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표범 우는 소리 쓸쓸해지면 가만히 잠재운다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표범 우는 소리 쓸쓸해지면 가만히 잠재운다
  • 이규식
  • 승인 2017.12.23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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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우는 소리 쓸쓸해지면 가만히 잠재운다

그래요..... 그래요
내 안에 표범이 들어왔어요 
이슬 같은 눈빛의 표범

잠자던 풀들이 화들짝 깨어나고
창밖 회오리바람도 표범의 울음으로 들려요
영혼의 주파수가 자꾸 엉켜요
일제히 일탈중인 삶의 의문부호들
건망증 많던 자물쇠는 이미 길을 잃었죠
내게 깃든 표범이 자꾸 아파와요
뜨거운 가슴으로 안아줄 수 있어요
긴 다리 표범은 몸을 둥글게 접어요
태고 적 생명의 아름다운 태아처럼
너무 소중해 안쓰러워요
머리털에 배인 야생의 그리움이
눈물로 번져나가고 있어요 
두 손으로 지그시 눌러줘요
뒤척이던 표범은 더 이상 울지 않아요

광야曠野 같은 고요가 내 몸을 통과할 때

난 알아요
내 안의 표범이 자라고 있다는 걸
표범 우는소리 쓸쓸해지면
가만히..... 가만히 잠재울 거에요

- 한창옥, ‘내 안의 표범’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신선한 발상이다. 야생 동물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며 펼쳐지는 시인의 내공에 찬 독백, 주체와 객체를 아우르며 넓혀가는 상상의 물길이 행간에서 독특한 개성으로 빛난다. 인간의 내면에 동물이나 식물이 들어온다는 설정은 시적인 상상력을 포괄하면서 여러 의미로 돋보인다. 그 대상이 식물이라면 정적이고 내밀한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돋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표범과 나누는 교감을 따라가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듯 싶다.

그 동물, 식물은 대체로 자신과 유사한 개성이나 지향점을 가진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전혀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대상일 수도 있겠다. 소극적이고 순한 품성의 사람이라면 양이나 토끼, 비둘기나 들꽃을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호랑이나 사자, 표범처럼 일견 강인하고 개성 강한 대상을 보유하여 상대적인 보완이 이루어지는 상황도 생각해본다.

시인이 품고 있는 표범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미지의 표범과 사뭇 다르다. 이슬 같은 눈빛의 표범이라니. 뛰어난 노랫말로 오래 기억되는 대중가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고답적이고 드높은 자존심의 화신 표범은 킬리만자로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도도한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온통 하이에나로 우글거리는 이 속세를 멀리하고 눈 덮힌 산으로 향하는 표범의 발걸음을 생각해본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는 산기슭의 하이에나’에 익숙해있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표범과 교유하면서 맑아질 것이다. 그리고 깊어질 것이다. 상처받은 표범의 아픈 마음과 환부를 어루만지고, 내안에 들어온 표범과 교감이 깊어질수록 서로는 닮아가고 애잔한 정서를 깊게 나눈다. 현실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환상을 노래하지만 그런 설정 자체가 현실의 팍팍함과 비속을 벗어나려는 시도인 이상 외로운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무엇인가 더 외로운 존재 하나씩을 품어본다.

우리가 알고 있던 표범에 대한 생각이나 이런저런 고정관념이 이 시편을 통하여 새롭게 바뀐다, 야생의 표범이 내 안에 들어와 순치되고 있다. 울고 있는 표범, 태아 같은 순수와 적응력을 지닌 표범, 이윽고 울음이 잦아지면 표범의 야성, 평원을 질주하며 솟구치는 힘과 일망무제 사방을 꿰뚫어보는 형안의 투시력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자라나는 표범과 함께 하는 시간 - 고요와 역동, 안온과 야성, 무엇보다도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나의 본능과 품성을 새롭게 깨우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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