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고민 Q&A]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뜻
[어르신 고민 Q&A]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뜻
  • 임춘식
  • 승인 2017.12.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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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Q.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뜻과 그 유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대전, 남 77).

A. 매년 겨울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지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12월 20일 새 온도탑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올해 기부 민심은 얼어붙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특히 지난해 말 국정농단 사태의 악재 그리고  새 희망 씨앗 · 이영학 사건에 이어 최근에는 기업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의 옛 보좌진 2명의 사건 때문에 새로운 기부자의 증가 폭은 줄고 기존 기부자 중 기부를 해지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기부의 역사는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길고도 긴 기부의 내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과 그 궤적을 같이 합니다.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들은 신분에 따른 여러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그러한 특권을 누리는 것에 상당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의 2천 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나서 용감하게 싸웠다고 합니다.

영국도 빼놓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영국의 왕실은 나라가 위기에 놓이면 어김없이 국난타개의 선봉에서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대에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제2차 세계대전에 수송병으로 참전하였으며, 차남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손자 해리 왕자는 아프간 전쟁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신흥국가인 미국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습니다. 기부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처음부터 봉건적 계급제도 없이 만인이 평등한 민주국가로 시작한 미국에는 유럽과 같은 귀족 계급이 없었습니다. 이런 여건 때문인지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특정 계급의 책무가 아니라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기부문화로 만들어집니다.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역사가 꽃피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가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등장하게 되고, 그들은 기부문화의 전통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미국 기부문화의 시발점에는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가 있습니다. 카네기는 65세가 되던 1900년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엄청난 수익을 내던 자신의 철강회사를 5억 달러에 처분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자금으로 자선활동을 시작하여 여생을 ‘위대한 기부자’로 보내게 됩니다. 카네기 이후 존 록펠러, 헨리 포드 등이 이어서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해 재단을 설립했고,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테드 터너 등에게 면면히 계승됩니다. 현재는 10만여 개의 크고 작은 재단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부자들은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경쟁적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호이며 최대의 기부자인 빌 게이츠는 “부의 사회 환원은 부자의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선행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 이제 미국인들은 기부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할 극빈층을 제외한 미국인 대다수가 어떤 형태로든지 기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개인들의 기부가 총기부액의 80%에 이른다는 최근의 통계가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 줍니다.

카네기 이후 한 세기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기부의 전통이, 부자들의 미덕에서 미국사회 전체의 힘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미국의 부자들이 나눔의 실천을 통해 과거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를 새로운 형태로 정착시킨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의 역사는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수난 자취에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온몸을 던진 훌륭한 선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등장합니다. 그들의 애국심과 의기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설명하는 서구 노블레스들의 강력한 도덕적 권위의 원천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근대사에서만도 그런 인물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사회에 공헌한 부자로는 경주 최 부자 집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가문은 무려 10대의 300년에 걸쳐 만석꾼의 재산을 유지하면서 수많은 선행과 독립운동의 후원자 역할을 통해 부자로서는 드물게 존경과 칭송을 받는 집안입니다. 최 부자 집안은 권력을 멀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했으며,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검소하게 살며 자선을 베풀었다. 그들은 항일운동과 교육사업에 전 재산을 바치는 것으로 기나긴 부의 세습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우당 이회영 가문 또한 우리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를 논하는 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집안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은 만주에다 무력항쟁 기지를 설립할 구상을 하고 재산을 모두 처분한 뒤 1910년 12월 추운 겨울날 60명에 달하는 대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떠났습니다. 그때 처분한 재산이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 원에 이르는 거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 만주로 간 우당 6형제는 그 자금으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의 중추기관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기업인으로서 본보기가 되는 인물은 유일한 입니다. 유일한 만큼 인생의 편차가 큰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한 세기 전 불과 10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생에서 경영자로 성장하였고,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고국에 돌아와 민족기업을 일으키고는 항일투쟁을 위해 미 육군 전략정보처(OSS)의 특수요원으로 변신하였습니다. 해방 뒤에는 제약업체를 크게 키우고 교육기관을 설립하였으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가운데 세상을 떠난 인물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지난날에 존재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나눔의 철학으로 승화되어 계승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재벌들이 사회공헌에 앞장서기도 하고 풀뿌리 기부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는 있으나,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 반열에 들고 있는 나라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기부문화가 조성되려면 먼저 사회 지도층의 모범적 기부가 많아져야 하며, 기부자를 영웅으로 대접하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기부에 대한 교육이 늘 이루어져야 하고, 기부를 장려할 수 있는 여건과 조세제도도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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