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 흑산도①]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 흑산도①]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 승인 2018.02.22 17: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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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관내 지도(붉은 선) <네이버지도>
흑산도 라이딩 코스와 고도표. 일주 거리는 30㎞ 정도 되지만 오르내리막의 연속이다. <구글맵>
굿모닝충청은 오늘부터 자전거여행가 김형규 씨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을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김 씨는 첫 번째 여행지 전남 신안군 흑산도를 시작으로 목포, 김천 등 우리나라 유서깊은 역사문화도시를 자전거로 답사할 계획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목포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내항의 끝자락인 비금도를 지나 탁 트인 망망대해로 진입하자 잔잔했던 파도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수백 명을 수송하는 대형 여객선이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쳤다. 일행 가운데 몇 명은 벌써부터 뱃멀미에 고개를 가누지 못했다.

“여기로 귀양을 보내면 돛단배를 타고 가다가 이런 파도에 뒤집히거나 섬에서 평생 나오지 못하고 죽겠구먼.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네.”

“손에 피 안 묻히겠다는 거지. 탈출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채 만한 파도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여객선에 생명을 맡긴 게 못내 불안한 듯 동호회원 몇 몇이 자조 섞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목포 앞바다에 촘촘히 박힌 880개의 섬(유인도 72개‧무인도 808개)이 목포시가 아닌 신안군 자치단체에 속했다는 건 이번 라이딩(지난해 8월 하순)을 통해 처음 알았다.

신안군하면 앞바다에 수장된 보물선이나 갯벌, ‘몹쓸 사건’이 전부였다. 신안 앞바다라고 해서 몸통은 육지이겠거니 했는데 연륙교만 없다면 신안군은 순수하게 수백 개의 섬으로만 구성된 자치단체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신안군은 현재 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국제사회에 ‘천사의 섬’이라 홍보하고 있단다.

목포항 앞 다도해국립공원 지도를 확대해보면 어디가 섬이고 바다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잔잔한 호수 같은 내해(內海)지만 비금도와 도초도를 벗어나면 파도가 집어삼킬 듯 사나워진다.

비금도에서 40여㎞를 파도와 사투하면 흑산도에 다다르고 18㎞쯤 더 모험을 감행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최고 관광지였던 홍도가 나타난다.

동호인들이 목포항에서 자전거를 여객선에 선적하고 있다.
흑산도항 앞에 세워진 해안누리길 안내표지판.

‘천사의 섬’ 신안 다도해국립공원
황해시대를 여는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신안 다도해국립공원은 불과 100-200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뱃길로 인식됐다. 대역죄인은 한양에서 목포까지 육로로 이송된 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비금도나 우이도에서 일단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이도까지는 내해라 큰 어려움 없이 당도할 수 있었지만 흑산도까지 가는 건 쉽지 않았다. 당시 죄인 호송은 해풍과 조류를 잘 아는 현지 뱃사람에게 맡겼을 것이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며칠씩 섬에 갇혀 불안한 나날을 지새웠을 것이다.

초기 조선시대에는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형법전으로 적용했다. 장형과 함께 2000리에서 3000리까지 유배를 보내는 법인데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좁아 적용할 수 없었다. 한양에서 최장거리인 남쪽 섬으로 내쫓으면서까지 중국의 입맛에 맞추려 했다. 중국의 지배권이 명에서 청으로 바뀐 이후에도 변함없었다. 흑산도, 제주도, 거제도는 우리나라 중죄인의 3대 유배지였다. 바다를 ‘죽음의 철조망’으로 기피하고 바닷사람을 멸시한 건 후세에 뼈아픈 일이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흑산도일주를 위해 항구에서 출발하고 있다.
흑산도내 신안철새전시관을 지나치고 있다.

2시간 가까이 파도 롤러코스터를 탄 뒤에야 흑산도항에 도착했다. 새벽 4시 대전에서 차량으로 이동한 지 6시간 만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개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는 자전거를 화물로 싣는 제약이 많다. 다만 폴딩 미니벨로를 갖고 있다면 다양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거리 여행을 편리하게 다닐 수 있다.

흑산도항에 내려 기념사진을 찍고 간단히 휴식을 취한 뒤 오전 11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해변의 부두와 하늘의 구름 카펫 띠가 적당한 너비로 스타트 라인을 만들어줬다.

정약전(1758-1816)‧최익현(1833-1906) 등 정적으로부터 쫓겨난 많은 선대 양심수들은 초죽음이 된 상태에서 흑산도에 내려 이 길을 걸어 올라갔을 것이다. 어느 규모의 배를 타고 어떠한 항로로 몇 시간을 항해한 뒤에 흑산도에 도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적 입장에서 보면 압송 도중 객사하길 바랐을 것이다. 정약전과 형제인 정약용을 비롯해 김만중 윤선도 김정희 허균 등 천재적인 문예인들도 유배생활을 했다. 단종 연산군 광해군도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뒤 각각 영월, 강화도, 제주도에 감금됐다. 대다수 사방이 물에 둘러싸인 유배지였다.

신안군 흑산도 진리 초령목 자생지 표지판. 초령목은 제주도와 흑산도에서 자생한다.
흑산도 진리 성황당.
흑산도 해변길 라이딩 중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컷.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우리는 바다를 경원시하고 대륙을 통해서만 문물을 교류하려 했다. 명나라와 청나라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는데도 뒷다리를 움켜잡았다. 포르투갈인 일본 표착 조총 기술 전수 이후 교류(1543년), 임진왜란(1592년), 네덜란드인 박연 제주도 표착 억류(1627년), 하멜 제주도 표착 억류(1653년), 미국 페리 함대 일본 내항(1854년) 등 새 지평을 열 기회가 우리나라 근해와 일본 해양에서 시시각각 나타났는데 3면의 바다를 꽁꽁 걸어 잠갔다. <계속>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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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우 2018-03-01 14:06:14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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