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② 첫날, 1440m 피레네 산맥을 넘다
[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② 첫날, 1440m 피레네 산맥을 넘다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7.11.02 15: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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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가 이번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렸다. 프랑스령 생장 피드 포르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성당까지 스페인 북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총 연장 800㎞에 달하는 이 길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물론 여행객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코스다.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이 길을 임 교수는 지난 9월 7일부터 17일까지 꼬박 11일에 걸쳐 횡단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매우 뜻 깊은 여정”이었다는 열하루 길 위의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9월 7일 목요일. 순례길 첫날이다. 날이 밝았으니 이제 떠나야 한다. 몽상을 끝낼 시간이다. 들뜬 마음이다.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다. 여기 생장에서 스페인 땅 수비리(Zubiri)까지 이다. 일정 중 가장 높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야 한다. 오늘 갈 길이 50㎞밖에 안 되지만 여정 중에서 가장 고난도 코스다.

고도 160m로 출발해서 최고 고도 1440m를 지나 530m에 도착한다. 거의 1000m를 가파르게 계속해서 올라가는 지형이다. 이 코스는 시작하는 장소의 국적을 따져 프랑스길이라 부른다. 나폴레옹 부대가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할 당시에도 이 길을 이용했다. 일명 나폴레옹 코스이다.

자전거에 무거운 짐은 독이다. 배낭에는 우비와 옷 몇 가지, 비상식량 등 최소한도로 넣었다. 대부분의 짐은 다음 숙소에 차로 운반한다.

풍광은 환상적이다. 알프스산맥을 능가했다. 위에서 본 목초지와 듬성듬성 풀을 뜯고 있는 양과 말들은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자연이 환영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저에게 할 이야기기가 많죠.” 이 곳은 4월까지 눈이 쌓인다. 겨울철에 이 루트는 봉쇄된다. 경사가 10도 이상 된 곳도 많다.

쉴 만한 곳에는 도보 순례자가 옹기종기 모여 햇살을 가슴에 안고 맥주와 커피, 빵과 같은 요깃거리를 들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런 카페는 5㎞나 10㎞ 간격으로 있어 순례자들에게 불편은 없다. 1000년 이상 유지된 순례길은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진 것이다.

카페 옆에는 잠자리가 있다. 알베르게(albergue)라 한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함께 쓰고, 개인 침대를 할당하는 여행자 호스텔의 도미토리와 같은 형태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것도 있고, 요금이 비교적 싼 공적인 시설도 있다. 사립은 7~10유로이고, 공립은 그것보다 2유로 정도 싸다.

가는 도중에 이정표는 여러 형태로 표시한다. 우리의 4대강처럼 헷갈리지 않는다. 순례길에 죽은 이의 무덤도 보이고, 천막으로 된 간이 카페도 있었다.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성모상이 우두거니 서 있었다. 나는 한그루 나무처럼 한참동안 그 앞에 서서 고개를 들고 말없이 쳐다보았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선은 없다. 그저 팻말 하나만 있다. 근처에 샘이 있어 사람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 샘이 ‘롤랑의 샘’이다. 롤랑이 프랑스에서 넘어올 때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

롤랑은 11세기 서사시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중세의 꽃은 말 탄 기사(騎士)다. 우리의 세속오계(世俗五戒) 화랑도처럼 가장 이상적인 기사도 정신이 노래에 들어있다. 충성심과 용맹, 명예심과 기독정신이다.

힘이 든다고 생각되면 ‘끌바’를 한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경치도 보고, 이것저것 생각도 한다.

이제 60 중반이 되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여야 한다. 어느 책에서 보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먼저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고 비움이다.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심각함과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천진과 순수로 돌아가 존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 생각한다. 그런 후 다시 가다듬는 것이다. 나는 이것 때문에 왔다.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의 자연을 되찾는 거다. 나답게 사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은 부족함을 알고 자족하는 것이다. 순례길 여행은 내 마음 여행이다.

5시간 정도 계속 경사진 곳을 올라가니 다시 내리막이다. 사고는 내리막에서 난다. 방목하는 말들이 길가로 나와 풀을 뜯고 있다.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잔뜩 긴장하니 손이 저렸다. 내리막길의 끝에는 작은 성당이 있다. 아마 순례자들이 무사히 이 고개를 넘어왔다는 감사 기도하는 곳일 게다.

2시쯤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보통 이곳은 도보순례자들이 묵어가는 첫 번째 숙소다. 순례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무사히 걸었다는 만족감인지 거리에 나와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맥주 한 잔을 놓고 멍 때리고 있었다.

도보로 가는 사람들은 보통 25㎞ 정도 걷는다. 바이커는 이보다 3배 정도 더 멀리 간다. 좁은 길을 갈 때는 왠지 미안하다. 그럴 때 우회도로를 이용한다. 먼저 “브엔 카미노(Buen Camino)”라고 말한다. “반가워요, 순례자”라는 뜻이지만 자전거가 지나가니 “죄송하지만 비켜주세요”라는 뜻도 있다. “안녕하세요”라는 “올라(Hola)”로도 인사한다.

다시 20여㎞를 더 달렸다. 저녁 7시다. 어딜 가나 여행자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가 있다. 사람들은 사랑할 때 사랑의 의미를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서야 문득 소중함을 알고 그곳을 바라본다. 다시 보고 싶은 코스다. 한순간의 환희를 위해 바치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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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17-11-06 10:19:06
와우~~
첫 코스부터 아주 멋진경치가
펼쳐져 힘듦을 조그이나마
잊으시게 될것 같습니다~

끝까지 쭈욱~~~
속도내어 밟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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