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영화읽기] 광기의 끝에서 궁극의 꿈을 만나다
[고광률의 영화읽기] 광기의 끝에서 궁극의 꿈을 만나다
10편 10색 - 영화, 생각을 지배하다 : 위플래쉬 ①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17.11.10 11: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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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귀신을 감동시킬 만큼
잠시 한국 안방 드라마 얘길 해야겠습니다. 부유한 사업가 아들이 등장하고, 가난뱅이 하층민( 또는 평범한) 가정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신분과 근본이 서로 다른데, 둘은 어찌어찌하여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이 어디 밥 먹여주나요. 부잣집 부모들은 부모자식 간의 연을 끊겠다며 결사반대하고, 철부지 아들은 급기야 가출을 합니다. 그 아들을 들여다보면 능력이 출중하고 무한가능성도 갖춘 인재입니다. 딱 한 가지, 인간성이 까칠한 게 별로입니다. 이런 남자가 사랑하게 된 여자는 지덕체를 고루 겸비한 팔방미인입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신분이 낮고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과거의 상처(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사회제도 또는 상대남으로 인해 발생한, 크게 문제 삼을 수 없는)를 안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여자는 갖은 굴욕과 핍박 더 나아가 공갈협박 속에서도 극한의 인내심과 배려심, 사랑 등으로 남자와 시부모자리를 감화 감동시켜 마침내 출신성분과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합니다. 이리하여 드라마는 부유한 자본가들이 돈만 밝히고, 우월적 지위로 얻은 특권만 향유하는 졸부들이 아니라, 정의와 덕 그리고 사람에 대한 존경과 세상에 대한 안목 등등을 갖추고 있는 이 시대의 ‘등대’인 양 그려집니다. 또 한 가지. 어떤 굴욕과 핍박과 부당함과 설움이 닥쳐와도 죽도록(정말 죽을 만큼 입니다) 노력하여 극복하면 신분과 계층 상승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자본주의사회의 미덕과 가능성을 넌지시 제시해줍니다. 말 그대로 자본의 현실과 모순을 왜곡하여 긍정적으로 극화한 드라마인데, 현실성과 개연성을 떠나 울고 웃으며 깊이 감응합니다.

도전, 불나방 같은
그럼 이제부터 ‘위플래쉬’를 얘길 할까요. 앤드류(마일스 텔러)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셰이퍼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역시 죽을 만큼 고군분투합니다. 그는 꿈·도전정신·열정·실천력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자기계발형 인재입니다. 그에게 ‘배경’은 없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일찍이 비전 없는 아버지와 갈라섰고, 아버지는 그저 평범한 교사쯤으로 보입니다. 어쩌다 모인 일가친척들은 각자의 자식들을 자랑하며 드럼이나 때리고 있는 앤드류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릴 뿐입니다.

정말 스틱 하나에 의지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최고를 꿈꾸는 젊은이지요. 이런 앤드류에게 플렛처 교수는 그를 궁극의 꿈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절대자입니다. 물론 플랫처는 재즈 밴드 지도 부분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보적인 존재인 것같습니다. 오로지 최고만을 지향하는 독불장군이지요.

앤드류는 이런 플랫처에게 ‘발탁’되어 정말 죽도록 연습합니다. 그런데 플랫처가 매우 이상합니다. 지도하는 방식이 가학적이고, 도를 넘는 주문과 요구가 끝이 없습니다. 성격은 괴팍함을 넘어서 엽기적이고, 언행은 동네 달건이 수준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적, 인종적 비하발언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앤드류의 부모까지도 모욕하고 비하합니다. 앤드류에게 의자를 던지고, 연주 템포를 문제 삼으며 뺨을 때리기도 합니다. 폭력적이지요. 인권위 제소 감을 넘어서 형사소송 감입니다. 그러나 앤드류는 오직 목표(꿈)만을 바라보고 플랫처의 지도만을 따릅니다. 플랫처의 모든 지도방식은 최고를 지향한다는 그의 교육목표로 인해 대다수의 학생들로부터도 용인됩니다. 그러면서도 플랫처는 자신 앞에서 숨조차 맘껏 못 쉬는 제자들에게 연습을, 연주를 재미있게 즐기라고 합니다. 정말 그는 즐기는 것같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자신의 교권을, 자신의 명성을, 자신의 권위를, 자신의 사디즘을… 종합세트로 즐기는 맘껏 것같습니다. 그는 극한의 연주실력 배양을 위함인지, 그의 주관적이며 모호한 평가기준으로 학생들을 상호 경쟁시킵니다. 인격모욕과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섞어서 써가면서.

앤드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겨우 사귀었던 여자친구와도 결별합니다. 그는 결별하면서, 자신의 꿈에 여자친구가 방해 된다는 말과 심지어 여자친구의 꿈 없음까지 문제 삼습니다. 못된 놈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플랫처의 기대에 부응하고 최고의 드러머로서 성공하기 위해 앤드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겁니다.

