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시를 읽는 것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시를 읽는 것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
③고은 시집 ‘순간의 꽃’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7.12.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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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임영호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시를 읽는 것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입니다. 시는 사실성과 진정성, 낭만과 창조를 낳고, 추상력으로 상상력을 더해 갑니다.

매년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노벨문학상이 발표됩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고은(高恩) 시인이 물망에 오릅니다. 

고은 시인은 참여시로는 김수영, 향토시로는 정지용과 비교됩니다. 1933년생으로 일제시대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해방 후 일초(一超)라는 법명으로 출가했습니다. 그는 10년간 참선과 방랑을 하며 시를 썼습니다.

 

 

그의 수많은 시집 중 《순간의 꽃》은 그의 통찰력과 직관이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납니다. 185편의 제목 없는 시, 몇 줄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인간이 아닌 삼라만상에 생명을 부여하고 춤을 추게 하고 살 수 있게 격려합니다. 때론 인간에게 삶의 아픔을 달래주고 행동의 비겁함을 깨우치게 합니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이렇게 시작해보거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입니다. 살다보면 능력과 열정이 있어도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아 뜻과 같이 잘 안됩니다. 실패하고 실의에 빠지고 야속하기도 합니다. 신에게 원망스러운 말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땅버들처럼 실패하면 실패한 데로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더 훌륭합니다.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사람이란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맨 얼굴로 자신과 대면해야 합니다. 우리는 곧잘 남을 화제의 대상으로 삼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보다는 남을 흉보거나 흉잡습니다. 나무에게조차 보기 민망합니다.

엄마는 곤히 잠들고
아기 혼자서
밤기차 가는 소리 듣는다

아름다운 풍경이 상상됩니다. 저는 기찻길 가까운 농촌에서 살았습니다. 새벽 무렵 기차가 멀리서 흰 연기를 뿜으면서 힘들여 기적소리 내면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이 시에서 사람들이 자거나 졸거나 하는 시간, 밤기차는 칙칙폭폭 울리며 가고, 아기는 엄마 품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겁니다. 금세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시는 정말 우리 삶 자체를 아름답게 합니다.

저쪽 언덕에서
소가 비 맞고 서 있다
이쪽 처마 밑에서
나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둘은 한참 뒤 서로 눈길을 피하였다

시는 금방 와 닿는 정서를 기술하는 정직한 서술입니다. 시경(詩經)이 사료(史料)로도 쓰이는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매우 각박한 인조 공간인 도시 속입니다. 때때로 살았던 그 옛날을 그리워합니다.

농촌에서 어릴 적 소는 우리 집 보물이었습니다. 새끼 낳고 황소처럼 자라면 가족들의 꿈도 커집니다. 아버지와 밭에서 일할 때쯤이면 형 입학금도 되고, 누나 시집보낼 돈도 되고, 새집 지을 밑천도 됩니다. 소는 어떤 것보다 더 한 진한 존재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그런 소를 학교 끝나면 들에 끌고 가서 풀을 뜯깁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낙비가 내립니다. 나는 원두막에 피하지만 소는 비를 맞으며 그냥 서 있습니다. 비가 그치면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눈길 주기가 좀 그렇습니다. 마음속 정한을 이처럼 표현하면 한편의 시가 됩니다.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을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잔다

시는 감성에 호소합니다. 이성으로 보면 세계인식의 틀이 좁아집니다. 시는 세상을 풍부하게 담고 자유분방하게 표현합니다. 신영복(1941~2016) 선생은 우리 감각기관이 외부인식을 전달하는 역할보다는 외부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시는 세계를 이해하고 전달하는 데 위력적입니다. 시 세계에서 사람도 자연 세계의 부분입니다. 소쩍새든 별이든 사람이든 똑같은 존재입니다. 시가 인식하는 세계는 한없이 큽니다. 시인들이 구사하는 세계는 한계가 없습니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보았다

어떤 목적을 두고서 매진할 때는 다른 것들은 안 보입니다. 강을 건너려고 노를 젓습니다. 오직 건너가는 것만 신경이 쓰입니다. 노를 놓치고 그제서야 강물이 보입니다.

어떤 정치가는 매년 찾아오는 가을 풍경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낙선하여 한가할 때 비로소 가을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어떤 것에 팔리지 않은 정신상태입니다. 그럴 때가 언제일까요? 명예, 지위, 돈을 떠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질 때가 언제입니까? 죽기 전까지 가능할까요? 우리가 사는 현재 모습입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이 시도 그렇습니다. 등산할 때 우리는 올라가는 것에 정신이 팔려 아름다운 꽃이나 풀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내려올 때 비로소 보입니다. 매사 그렇습니다. 눈은 있어도 마음으로 보려고 하는 것만 보입니다.

뭐니뭐니해도
호수는
누구와 헤어진 뒤
거기 있더라

우리는 연애할 때 아름다운 강이나 호수로 놀러 갑니다. 그런데 정작 강이나 호수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상대방뿐입니다. 정작 헤어지면 그 호수가 얼마나 넓은지 아름다운지 보입니다. 집착은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입니다.

재가 되어서야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하더이다
10년 내내
제 불운은 재가 되어본 적 없음이더이다
늦가을
낙엽 한 무더기 태우고 울고싶더이다

시는 솔직함과 정직성이 핵입니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독재체제 시절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고백했습니다.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가.”

이렇게 자신의 치부를 털어놨습니다. 어떤 일에 몰입하여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삶의 자세를 시인은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사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슴입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가슴을 키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시를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은의 시집, 《순간의 꽃》은 곁에 두고 읽을 만한 시집입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배 쭉 깔고 읽어보세요. 봄꽃의 아름다움과 비교가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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