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자본에 대한 욕망, 그 안에 갇힌 규격화된 큐브” 도시의 감춰진 욕망을 그리는 이선화 화가
[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자본에 대한 욕망, 그 안에 갇힌 규격화된 큐브” 도시의 감춰진 욕망을 그리는 이선화 화가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11.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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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23)
대전문화재단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차세대 아티스타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은 개인 창작을 극대화 시켜나갈 수 있으며, 신진 예술가들은 서로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문화예술 인적 인프라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7년 모두 24명을 선정했으며 이들의 창작활동과 예술세계를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들이 취재해 널리 알리고자 한다.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캠퍼스의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의 마지막 날, 낭만의 절정을 자랑하는 계절에 이선화 화가를 만났다. 현재 한남대 미술대학원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그녀는 전시회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화구들을 보면서 화가의 작업실에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미대입시를 준비하면서 화가의 길에 더욱 다가섰죠. 개인적으로 조용한 성격이라서 그런지 혼자서 하는 일이 좋았는데 아마도 그림도 그런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나 싶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텍스트로 전달할 수 없는 걸 이미지로 전달하는 게 그림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림 작업은 자기 치유의 과정도 포함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봅니다.”

도시의 이미지 재구성
이선화 씨가 자란 곳은 제철단지가 있는 광양이다. 산업단지 안에 있는 학교에 다니다 보니친구들 부모의 직업이 비슷했고,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으며 많은 친구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 대도시를 다니면서 도시의 느낌이 몸으로 전해왔다. 한 마디로 욕망의 군집같은 이미지가 커다랗게 다가왔다. 그녀의 작업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게 바로 도시다. 그녀는 도시를 이렇게 진단한다.

나의 작업은 현대도시를 탈중심화된 다양체의 연결로 표현하는 것이다. 초기 작업에 투영된 도시공간은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심리적 불안감으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 입각한 소비사회의 도래는 타자화된 욕망에 포획된 도시와 인간주체의 혼돈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다.

“현대도시를 모티브로 시각적 재구성을 하는 작업을 오랜 시간 해왔는데요. 서울같은 대도시출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도시에 오면서부터 거대도시의 폭력성이나 욕망의 분출 같은 걸 느끼게 됐어요. 그런 느낌이 미술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많은 이들이 도시에 산다. 시골은 비어가고 도시는 거대해지고 있다. 도시가 커지면서 거기서 살아가는 이들의 욕망도 커졌다. 그런 모습을 가리켜 이선화 화가는 ‘오늘날 도시의 모습은 자본이라는 거대한 욕망으로 만들어진 시선들 안에 갇힌 규격화된 큐브 같다’고 분석한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욕망의 풍경을 그녀는 그림으로 재구성한다.

나의 작업에 표현되고 있는 도시의 리좀적(Rhizome) 흐름은 영토화되고 고착화되기 이전의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과 흐름, 순수 생성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수목적인 도시시스템에 대한 대안이다. 작업에 드러난 리좀적 구성은 위계적인 나무구조에 대립하여 하나의 통일된 구조내에 통합되지 않으며, 비위계적이고 수평적인 다양체들의 연결로 중심이 없는 무한한 연결과 다양한 차이들의 생성을 만드는 시각적 재구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리좀의 의미는 이항 대립적이고 위계적인 현실 관계 구조의 이면을 이루는, 자유롭고 유동적인 접속이 가능한 잠재성의 차원.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관계 맺기의 한 유형이다.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에서 온 개념이다.

<사이-존재>展
요즘은 미술에서도 장르를 구분하는 게 애매하다. 어쩌면 장르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별다른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이선화 화가는 예전에는 아크릴이나 유화안료를 주로 썼고 차세대 아티스타 전시를 준비하면서 실크 스크린 기법을 응용해 작업하고 있다.

“실크스크린 속성이 복수성이고 간접성이라고 보는데 제가 표현하는 방향의 의미와 닿아 있어서 그렇게 작업을 했어요. 앞으로는 도시공간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나 개인의 알 수 없는 마음, 또 비가시적인 영역까지 더욱 넓혀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오는 12월, 그녀는 <사이-존재>展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연다. 화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대전이라는 도시공간이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한 의식의 층위를 이루는 시민들의 관계맺음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주로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완성된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선화 씨는 그 기대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와 대중의 소통을 통한 이미지의 재구성은 다양한 삶의 풍경에 대한 제시이며 도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단편이다. 접근성이 난해한 순수예술의 편견에서 벗어나 대전시민들에게 소통의 장을 형성하여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를 기대한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무슨 색을 좋아하냐는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색은 다 좋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합했을 때 어울리는 하모니의 색감이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파스텔 톤의 따뜻한 느낌을 좋아한다는 말 속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냉철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차세대 아티스타로 선정된 예술가들을 취재 하면서 자주 단순한 물음을 했다. 그 악기 비싼가요? 춤을 오래 추면 어지럽지 않나요? 실수도 많이 하지 않나요. 이번에는 그림을 오래 그리면 잘 그리냐는 초딩 수준의 질문을 했다.

“물론 그림을 오래 그리면 잘 그릴 수 있죠. 어느 정도 수준까지 모방은 가능한지만 제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자신의 창작물을 찾아가는 시간은 참 오래 걸리지 않나 싶어요”

결국 긴 세월동안 이루어지는 숙련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담겨있는 창작의 길이 어렵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삼십대 초반, 이번 전시의 타이틀처럼 그녀는 사이에서 존재를 고민하는지 모른다. 그 고민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전시회를 찾아가도 좋을 일이다. <사이-존재>展, 12.7-13일까지 모리스갤러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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