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속력을 늦춘다.
제부도 앞바다 봄날 해질 녘눈앞이 온통 꽃불.
바람섬 승봉섬 이작섬 벌섬 동백섬 앞에 떠도는 꽃불 서로 건지려다
옆 섬에게 몸 내주며 한발 물러서는 것을 보노라면 마음결 한껏 성글어진다.
인간 사이에서 인간들이 저리 정답게 노는 광경 본 게 언제지?
빗물 얼룩진 유리 훔치듯 눈을 훔치면
수평선이 섬들 사이로 홍옥(紅玉) 끈처럼 흘러들어와
섬의 허리들을 가볍게 맨다.
섬들이 커다란 꽃으로 피어 숨쉬고
팅팅 부은 머리 불끈 쳐드는 황금 수술들,
심장 박동이 바다에 나가 쿵쿵댄다.
이 순간만은 신(神)의 눈길과 인간의 눈길 가르기 힘들리.
눈들 서로 헷갈릴까 인간의 눈을 잠시 바깥에 둔다.
출생부터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헬렌 켈러는 그의 수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봄이 오면 나는 벚나무의 가지를 손으로 더듬어봅니다. 벚나무 등걸 속으로 흐르는 물을 나는 손끝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놀라운 기적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맙니다. 여러분들이 하루에 한 시간씩만이라도 장님이 되거나 귀머거리가 된다면, 저 벚나무의 꽃과 저 나뭇가지를 날아다니는 새의 울음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사소한 기쁨이야 말로 최고의 은총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봄날은 연분홍 치마를 날리고 속절없이 가버립니다. 가고 오는 세월이건만 해마다 느낌이 다른 것은 무엇 때문 일는지요? 이것저것 비교하느라 세월이 야속하지만 그저 하나 둘 내려놓으면 이렇게 기쁜데, 며칠도 못가서 다시 주워 담으려는 탐욕 때문에 아쉬움이 잠 못 이루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