마침내 경계와 도(度)를 넘어
앤드류는 변태 사탄 같은 플랫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요. 플랫처는 ‘자신=선(善)=신(神)’인 인간입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별종인간이지요. 어느 인간이 이런 신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나요.

아무튼 앤드류는 어찌어찌 죽을 둥 살 둥 하여 권위 있는 경연대회의 주전 드러머로 참가하게 됩니다. 이른바 성공이 목전에 가까이 온 것이지요. 그런데 경연장으로 가던 중 버스 고장이 원인이 되어 헤매다가 랜터카를 빌렸는데 그만 사고가 납니다. 너무 서두른 탓이지요. 그러나 앤드류가 어떻게 해서 얻어낸, 어떤 대회인가요. 정말 피나게, 아니 죽도록 노력해서 얻어낸 대횝니다. 그래서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 피를 흘리면서도 스틱을 쥐고 연주를 합니다. 하지만 망가진 몸으로 정상적인 연주가 가당키나 한가요. 결국 플랫처에게 불명예를 안겨주고 경연을 망친 앤드류는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쫓겨납니다.

그러고는 연주를 떠나 한동안 알바 등을 하며 방황하던 중에 재즈를 연주하는 한 바에서 우연히 플랫처와 조우합니다. 피아노를 치는 플랫처는 학생 학대로 인한 교수법이 문제가 되어 학교를 잘린 상태였습니다. 이 조우에서 플랫처가 앤드류에게 자신이 지휘하는 밴드에서의 연주를 제안합니다. 그런데 이게 플랫처가 앤드류를 파멸시키기 위한, 의도된 함정이었습니다. 정말 사악한 스승이지요. 연주가 시작됐는데, 플랫처의 말과 달리 앤드류가 한 번도 연습한 적도 없는 곡을, 그것도 악보도 주지 않은 채 연주토록 합니다. 첫 곡을 버벅대며 연주 못한 앤드류가 황당해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관중을 등진 채 무대를 떠납니다. 그러나 무대 밖에서 잠깐 아버지와 만난 그는 다시 돌아와 드럼 앞에 앉지요.

그러고는 이 영화의 백미가 시작됩니다. 두 번째 연주곡은 앤드류가 그토록 죽도록 노력한 곡입니다. 거기에 드럼 단독의 즉흥연주까지 곁들이는데, 그 연주 속에 두 사람의 열정과 광기와 복수가 버무려져 극한의 전율적 연주를 빚어냅니다. 재즈의 궁극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앞서 망친 연주는 그 누구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신경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마침내 무대 위에서 연주와 지휘로 진검 승부를 벌입니다.

어느 순간에 앤드류가 연주로 플랫처의 지휘를 이끌고, 복수의 광기에 빠져 있던 플랫처는 마침내 최고를 향한 광기가 빚어낸 앤드류의 연주에 젖어들고 맙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결국 플랫처가 승복합니다. 그리고 둘은 각자의 궁극의 음악이 어우러지는 무아의 경지에서 하나가 됩니다. 플랫처가 복수(앤드류의 양심선언으로 자신이 음악학교에서 잘린 것을 압니다)하고자 파놓은 함정 속에서 둘이 극적 화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 영화의 끝입니다.

열정과 광기의 경계에서
앤드류는 마침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인고의 정점을 넘어 최고의 드러머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시부모자리의 멸시 구박을 이겨낸 한국 드라마의 젊은 여자처럼요. 이제 그들은 최고가 되었으니, 결혼을 하였으니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까요? 모르겠습니다.

누구든 자신만 믿고 죽도록 열심히 하면, 모든 장애와 한계를 극복하고 마침내 성공할 수 있다. 앤드류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초인)인가요. 아무튼 이 메시지를 주려고 이 영화를 만들었나요.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환경과 조건을 탓하지 말고, 이미 ‘있는 자들’의 전횡과 방해를 탓하지 말고 오직 너와 약속하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 그리하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기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너희 없는 자들에게 ‘있는 자들’이 베푸는 기회(시혜)이니라. 그리고 기회를 잡으려면 이런 통과의례쯤은 죽도록 넘고 넘어 거뜬히 거쳐야 하느니라, 인가요.

‘위플래쉬’는 여러 모로 심란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플랫처의 엽기적 교수법과 인간성은 일단 빼고) 앤드류의 꿈, 그 꿈을 향한 광기에 가까운 도전정신과 열정은 한번쯤 깊이 들여다 볼만 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성공은 열정과 광기의 경계 어디쯤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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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y 2017-11-10 15:09:08
위플래쉬 재밌게 봤었는데 또 한번 보고싶네요-!

김병태 2017-11-10 12:07:59
꼭 봐야 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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