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④ 길에서 찾은 내 마음의 오아시스
[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④ 길에서 찾은 내 마음의 오아시스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7.11.05 17: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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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가 이번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렸다. 프랑스령 생장 피드 포르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성당까지 스페인 북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총 연장 800㎞에 달하는 이 길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물론 여행객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코스다.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이 길을 임 교수는 지난 9월 7일부터 17일까지 꼬박 11일에 걸쳐 횡단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매우 뜻 깊은 여정”이었다는 열하루 길 위의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9월 9일 토요일, 이제 3일째이다. 에스떼냐(Estella)에서 나헤라(Najera)까지 80㎞.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전거를 점검하고 체인에 기름칠했다. 흙먼지가 체인에 잔뜩 쌓여 떡이 되었다. 리더의 선창에 따라 준비운동을 한다. 준비운동을 이처럼 열심히 한 적이 없다. 유쾌한 출발이다.

일기예보에 비가 올 확률이 30%라고 한다. 아침은 15도, 쌀쌀하다. 어떻게 할까? 비에 젖으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체온도 유지할 겸 바람막이 옷을 입었다. 겨울철에 입었던 방풍복이다. 비는 오다 말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 때마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반복했다.

도시에서 벗어나 10분쯤 가니 큼지막한 술 창고가 보인다. 옆에는 이라체(Irache)성당이다. 길옆 정문 벽에 2개의 수도꼭지가 붙어있다. 한쪽은 와인이, 또 한쪽은 물이 나온다. 중세시대 이 길을 힘없이 걸어야 했던 배고픈 순례자에게 한 잔의 포도주는 신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한 모금 마셨다. 술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비는 간간이 왔다. 바람도 분다. 판초 우의 색깔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검은 판초 우의를 입은 몇 사람이 지나간다. 꼭 저승사자가 어디 찾아가는 모습이다. 3일째 접어드니 몸이 피곤하다. 뒷다리에 통증도 있다.

포도밭이 군데군데 보인다. 리 오하(R ioja)지역에 나는 포도 품종은 템프라니요(Tempranillo)이다. 스페인은 강우량도 적고 척박하다. 이런 땅에도 포도는 잘 자란다. 향은 그다지 많지 않다. 본래 상처 많이 받은 것들이 가장 향기롭다. 템프라니요 품종은 빨리 자란다. 웬만해서 상처입지 않는다. 향이 풍부한 그라나차(Garnacha)와 섞어 포도주를 생산한다.

스페인 포도 재배면적은 세계 1위이다. 포도 생산량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못 미친다. 포도밭 사이를 신나게 달렸다. 이따금씩 올리브나무도 보인다. 일행의 남자들은 올리브유를 사오라는 부인의 지시를 받은 모양이다. 올리브나무를 보자마자 잊지 않으려 한마디씩 했다. 나이가 먹으면 기억의 무게에 짓눌린다.

철조망이 있는 곳에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상이 마치 설치미술처럼 매달려 있어 순례의 의미를 확인시킨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시인 고은은 이렇게 읊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끝없는 황톳길을 따라 올라가니 이슬람교도인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무어인(Moors)들이 만든 우물이 있었다. 높은 언덕에 샘이 있다니 순례자들에게 오아시스였을 게다. 아직도 물은 그대로 있었다.

비야마요르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ín)은 몬하르딘 산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이 마을 입구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2세기 건축물인 산 안드레스 사도 성당(Iglesia de San Andres Apostol)이 있다. 멀리 산 정상에는 폐허가 된, 9세기 때 이슬람교도를 물리쳤던 산에스테반(San Esteban)성이 이 마을을 굽어본다.

끝없는 황토길, 내림과 오름을 반복했다. 황무지 한가운데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알베르게도 있었다. 한 쪽에 침대, 또 한 쪽에는 예수상과 성모상이 있다. 조용히 다가갔다.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내 부족함을 채워 주시는 당신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기부금 함에 2유로를 넣었다. 봉사자가 고맙다는 미소와 함께 먹을 물을 가져가라고 가리킨다.

3일간 연속해서 라이딩을 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곳에 왜 왔나하는 생각이 잠깐씩 든다. 사는 것도 그렇다. 그냥 산다. 우리는 어쩌면 잠든 영혼이다. 걸으면서 자신을 깨우는 것이다. 결국 인생도 그렇고, 까미노도 내면에서 깨는 과정이다. 인생을 어떻게 보내고, 슬며시 찾아오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의식하는 것이다. 올라오는 생각을 가만히 지켜본다.

아직도 풍경은 좋다. 긴 도로를 오르다 정상 부근에서 잠깐 쉬었다. 자전거 튜브가 펑크났나 노인 한 분이 끙끙대고 있었다. 재능이 많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일행 중 한 사람이 다가가서 간섭한다. 지식인이란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다. 남의 일이라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참견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낯선 이들을 도와줄 때 천사들을 돕고 있는지도 모른다.

멀리 로구로노(Logrono)가 보인다. 이제 내리막길. 조심조심 잘 내려왔다. 거의 평지일 때 앞바퀴가 심하게 흔들렸다. 몹시 당황했다. 나는 자전거를 버리고 길옆으로 쓰러졌다. 아찔했다. 다행히도 찰과상만 입었다. 자칫하면 완주하지 못할 뻔했다.

원인이 무엇일까. 오후 라이딩 내내 생각했다. 처음에는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회오리바람일거야. 그렇게 흔들릴 이유가 없는데…. 자세히 보니 앞 휠의 흔들림이 심했다. 어디에 부딪쳤나?

로그로노는 점심때쯤 들어섰다. 15만 명 정도로 제법 큰 도시이다. 라 리오하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점심 할 장소로 이동할 때 골목길 너머 뾰족한 성당을 보았다. 가다 말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영어로 된 간판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술 취한 오리(drunken duck)? 어디에서 본 듯하다.

소소한 행복이란 허기진 상태에서 생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이다. 스페인 요리가 들어왔다. 돼지 뒷다리를 숙성시킨 하몽(Jamon)은 약간 짜다. 파에야(Paella)는 유럽 최대 쌀 생산지인 스페인 쌀을 가지고 요리한다. 샐러드는 상추 같은 채소에 올리브유와 식초를 넣어 만든다. 모든 음식에는 매번 올리브유가 들어간다. 그들에게 신이 준 선물이다.

로그로노를 벗어나자 라 그레하 호수가 보였다. 오후에 포도밭이 즐비한 평원을 달렸다. 여기는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지이다. 어디에서든지 나헤라(Najera)와인을 선택하면 중간 이상은 된다.

가는 길에 산 위에 큰 소가 서 있었다. 대형 소 모형 간판이다. 스페인은 땅이 넓고 기후도 목축업에 적당하다. 스페인 메뉴에 송아지 고기, 양고기가 많다. 나헤라 지방도 축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6시가 넘어 나헤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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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17-11-06 10:35:23
숨가쁘게 따르다보니
벌써 4번째~~

자연경관에서 생활환경까지
하나씩 알아가는 쏠쏠한재미
숨쉬는것조차 잊을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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