 뚫고 하염없이 걷습니다. 그러고 허름한 모텔로 들어섭니다. 먼지로 덮인 모텔 카운터에서 무료해 보이는 여자(브렌다)가 또 다른 여자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이런 곳에서 자고 싶니? 잘 테면 자보든지. 뭐 대략 이런 시선으로 손님을 받습니다.

야스민(마리안 제게브레히트)은 이런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분위기에 전혀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객실에 들어온 야스민이 가방 속 짊을 푸는데, 대부분 방금 전 헤어진 남자 옷가지들뿐입니다. 브렌다(C.C.H. 파운더)가 운영하는 카페에서는 커피조차 마실 수가 없습니다. 고장 난 커피기계를 고치지 않은 때문입니다. 이 문제로 다투던 브렌다의 남편 살은 집을 뛰쳐나갑니다. 브렌다의 잔소리와 신경질을 못 견뎌 나간 것인데, 쫓겨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뒤늦게 야스민이 묵는 객실을 청소하러 간 브렌다는 트렁크 안에 잔뜩 든 남자 옷가지를 보고는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불만뿐인 브렌다로서는 본래부터 야스민이 못마땅하기도 했으니 잘 걸린 셈이지요. 쫓겨난 남편 살은 카페 근방을 맴돌며 이런 브렌다의 행동을 가엾은 듯이 관망합니다.

야스민이 직접 자기 객실을 청소할 때, 보안관 어니가 와서 검문을 합니다. 별다른 혐의점이 없어, 보안관은 (아마도 야스민의 심부름으로 사왔을) 커피메이커만 전달해주고 떠납니다.

브렌다는 야스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캠핑카에 묵는 자칭 화가, 루디 콕스의 장총을 들이대고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누군데, 손님이 주인에게 서비스를 해… 라고요. 그러고는 야스민에게 객실과 카운터 등을 청소 이전 상태로 원상복귀를 해놓으라고 억지를 씁니다.

마땅히 해야 할 남편도, 종업원도 하지 않는 일을 생면부지인, 그것도 손님으로 온 여자가 했으니, 브렌다는 당연히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원인, 이유, 의무가 있는 자들도 게으름과 핑계로 안 하는 일을 손님이 하다니요. 십대 딸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놈팽이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기만 하고, 미혼부인 십대 아들은 온 종일 피아노에 매달려 비슷한 음만 반복해 연주하며 삽니다. 종업원 카우엔가는 처삼촌 벌초하듯이 카페 일을 보고, 남편 살은 무사태평입니다. 눈 뜨면 매일 보는, 즉 한 울타리에 사는  데비와 화가 루디 콕스는 브렌다의 눈치만 살필 뿐이고, 여행 중에 텐트를 치고 카페 근방에 ‘입주’한 청년은 부메랑만 날려댑니다. 그런데 뭣도 아닌 여자가 아무런 대가없이 청소를 한 것입니다.

함께 하는 마술
야스민은 청소하려고 들어온 브렌다의 딸에게 다가갑니다. 야스민이 그녀의 눈높이에서 옷가지를 코디해줍니다. 그리고 미혼부 아들의 피아노를 경청합니다. 엄마인 브렌다가 소음 취급하는 연주를 야스민은 가슴으로 듣는 것이지요. 브렌다 딸의 부잡한 허영기가 의미를 갖고, 브렌다 아들의 의미 없어 보이던 피아노 연주가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스민은 미혼부의 아기까지 애정으로 돌봅니다. 이런 야스민에게 화가도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서로서로가 따로따로였던 사람들이 서로서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화가는 야스민에게 모델 역을 제안하고 그녀의 아름답고 고귀한 내면을 찾아내 화폭에 옮깁니다. 서로가 서로를 󰡐관계󰡑하는 가운데, 야스민은 더 넓은 소통을 위해 독학으로 마술을 배웁니다.

브렌다는 이런 야스민이 의심스럽고 지극히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야스민 품에 있는 (그녀의 손주인) 아기를 빼앗으며, 당신 애하고나 놀아, 하며 독설을 뱉습니다. 난 애가 없어요. 야스민의 답입니다.

브렌다는 야스민이 자신의 등에 대고 한 그 답을 듣는 순간, 그녀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측은지심이 생긴 브렌다는 드디어 오래 닫아두었던 자신의 마음을 엽니다. 이렇게 해서 브렌다의 마음이 열리자, 모두가 한 팀인 양 어우러집니다. 야스민은 카페에서 서빙을 하며 독학한 마술을 선보입니다. 이 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날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모델 야스민은 한 꺼풀씩 옷을 벗어 마침내 나체가 됩니다. 화가 루디 콕스와 점점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인데, 관계와 소통의 '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때쯤 보안관 어니가 다시 찾아옵니다. 노동허가증 없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며, 체류기간도 문제 삼습니다. 어니가 소문을 들었거나, 아니면 신고를 받고 온 듯합니다. 야스민은 홀로 떠나고(아마도 귀국이겠지요) 손님의 발길은 뚝 끊어집니다. 관계와 소통이 사라지니 각자의 고독 속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황폐해진 카페에서 브렌다는 오직 야스민만을 그리워합니다. 실연한 사람 모양 넋이 나가있습니다. 그래서 걸려오는 일상의 전화벨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는 합니다.

 

그래도 함께 가야 할 길
이러던 어느 날 야스민이 돌아옵니다. 이 장면은 ‘만남’과 ‘관계’의 중요성을 뼈에 사무치게 만듭니다. 야스민은 브렌다와 뜨거운 인사를 할 때, 자신을 미스 문슈테드나라고 합니다. 호적정리가 됐다는 뜻인데, 아마도 앞서 티격태격했던 남자가 남편쯤 되었었나 봅니다. 또한 자신은 이제 독립된 주체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때 문신녀 데비는 바그다드 카페를 떠납니다. 떠나면서 한마디 합니다. “여긴 너무 화목해요.”

아마도 찾아오는 화물차 운전수들이 문신을 하기보다 카페의 조촐하지만, 함께 하는 쇼를 더 즐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술은 한층 업그레이드 되고, 󰡐세미 뮤지컬󰡑 공연까지 합니다.
바그다드 카페는 이제 더 이상 각자의 폐쇄적 공간이 아닙니다. 제한된 작은 공간이지만, 오픈된 광장이 된 것이지요. 이제는 각자가 주체적 삶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한 관심 속에서 깊이 들여다봅니다.

드디어 존재감을 얻은 브렌다는 멀리서 관망만 하던 남편 살과 재회합니다. 남편은 변한 바 없지만, 브렌다가 변했으니 그 천하태평 문제투성이였던 남편이 달리보이는 것입니다.

이제 화가 콕스가 들꽃을 들고 미스 문슈테드나를 찾아옵니다. 찾아와 말합니다. 노동허가증, 비자가 다시 문제될 터인데, 그걸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라고요. 콕스가 프러포즈를 하는 것입니다. 야스민이 답합니다. 브렌다와 얘기해볼게요.

보지만 알지 못하고, 있으나 느끼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서로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소통과 교감을 이루지 못하면 희망도 행복도 찾을 수 없는 것이지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주제곡인 ‘Calling You’의 가사처럼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속에 사랑과 희망과 행복이 있음을 일러줍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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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준 2017-10-27 20:55:20
영화를 보면서 느끼지못한 교훈을 글로 배울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ksy1447 2017-10-27 16:44:46
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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