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검색은 있어도 사색은 없는 시대… 당신은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검색은 있어도 사색은 없는 시대… 당신은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
②레프 톨스토이 著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7.11.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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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유서 깊은 집안이라 해도 떡갈나무 세 그루만큼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삶에는 끝이 있다. 누구나 죽음이 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묘지파’(Gráveyard schòol)라는 시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달 밝은 밤, 교회 묘지에 나가 반쯤 허물어진 무덤 곁에서 죽음의 힘에 대하여 명상을 하곤 했다. 여기서 별다른 괴로움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기쁨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찾았다.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은 자연스럽게 잘 사는 것, 잘 죽는 것과 연관된다. 톨스토이는 평생 이 문제를 탐구했다. 그는 중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압축파일로 우리에 답을 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반 일리치’다. 이반은 우리의 김씨 성처럼 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성이다. 소설은 이반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타인이 바라보는 이반의 죽음을 먼저 스케치한 다음, 이반 자신의 눈으로 그의 삶을 그렸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러분,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습니다.” 사망 소식에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아내는 자기 연금이 줄어들까봐 걱정이고, 결혼 앞둔 딸은 자기 결혼식이 잘못될까 고인을 원망한다. 조문 온 동료들은 승진이나 인사이동이 어떻게 될까 쏠려있고, 자기들 카드놀이 계획이 어그러진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일시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지만 이내 이반 일리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고 애써 자기하고 무관하다고 믿으려 했다. 한마디로 이반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허위·위선·가식·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이 자체가 이반의 삶이라고 볼 수 있다

톨스토이

이반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앞두고 짧은 인생을 허비했다고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를 좋아했으나 주위 사람들이 사랑한 것은 그의 지위였다. 이반은 고위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것 없이 자랐다. 법과대학을 나와 판사가 되었고, 재능 있으면서 사교적이고, 평탄하면서 부유하게 살았다. 한마디로 남 보기에 좋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막상 죽음이 다가오고 번뇌와 공포가 그를 괴롭혀도 어느 누구 진심어린 동정을 하지 않았다. 그는 누가 안아주고 입 맞추어 주고 울어주기를 바랐다. 그는 공허한 대인관계를 한 것이다. 공감이 없는 삶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승에서 인간이 얻는 최고의 행복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일치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것은 부자가 되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다른 사람과 감정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이반은 그의 인생에서 그것이 빠졌다. 끔찍한 일이다.”

이반은 죽음을 앞두고 자기성찰을 한다. “이게 뭐냐. 왜? 이럴 수는 없어.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추하다는 게 이게 말이 돼?” 생물학적으론 죽음 향해 가지만 정신적으로는 죽음에서 벗어나 삶을 항해 나간다.

이반이 성찰할수록 힘들게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허위와 가식은 죽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지만, 이반이 투병생활하는 동안에도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반은 본능적으로 죽어 가는 것을 알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을 거라는 등,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등, 입에 발린 소리를 해 댄다. 자기를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이지만 이마저 이반은 싫어한다.

특히 이반은 아내를 증오한다. 그는 그녀의 뽀얗고 깨끗하고 포동포동한 손과 목, 윤이 나는 머리카락, 생기가 가득한  두 눈을 바라보며 그녀를 아주 미워했다. 아니 마음속 깊이 그녀를 증오했다.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그들 가족 역시 이반을 미워한다. 특히 약혼한 딸은 결혼해서 잘 살고 싶은데 자기 행복을 방해하는 아버지가 미워 죽을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민이나 동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의 처지에 서러워 울었다. 다행히도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중학생 아들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않지만, 아들의 마음은 전해진다.

또 한 사람은 하인 게라심이다. 게라심은 허위나 가식 없이 그를 진심으로 편하게 해준다. 배설물 받아 내는 일을 아무 소리 없이 해낸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그러니까 수고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연민이란 상대방이 겪는 고통을 함께 겪는 것이다. 게라심은 주인이 겪는 고통을 통해 미래에 닥칠 자신의 고통을 미리 겪고 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놀라운 변화의 순간이 다가온다. 혼수상태 사흘이 되던 날 밤, 즉 죽기 2시간 전 그는 고통 속에서 두 손을 내젓고 있었다. 그때 그의 손이 아들의 머리를 툭 쳤다. 아들은 그 손을 잡아 자기 입술에 갖다 대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바로 이 순간,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꺼이꺼이 우는 순간 이반 일리치의 전 생애가 보상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그래서는 안 되는 삶이지만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믿었다.

톨스토이는 우리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언제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아들이 가여워졌다. 아내가 보인다. 그녀 역시 울고 있다.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졌다. “맞아, 저들에게 내가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과 화해한다.

톨스토이는 그의 ‘참회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자신의 가치나 신의 가치를 따라 산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를 따라 살았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강해지고 유명해지고 중요해지고 부유해지고자 하는 ‘불안한 욕망’을 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자 이전의 야망들이 과연 타당한가 의심이 생겼다.

검색은 있어도 사색이 없는 시대이다. 그 누구도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더 진정한, 더 의미 있는 길의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길 바라는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면 톨스토이와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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