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그저 북 잘 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고수 권은경
[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그저 북 잘 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고수 권은경
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25)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11.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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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2016년까지 차세대 아티스타로 활동했고 올해 세 번째 공연을 가졌으며 아티스타 활동을 정리하는 DNA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약을 보인 권은경 씨를 만나기 위해서 먼저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리는 사이 화면에 뜬 권 씨를 세 글자를 보고 그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에 이르려 하는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권고수’, 권은경 씨는 판소리와 함께 북을 치는 고수이고 여성, 남성을 따지는 성별을 떠나 전통음악을 하는 고수(鼓手) 중에 고수(高手)로 남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약속장소에는 북가방 하나도 힘겨워 보이는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러나 다음 순간부터 약해보인다거나 북을 치기에 힘들어 보인다는 말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시간이었다.

권은경 씨는 대학에 들어가는 날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고수로 활동해왔던 생활 자체가 끊임없는 공부의 과정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고수로서 배우고 이뤄야할 것이 많이 남았다는 말이었다. 권 씨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산사람이다. 그런 권 씨가 성년이 되면서 대전에 둥지를 틀게 된 이유는 대전에 있는 소리북 선생님을 만난 인연 때문이다. 여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던 권 씨는 원래 화가가 꿈이었다. 그렇게 꿈을 키우다가 열세 살에 국악을 만난다. 국악 중에도 사물놀이나 농악 같은 연희를 취미로 삼아 생활하다가 고등학교 진학과 때를 맞춰 국악에 미쳐 지내기 시작했다. 결국 대학은 국악과로 진학한다.

“그림을 정말 좋아했었어요. 이후 조소를 전공으로 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한 국악으로 상모 돌리고 사물놀이 하는 일은 하루 종일 해도 힘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진로를 바꿨죠.”

권 씨는 국악과에 진학하자마자 대전무형문화재 제17호 판소리고법 박근영 예능보유자를 만난다. 이후 움직이면서 연주하는 연희에 미쳐 있다가 선생님을 만나면서 앉아서 하는 반주로 바꾼 것이다.

끝없는 소리북의 매력
인생의 스승을 만난 권 씨는 학교에서 수업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대전에서 소리북의 장단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사실 권 씨는 그림뿐 아니라 춤도 좋아하고 부전공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로 다방면에 재능이 있고 욕심도 많은 예술가이다. 이런 와중에 전통 타악 반주를 선택한 연유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스승님이 이끌어주셨죠. 그래서 혼자 장단을 치는 연주로 바뀌었는데 보통 국악과에서는 이것저것 공부하다가 졸업할 즈음에 전공으로 하나를 정해요. 그런데 저는 들어가면서 미리 정해버린 거죠.”

그렇다면 소리북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 즈음 끝이 없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판소리고법은 내용이 무궁무진하죠. 판소리 마당만 해도 많잖아요? 그 안에서 마디마다 다르고 또 선생님들마다 개성이 있고 그렇게 이것 했다 싶으면 저것 해야 하고 너무 많아요. 그것도 고법의 매력 중 하나예요.”

또 하나는 자신과의 싸움이면서 싸움 끝에 오는 합이 매력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연습을 시작하면 1시간 정도 기본적인 장단만 친다. 손이 완벽하게 장단과 돌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혼자 미쳐서 연습할 때에는 하루 14시간도 했어요. 밥도 잘 안 먹고 연습할 때도 있었죠. 처음에 그렇게 힘들다가 뭔가 툭 내려놨을 때 소리가 맞아 들어가면 그 느낌은 설명하기 힘들어요.”

권 씨에게도 스스로를 달구는 계기가 있었다. 체격도 작고 나이도 어리고 거기에 여자이고, 이런 약점들이 벽으로 다가올 때에는 오히려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강단으로 밀고 나갔다. 여자 고수 자체가 없었던 때에다가 여자 소리꾼이 소리를 하는데 여자 고수가 북을 치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여자이고 손도 작고 힘도 없으니, 뭐 이런 얘기 듣기 싫어서 죽어라 쳤어요. 그래서인지 북 터지겠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싸움닭이라는 소리도 들었죠. 그러나 그 다음이 더 문제죠.”

얘기인즉 적어도 30년 정도는 해야 한다고 했다. 판소리를 받쳐주는 고수는 소리꾼의 생각을 읽어야하는 일이면서 공연장의 모든 변수들을 통제하고 맞추면서 무대를 이끌고 가는 일이다. 먼저 소리꾼이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지고 무대의 형태, 악기의 상태, 소리꾼의 컨디션과 목 상태, 관중의 귀 높이 등과 모두 공명하면서 장단을 이끌고 가락을 맞추는 이가 바로 고수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모두 경험으로 전수되는 것이어서 스승의 생각을 배워야하고 그렇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 고수 권은경 씨의 목표가 아직은 자신만의 개성이 아닌 스승의 모방이라고 했다.

“지금의 목표는 그냥 스승님을 닮은 북소리를 내고 싶은 거예요.”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다. 2015년 차세대 아티스타 프로그램에 선발된 것이다.

주연이 된 장단
“고법을 비롯해 장단을 맞추는 반주음악도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될 수 있다는 기획으로 도전했고 선발되었어요. 이런 기조는 올해까지도 변함없이 시도해왔죠.”

2015년부터 올해까지 아티스타와 관련된 연주회는 모두 공연 타악기가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쉬이 짐작할만하다. 드럼처럼 다양한 악기가 세팅되어있지도 않고 따로 독주곡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같은 장단 악기인 장구는 독주곡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어렵고 소리북의 경우는 독주곡조차 없었다.

“장단은 가락과 리듬을 쪼개는 것과 강약을 조절하는 것으로 모두 표현해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연주자의 제스처가 변하면 다른 소리로 인식해요. 이렇게 보이는 것도 음악이 되는 거죠. 여기에 착안해 여러 악기와 함께 음악을 만들었죠.”

권 씨는 여기에 연출을 더했다.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지는 퍼포먼스를 만들었고 영상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전통 장단 타악기를 주인공의 자리에서 빛나게 했다. 곡은 웅장한 소리북 합주곡을 독주로 편곡해 30분 동안 이어지는 장단 독주연주를 완성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실험에 반해 첫해의 주제는 ‘기본으로 돌아가자’였다. 연주에 있어 화려한 가락이나 순간적인 기교에 집착하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두드림에 집중하자는 취지였다.

“전문가의 비평을 떠나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이 장단이 이렇게 주인공이 되는 시도 자체가 놀랍다고 했어요. 소리북도 이런 독주가 가능하다는 발견을 했다는 사람도 많았고 이런 부분에서는 분명히 성공했다고 느낍니다.”

고수 권은경 씨에게 차세대 아티스타 프로그램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국악만 바라보던 우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시야를 넓힌 것이다. 두 번째는 연고가 없는 대전에서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장이 되었다. 대전은 이제 권 고수에게 확실한 예술적 고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아요. 고수 권은경이 대전에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여기 대전에서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더 배워야죠.” 

그래서 여류 고수가 아닌 그냥 북 잘 치는 고수로 남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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