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예술에 부리는 욕심이 먹처럼 번지다 한국화가 이상욱
[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예술에 부리는 욕심이 먹처럼 번지다 한국화가 이상욱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12.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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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20살, 청년 미술학도는 겨울방학을 맞아 시골집에 내려왔다. 마당에 선 어머니는 장남에게 조용히 묻는다.

“그림을 그리면 네게 뭐가 남느냐?”

농사 짓는 집에서 큰아들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을 때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했지만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혹시 방향을 틀어잡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바람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말한다.

“그림이 남아요.”

아들은 정말 그림이 아니면 성취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싸락눈이 함박눈으로 몸을 바꾸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의 한 대목 같은 이 그림은 한국화가이자 다매체 시각예술가 이상욱 씨의 회상이다. 이렇게 부모는 그림 그리는 일에 동의해주었고 아들은 본격적으로 시각예술가의 인생을 시작한 다. 이 씨의 생에 있어서 어릴 적에도 그림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논산에서 태어난 이성욱 씨는 뭔가 만들고 그리는 일을 좋아하며 유년을 보냈고 초등학교 때부터는 붓을 잡았다. 서예부 활동을 했기에 붓과 벼루는 친구 이상으로 가까운 것이었다.

중학교 때에 미술선생님의 지도로 서예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나 친구들이 수채화와 데생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마음먹고 미술활동을 할 수 있는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자연스레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세부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를 맞았다.

“제가 시골 출신이어서 그런지 화선지에서 먹이 번지는 모습이 좋았어요. 워낙 친숙하기도 했고요. 자연스럽게 한국화를 선택했죠.”  

이상욱 씨의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열심히 그린 그림으로 꽉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전국적으로 미술실기대회가 많지 않았고 또 대전에서 열리는 대회가 전국에서도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경상도나 전라도의 학생들이 참가하러 올라오는 것은 물론이고 수도권에서도 버스를 빌려 단체로 참가하던 때였다. 이런 대회에서 이 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목원대 실기대회에서 특선을 하고 한남대 대회에서는 전체 1등을 했어요. 그래서 4년 장학생 자격을 받았죠. 그렇게 저는 한남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기본에 매달리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씨처럼 어릴 때부터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한 길을 가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탄해보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갈등과 회의가 있고 또 한계와 절망과 싸워나가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과정을 이상욱 씨는 대학 3,4학년에 맞는다. 이때가 많은 미술 하는 친구들에게도 고비라고 한다. 이 길 위에서 자신의 내공과 실력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일은 맹목적입니다. 그저 좋은 작가가 되고 싶고 좋은 그림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인데 어느 순간,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죠, 그러나 고달프더라도 그림은 놓아버릴 수 없었어요. 그러면 제게 남는 것이 없어지니까요.”

이렇게 갈등이 생길수록 이상욱 씨는 더욱 기본에 매달렸다. 섬세한 묘사에 집중하면서 우선적으로 그림 완성도를 높이는 일에 매진한 것이다. 결과는 공모전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보내고 또 그렸던 과정이 인정받았다. 스스로 열심히 했으니까 어느 정도 평가도 받고 또 그렇게 자신을 위안했다고 한다.

“석사과정에 있을 때에는 1년에 2000호 정도를 냈습니다. 공모전에만 100호 짜리 그림 20개를 냈던 거죠. 액자 값이 비싸니까 같은 액자가 공모전에 갔다 오기를 기다려 같은 사이즈의 다른 그림을 갈아 끼워 다른 공모전에 보내면서 살았어요.”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보면 얼마나 그림에 매진하고 있으며 예술에 욕심이 많은지 알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1년에 한번, 개인전을 열자고 다짐한 것이다.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개인전은 뜻 깊은 일이지만 그만큼 자신감이 있어야하고 경제력도 뒷받침해야 가능한 일이다. 차세대 아티스타와 같이 지원이 있을 경우는 원만하게 전시를 준비했지만 많은 부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이 그 받침이었다. 또 가족과 모교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저 스스로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신기합니다. 같이 했던 작가들을 보면 30대 언저리에서 붓을 꺾는 사람들이 많아요. 현실에 손을 드는 겁니다. 저는 운이 좋게 기초에 매진하다보니까 가르치는 일이 들어왔어요. 많지는 않지만 차곡차곡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온 그의 예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야기가 시작되자 먼저 조선의 겸재 정선이 등장했다. 후대에 와서 ‘진경산수’라고 부르지만 이상욱 씨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길
“정선이 금강산을 그리려 마음먹으면 3개월 동안 금강산에 들어가 있었다고 해요. 단순히 밖에서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죠. 우리 한국화에서는 읽어내는 일이라고 하거든요. 그 안에 들어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읽는 것이죠. 저는 현대의 매체를 통해 읽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다양한 표현방법이 있다. 그는 현대의 매체를 이용해 예술 현장을 읽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항상 사진을 이용해 풍경을 촬영하다가 이제 영상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최근에는 드론을 이용해 촬영하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감흥을 찾아내고 있다. 이런 작업은 단순히 현장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의 결과물로 드러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만의 풍경, 나만의 산수화를 그리고 싶어졌어요. 그림 안에 나를 집어넣고 내 이야기가 드러나는 거죠. 기본을 넘어 내 작품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풍경 안에 사람이 등장하고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변화의 계기는 차세대 아티스타로 선정되면서 촉발된다. 아티스타가 더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일반적인 지원과 다르게 금액 안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일을 제한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우선 책을 많이 샀다. 그리고 새로운 실험을 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사는데 아낌없이 투자했으며 전시장이나 팸플릿도 자신의 성향에 맞게 고르고 제작했다. 그렇게 이상욱 씨는 2년 연속 개인전으로 자유롭게 표현양식을 실험하며 마음껏 자신의 풍경을 담아냈다.

이상욱 씨와 아티스타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지 않고 이후에도 이어졌다. 매해 진행되는 DNA 프로젝트에서 시각부문의 예술가들의 전시를 총괄 기획하고 올해는 포스터도 직접 디자인해 제작했다.

이야기는 바로 다음 전시회로 이어졌다. 이 시대의 작가는 그림만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틀을 이해하고 또 이용하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다음 전시는 전시장 안이 아닌 도심의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평면을 넘어선 다양한 뉴미디어 형식의 영상과 퍼포먼스를 기획해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을 재창조할 예정이다. 이는 시대의 새로운 풍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이기도 하다.

“제가 욕심이 많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그래도 욕심을 부릴 겁니다. 다양한 매체로 예술의 영역을 넓히는 일도 그렇고 지속적으로 예술 수요자들과 소통해나가는 일도 그렇고 계속 변화해야하는 예술가의 임무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발이 빨라야하는데 좀 뚱뚱해서 느려 보일 수도 있겠네요. 시간이 흐르면 또 그때 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계속 변화하고 있는 예술가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욕심 많은 작가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갈지 물음표를 그리며 눈발은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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