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⑨ 1495m 이라고산에 모인 순례자들의 기도
[임영호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길]⑨ 1495m 이라고산에 모인 순례자들의 기도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7.11.1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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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라이더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가 이번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렸다. 프랑스령 생장 피드 포르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성당까지 스페인 북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총 연장 800㎞에 달하는 이 길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물론 여행객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코스다.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이 길을 임 교수는 지난 9월 7일부터 17일까지 꼬박 11일에 걸쳐 횡단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매우 뜻 깊은 여정”이었다는 열하루 길 위의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9월 14일, 8일째는 아스토리가(Astorga)에서 비야프랑카(Villafranca) 80㎞ 거리다. 이 길을 마치면 미세타 구간이 끝난다. 하늘을 보니 회색 구름이 가득하다.

10여㎞ 평지를 달리다 커피 생각이 났다. 마을 이름이 엘 칸소(El Ganso)이다. 스페인어로 칸소(Ganso)는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 지명과 같구나. 돌담길도 정겹다.

지금까지 20여㎞ 왔다. 이라고산 철십자가탑 정상에 올라가기 전에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에서 쉬면서 힘을 모았다. 인구 50명이 사는 마을이지만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모여든 곳이다.

계속 오르막길이다. 870m에서 1450m까지 올라간다. 처음에는 펑크 난 줄 알았다.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는 길이다. 정상은 날씨가 좋았다.

10㎞ 정도 가니 철십자가탑(Cruz de Ferro)이 보인다. 해발 1495m. 철십자가탑 주변에는 돌무덤이 있었다. 순례자들은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놓고 소원을 빈다. 순례자들의 기도가 돌무덤처럼 쌓여 있다.

“울지 마라. 힘드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움을 견디는 일이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기도할까.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 제목이 생각난다. “오래 사는 것보다 기쁘게 살게 해 달라.”

이제 20㎞ 정도 내리막길이다. 경치를 보는 것보다 자전거 앞을 더 신경 써야한다. 양들이 풀을 뜯다가 길가로 나왔다. 라이딩을 멈추고 양이 건너가기를 바랐다. 내리막길 마지막은 엘아세보(Ll Acebo) 마을이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일행을 기다렸다.

다시 한참을 내려가니 마을 입구에 성당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몰리나세카(Molinaseca). 여기서 점심을 한다. 지붕은 검은 넓적 돌 형태의 흑금석이다. 우리의 옛 구들장처럼 생겼다.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다.

마을로 들어오는 다리는 꽤 오래된 아치형 다리다. 로마시대의 유물 같다. 저쪽 건너 둑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이 보인다.

숙소까지 20여㎞ 남았다. 1시간 정도 가니 중세의 ‘템플기사단’ (Knights Templar)성이 있는 폰페라다(Ponferrada)이다. 성채는 오래된 모습으로 고성다웠다. 성 야고보 무덤 발견 당시부터 순례 길의 모퉁이로 중요한 한 곳으로 여겼다.

템플기사단은 12세기 초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처음 프랑스인 9명으로 구성하였다. 한때는 교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수만 명을 거느린 국제적인 조직이었으나 교황의 노여움을 사서 해체되었다. 긍긍업업(兢兢業業)하지 않은 탓이다.

비야프랑카(Villafranca)가는 길은 포도주 생산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마을마다 포도밭 천지이다. 포도밭을 끼고서 돌고 돌아 주택가 뒷골목, 마을 경계를 긋는 고갯길을 넘어간다. 길바닥은 꼬불꼬불 자갈투성이의 길이다.

걸으면서 경치가 아름다운 길은 대개 라이딩하기에는 험한 길이다. 비야프랑카에 들어가기 전에 카카벨로스(Cacabelos)에서 휴식을 취했다. 점점 피로가 쌓여 간다. 힘을 보태려고 콜라를 마셨다.

비야프랑카는 산속의 도시이다. 고도가 1130m이다. 산에 둘러싸인 움푹 팬 평지에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었다. 꼭 스위스 산골 동네에 온 것 같다. 해가 일찍 떨어지니 쌀쌀하다. 축제를 하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음악소리도 난다.

여기에도 13세기에 건축된 산티아고 성당이 있다.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있는 성당과 왜 같은 이름일까? 사정이 있어서 여기까지밖에 못 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지 않을까.

객지에 오면 저녁 해거름 땅거미가 질 때 외롭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이 넘었구나. 저녁에 스페인 전통식당에 갔다. 떠드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마음 편한 저녁은 틀렸다. 여기 사람들도 제법 목소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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