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삶의 위로’ - 감성과 서정, 무디어진 내면을 충전하라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삶의 위로’ - 감성과 서정, 무디어진 내면을 충전하라
  • 이규식
  • 승인 2017.11.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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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규식

 

‘삶의 위로’ - 감성과 서정, 무디어진 내면을 충전하라

이것은 여인의 얼굴처럼 부드러운 저녁
엄동설한 속에 피어난 기이한 저녁
박명 위에 떠도는 감미로움은
마음의 상처 위에 가느다란 실 되어 내려온다.
 
천사같은 초록빛... 핏기 잃은 장미꽃...
멀리 부드러운 개선문이 흐릿해지고
푸르스름한 서양에 내리는 밤은
고통스러운 신경에 그지없이 부드러운 안식을 부어준다.
 
검은 바람, 납빛 안개의 달에
가을 낡은 꽃잎들은 떨어졌고
반음계의 아름다운 하늘 빛깔은 마지막 음계를 지워간다..
 
그 옛날 향기 스며있는 옛 저택을 따라
나는 내 손가락에 매혹적인 꽃향기를 들이마신다.
이것은 여인의 얼굴처럼 부드러운 저녁.

- 알베르 사맹, ‘저녁’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 낭만주의, 상징주의 한꺼번에 유입되다

일본의 한반도 무단통치가 본격화되면서 문인들은 정치나 시사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순수문학으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백대진(白大鎭)이 1916년 6월 ‘신문계’에 ‘20세기 초두 구주 제 대문학가를 추억함’ 그리고 1918년 11월 ‘태서문학신보’에 ‘최근의 태서문단’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프랑스의 알베르 사맹을 비롯하여 보들레르, 말라르메, 모레아스, 레니에 등의 시인을 소개하여 상징주의 문학을 알린 것도 이즈음이다.

백대진이 이 시기 소개했던 사맹과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은 그 후 우리 현대시 초기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낭만주의와 그 다음에 일어난 상징주의, 이 두 문예사조가 일본을 통하여 거의 동시에 유입, 수용되는 과정에서 각기 개성이 혼합, 희석되어 지금까지도 초보 시창작자들, 게으른 시인들에게 해묵은 전범, 낡은 교과서로 활용되면서 우리 시의 수준향상에 일정부분 걸림돌이 되고 있다.

#. 잔잔한 시의 여운
알베르 사맹은 ‘가을과 황혼의 시인’이라고 불린다. 조락의 계절 가을과 어슴프레 해가 질 무렵 몽롱한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특히 재능을 나타냈다. 이맘 때면 적절한 정취와 감성을 제공하는 그의 시세계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상징파 시인 중에서 일반 독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삶이나 문학활동에서 동시대 상징주의 시인들의 요란하고 정력적인 행적에 비하여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그만큼 조용하고 성찰적이면서도 내면의 미세한 움직임과 감성의 물결을 섬세하게 포착한 것이다.

프랑스 북부 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죽자 학업을 중단하고 은행 직원으로 취직, 생계를 꾸려갔다. 이후 독학으로 공부를 계속했고 파리로 올라와 파리 시청, 센 현청 직원으로 일했는데 이 말단직책이 생계수단인 동시에 파리 문단과 교류하는 기회였으나 작품에서처럼 내성적이며 허약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상징주의 대가였던 보들레르, 베를렌 등의 작품을 읽고 시를 쓰는 일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가 쓴 ‘삶의 위로’ 로서의 시작품이 20세기를 건너 이제 21세기로 넘어왔다. 시대에 뒤지는 고루한 서정토로, 애상조의 내면고백으로만 보기에는  예민하면서 천의무봉한 감성의 멜로디가 애잔하다. 세파에 휩쓸려 바래지고 무디어진 우리의 감수성이 이런 시를 읽으면서 충전되고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 모두들 목청 높인 옥타브와 제각기 강렬한 색채를 드러내려 애쓰는 이즈음 이런 잔잔한 시편의 여운은 자못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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