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영화읽기] 열정과 광기의 경계 그리고 궁극의 화해
[고광률의 영화읽기] 열정과 광기의 경계 그리고 궁극의 화해
10편 10색 - 영화, 생각을 지배하다 : 위플래쉬 ②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17.11.24 1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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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열정과 광기의 만남
앤드류(마일스 텔러)는 최고의 드러머가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셰이퍼 음악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서 빼어난 지휘자 플렛처(J.K. 시몬스) 교수를 만납니다. 하지만 성급한 앤드류는 불확실성으로 우울합니다. 전설적 드러머 버디 리치처럼 되는 것이 꿈이지만, 아직은 꿈에 불과합니다.

그러다가 플렛처에게 발탁됩니다. 고무된 앤드류는 존재감과 자신감을 얻은 듯, 평소 들렀던 영화관의 알바 여자 니콜에게 데이트 신청까지 합니다. 착하기만 한 니콜은 앤드류와 달리 의기소침하고 조용하게 그냥 삶을 살아지는 여잡니다.

이튿날 앤드류는 플렛처가 나오라고 한 아침 6시에 허둥지둥 달려가지만, 연습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연습은 9시였습니다. 괴팍한 플렛처가 쓸데없는 골탕을 먹인 것입니다. 플렛처는 정확히 9시 정각에 나타납니다. 긴장한 팀원들이 모두 일사분란하게 기립하여 맞이하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분위깁니다. 플렛처의 포스가, 카리스마가 경천동지 수준입니다. 연습곡은 위플레쉬(채찍질)입니다. 앤드류는 연습 시 메인 드러머 테너의 보조 역할(악보 넘겨주기)을 합니다. 그런데 플렛처의 지도방식이 유별납니다. 아니 엽기적입니다. 일찍 흥분하지 마라, 얼굴만 예쁘다고 수석연주자가 된 것은 아니겠지, 등등 성희롱적 언사가 거침없고, 음이 틀린 연주자를 찾아낸다며 패악에 가까운 갑질을 해댑니다. 난리소동 끝에 트럼펫 연주자를 음이 틀린 ‘범인’이라 하여 쫓아내고는, 사실 음이 틀린 연주자는 그가 아니라 다른 놈(에릭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트럼펫 연주자는 자신의 음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도 모르는 놈이니 쫓겨난 것이 마땅하다는 식의 논리를 폅니다. 뒤틀리고 삐뚤어진데다가 자기합리화 능력도 기상천외한데, 이쯤 되면 교수라기보다 또라이에 가깝습니다.

이런 플렛처가 앤드류를 복도에서 잠시 개인면담합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묻고 어머니의 안부를 묻습니다. 앤드류 부모는 일찍이 이혼했고 아버지는 평범한 고교 교사입니다. 내세울 것 없는 가족에 주눅이 듭니다. 플렛처는 짧은 면담 끝에 늘 긴장하라, 그리고 최선을 다하라 라는 주옥같은 조언을 하고, 재밌게 해보라는 격려까지 덧붙입니다. 앤드류는 감지덕지, 성은이 망극하여 어쩌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이도 잠시 곧 무간지옥이 열립니다. 템포가 안 맞는다며 계속 연주를 반복시키고 꼬투리를 잡고, 급기야 의자까지 집어 던지고, 박자를 일러주며 고함을 지르고 뺨을 때립니다. 지도인지 트집인지 가학행위인지 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앤드류를 찌질이라고 몰아붙이며 엄마 아빠까지 들먹여 모욕을 줍니다. 그러고는 더 죽도록 연습하라고 일갈합니다. 플렛처의 광기 세례를 흠뻑 받은 앤드류는 그래서 정말 죽도록 연습합니다.
재즈경연대회에서 악보를 잃어버린(이것도 플렛처의 장난질이 의심됩니다만) 사수 태너 대신 앤드류가 메인을 꿰찹니다. 악보를 통째 외워버린 것입니다. 이 대회에서 팀이 1등을 합니다. 이제 앤드류는 여친 니콜의 문자도 씹습니다. 성공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하는데 여자 따위가 보일 리 없습니다. 친척 모임에서도 앤드류의 자긍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친척들이 스틱이나 휘두른다고 앤드류를 깔보고 비아냥거리지만, 그는 끄떡없습니다. 자랑하는 사촌에게 3부리그 미식축구 MVP 따위는 소용없다면서 자신은 링컨센터에서 연주를 하고 최고 연주자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합니다. 신념이 광기 수준입니다.

그러나 플렛처가 메인 연주자를 앤드류에서 새로운 인물인 라이언 코널리로 바꿉니다. 이렇게 해서 앤드류, 라이언, 태너 셋을 두고 오락가락하며 무한경쟁시킵니다. 앤드류는 마침내 광기 속의 연습을 위해 여친과도 결별을 하지요.

