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자신의 말 한마디가 인권조례 폐지로까지 연결될 줄은 안희정 충남지사도 몰랐을 것이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동성애 관련 질문에 “리버럴하다”며 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기독교계의 반발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부메랑이 된 측면이 크다.
이를 접한 지역 기독교계는 강경 대응에 나섰고,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와 인권단체 등이 인권조례 지키기에 나서면서 충남은 수개월간 극한 충돌을 겪었다.
안 지사로선 개인의 소신을 밝힌 것이겠지만, 도정에 미칠 영향을 생각했더라면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 바로 이점이다.
안 지사는 자신도 20년 전에는 성에 대한 고정화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안 지사가 지금처럼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추측컨대, 안 지사의 남다른 글로벌 마인드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셈을 해보진 않았지만 안 지사는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도정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갈 때가 적지 않다.
특히 인권조례 폐지안을 놓고 찬반 단체 간 매일 성명전이 이어지고,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충돌이 벌어졌을 때에도 안 지사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 중이었다.
안 지사는 복귀 후 기자간담회에서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는데, 그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왜 인권조례를 둘러싼 극한 충돌을 그런 식으로 해결할 생각은 안했는지 납득이 안 간다.
“갈등의 현장에 정작 안 지사가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안 지사는 갈등의 과정 역시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라고 여기는 듯하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그 논의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거나 본질에서 벗어났을 경우에는 안 지사가 뒷짐 지고 있어선 안 된다.
안 지사가 스위스 출장 대신 도의회 양당 지도부와 머리를 맞대 절충안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인권조례 조문 중 논란이 큰 제8조(인권선언 이행)를 일부 손봤더라면 폐지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차피 자유한국당이 문제 삼은 것은 이 대목이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반발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권도정 전체를 중단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중재안에도 자유한국당이 폐지를 강행했다면 더 큰 역풍이 있었을 것이다.
안 지사는 도의회 임시회가 끝나자 마자 다시 호주로 출장을 떠났다. 물론 그쪽의 초청에 응한 것이다. 안 지사는 잦은 해외 출장에 대해 송구하다면서도 대한민국 지방정부를 대표해 가는 것인 만큼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지사로서, 그런 초청이 있다 할지라도 “살펴야 할 도정 현안이 너무 많아 참석이 어렵다”며 정중히 거절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도민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와 박수를 받지 않았을까?
안 지사는 호주 현지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올 것이다. 그것을 도정에 접목시키기 위해 적극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안 지사의 글로벌 마인드와 도정의 현 주소 간 괴리감이 너무 크다면, 공직사회는 물론 여론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공교롭게도 안 지사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당진에서 AI 의심축 신고가 접수됐다. 안 지사는 도 방역대책본부의 본부장이다. 또 다시 악몽이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리더는 때로 특별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존재다. 지금 안 지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도정이다.
남은 임기 4개월여 동안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아닌, ‘도지사 안희정’으로서만 바라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