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말간 핏줄 거울을 달고 지구의 새 역사를 걷는 아기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말간 핏줄 거울을 달고 지구의 새 역사를 걷는 아기
  • 이규식
  • 승인 2017.11.11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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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간 핏줄 거울을 달고 지구의 새 역사를 걷는 아기

언제 갓 태어난 아기의 발바닥을 만져보았던가
희고 매끄러운 탄성
핏줄 환히 들여다보이는 처녀지
주름 한 줄 없다
그늘 하나 없다

울면서 뻗치는 저 당찬 힘, 여린 발바닥 어디에 저런 단단한 항의가 서렸는지, 거친 세상 밖으로 나올 힘을 지녔던지, 어미 보호벽을 뚫고 나온 어린 전사의 발바닥을 쓰다듬어 본다

다섯 개 발가락마다 말간 핏줄거울을 달고
지구의 새 역사를 걸으려 하는
먼 우주로부터 지구별로 날아든 새 생명,

거대한 코끼리 발바닥보다 더 야무지다
한 개인사가 가족의 역사가  
저 주먹 쥐고 내뻗는 발힘으로 새 터를 다지고 있다

- 김금용, ‘전사의 발바닥’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갓 태어난 아기의 발바닥을 본 적 있는가. 힘차게 울음을 터뜨리며 손발을 내뻗는 모습을 보면 생명의 신비 앞에 숙연해지고 아기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 조그만 몸뚱이 어디에 인간의 본성이 숨어있는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착하다고 보기도 하고 (성선설), 반대로 악하다고 보기도 하지만 (성악설) 주름하나 없는 아기의 발바닥을 쓰다듬으며 떠오르는 생각은 장차 그 두 발이 치러낼 선악의 투쟁, 그리하여 아기 발바닥은 전사의 발바닥이다.

주관적인 측면이지만 평소에는 성선설에 치우치다가 강력범죄, 흉포한 사건이 발생하여 여론이 들끓을 때면 성악설의 주장으로 쏠리기도 한다. 한편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운명적으로 이중인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인간은 신성과 악마성의 끝없는 간극에서 고민하며 싸워나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 더구나 스스로 걸어 다니기 전 영아의 얼굴과 표정, 몸동작을 바라보면 꾸밈없이 순수한 모습에 마음이 정화되고 장차 밝고 훌륭하게 성장할 모습이 그려져 희망이 차오른다.

시인들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묘사한 구절을 보면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 시대와 문학사조 그리고 시인의 고유한 개성과 취향까지도 대부분 넘어선다.
 
어린아이가 나타날 때 빙 둘러 앉은 가족들은
크게 소리내어 박수를 친다. 부드럽게 반짝이는 아이의 눈길은
모든 이의 눈을 빛나게 한다
가장 슬픈, 아마도 가장 깊게 패인 이마 주름살도
천진하고 기뻐하는 아이가
나타나는 걸 보면 대번에 펴지는구나. 
   
- 빅토르 위고, ‘아이가 나타나면.....’ 부분

같은 주제, 동일한 대상을 두고 쓴 작품에서 동양과 서양, 시대와 사조의 편차를 넘어 가장 가까운 접근을 보이는 경우가 어린아이를 노래한 작품이 아닐까. 사회가 각박해지고 인성이 메말라가는 이즈음 어린아이의 순수성, 인간본연의 성선과 맑고 밝음을 노래하는 시가 많이 노래되어 어두운 세상을 비춰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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