위플래쉬 또는 담금질
그러던 어느 날 플렛처가 팀원들에게 션 케이시라는 연주자의 음반을 들려주며 눈물을 짓습니다. 케이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지요. 잠시 추모가 끝난 뒤, 시작된 이날 연습은 유격훈련장의 ‘소몰이’를 방불케 합니다. 로데오 연습을 하듯이 셋을 번갈아 가며 몰아칩니다. 나머지 연주자들은 대기시키고 오직 드럼만 연습시키는데, 가히 지옥을 방불케 합니다. 쓰레기 유대인 새끼. 딸치는 속도보다 빠르게. 답 없는 호모새끼 등등…. 온갖 욕설과 패악질을 해가면서. 그날 연습은 새벽 2시에 끝납니다.

앤드류가 결국 메인 드러머 자리를 따냅니다. 그러고 중요한 경연이 있는 날, 버스 고장과 렌트카 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 경연장에 도착합니다. 그는 늦었다며 트집을 잡는 플렛처의 제지를 물리치고 드럼 앞에 앉아 연주를 합니다. 그러나 연주는 부상투혼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지요. 앤드류가 연주 중에 스틱을 떨어뜨리고, 플렛처는 경연을 포기합니다. 그때 무대 위에서 앤드류가 욕설을 뱉으며 플렛처를 향해 몸을 날립니다. 이로 인해 퇴학을 당하지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렛처 가학행위 등과 관련하여 조사위원이 앤드류를 찾아와 묻습니다. 션 케이시는 교통사고가 아니라 플렛처로 인해 우울증을 앓다가 목을 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미련이 있어 버티던 앤드류가 플렛처의 소행을 고발합니다. 그러고는 빵집 알바를 합니다.

알바를 마치고 귀기하던 어느 날, 재즈 음악에 끌려 한 카페에 들어간 앤드류는 뜻밖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플렛처를 만납니다. 연주를 마친 플렛처가 앤드류에게, 네가 한계를 넘는 걸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합니다. 플렛처는 존스가 찰리 파커를 향해 던진 심벌즈 때문에 찰리 파커가 전설적 섹소폰 연주자가 되었다면서 자신의 폭력적 지도방식을 변명하며 은근히 정당화합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앤드류에게 자신의 밴드에서 드럼을 맡아 줄 것을 제안 합니다. 앤드류는 자신과 경합했던 두 명의 드러머가 있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라이언은 너의 자극용이었고, 태너는 의예과로 전과했다고 합니다.

수락한 앤드류는 니콜을 초대하려고 전화합니다. 그러나 니콜에게는 이미 남친이 생긴 듯합니다.

 

광기를 넘어선 열정
드디어 명성 드높은 JVC 재즈 패스티벌이 카네기홀에서 열립니다. 여기서 잘 하면 성공하고 못 하면 음악인생이 끝이라고 합니다. 팀이 무대 위에 오르자, 플렛처가 앤드류에게 다가와 악마인 양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가 핫바지로 보였나. 네가 불었잖아?” 맙소사. 플렛처의 제안은 복수를 통해 앤드류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함정이었던 것입니다. 이 음흉하고 사악한 플렛처가 친근한 곡을 연주하기 전에 신곡으로 문을 열겠다고 합니다. 그 신곡은 생전 들어본 적도 연습한 적도 없는 곡입니다. 물론 악보도 없습니다. 플렛처가 연주를 못해 버벅대는 앤드류에게 다가와 다시 나즈막히 속삭입니다. “아무래도 넌 아닌 것 같다.”

앤드류는 일단 팀을 등지고 무대를 나갑니다. 그러고는 무대 밖에서 걱정하며 기다리는 아버지를 잠시 보지요. 아버지는 다 끝났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앤드류는 다시 무대로 돌아와 드럼 앞에 앉습니다. 다음 연주곡은 카라반입니다. 죽도록 연습한 곡이지요. 플렛처가 다가와 눈깔을 뽑아버릴 줄 알라며 협박합니다. 그러나 소용없는 말입니다. 이른바 그 누구도 그 어떤 상황도 돌이킬 수 없는, 둘만의 진검승부가 시작됩니다.

앤드류의 즉흥 연주가 관중은 물론, 동료 연주자들과 플렛처까지 궁극의 경지로 데려가 감화·감동시킵니다. 이른바 재즈의 생명이라 할 궁극의 즉흥연주가 탄생한 것이지요. 급기야 앤드류의 연주가 플렛처의 지휘를 빼앗아 이끕니다. 지휘가 연주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니 앤드류의 열정이 플렛처의 광기를 넘어선 것입니다. 결국 플렛처가 앤드류의 신들린 연주로 밀려나간 악기를 바로잡아줍니다. 플렛처의 항복, 아니 열정과 광기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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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y 2017-11-24 20:59:23
열정과 광기의 화해가 이루어졌다는말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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