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 마라
네가 우는 걸 알면
앞 못 보는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시겠니
휠체어를 탄 아버지가
얼마나 걷고 싶어 하시겠니
꾸려나갈 일이 막막하겠지만
그 집안에
너를 묻을 때까지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내가 대신 울께
내가 울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모르거든
울면 울수록 눈부시다고 하거든
울지 마라. 기쁜 날 왜 우느냐, 예쁘게 화장한 네 얼굴이 얼룩지지 않도록 제발 울지 마라. 같은 하늘에 비록 산과 강과 바다가 막혀 있지만 어디 숨 쉬는 곳이 다르다더냐. 네가 울면 못난 애비의 슬픔의 강에는 둑이 무너진단다.
누가 뭐래도 예쁘고 착한 내 딸아! 제대로 잘 키우지 못한, 넉넉하게 넣어 보내주지 못한, 허명(虛名)이라도 좋으니 네가 자랑스럽게 말할 자랑거리 하나 없는, 지난날, 네 잘되라는 이유 하나로 수많은 억지 부리고 호령했던 상흔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달려나와 예쁜 너의 웨딩드레스에 매달릴까 두렵구나.
너의 엄마, 할머니들이 겪었을 기쁨과 슬픔의 이중주가 그렇게 다르진 않으리라. 너 또한 이 애비의 초라한 모습을 기억하려 하지 않을 테니 울지 마라. 세월이 감에 따라 공간이 바뀌겠지만 넌 영원히 변치 않고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단다. 너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그 선물을 너의 남편에게 돌려주듯이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럼, 기뻐도 눈물이 나는 거란다. 무얼 어떻게 이 감정을 쓴단 말이냐? 사랑한다. 애비 걱정은 말아라. 범사에 감사하고 살기를 바란다. 이렇게 27살의 꽃처럼 예쁜 딸은 더 예쁘게 피기위해서 준비한 삶의 과정을 거쳐 가듯 제곁을 2006년 6월24일 떠나갔습니다. 그날 장마 진다던 하늘은 맑게만 펼쳐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