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 흑산도②] ‘어둠과 무서움’을 거부한 선비의 자존심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 흑산도②] ‘어둠과 무서움’을 거부한 선비의 자존심
‘흑산’, ‘자산’, ‘현산’ 논란
  •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 승인 2018.03.03 13: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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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은 오늘부터 자전거여행가 김형규 씨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을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김 씨는 첫 번째 여행지 전남 신안군 흑산도를 시작으로 목포, 김천 등 우리나라 유서깊은 역사문화도시를 자전거로 답사할 계획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흑산도 12굽이길을 거칠게 올라가면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나타난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근처 전망대에서 바라본 흑산도 전경.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흑산항에 내려 항구앞 마트에서 음료와 간식거리를 구매한 뒤 흑산 일주로를 돌기 시작했다. 시계 역방향으로 비치호텔과 철 지난 배낭기미해수욕장을 지나 좌측으로 신안철새전시관 정자 앞을 통과했다. 벌써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흑산도는 일주로를 한 바퀴 도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수시로 오르내리막이 반복돼 얕잡아볼 코스가 아니다. 항구에서 내려 곧바로 라이딩을 시작한다면 경관감상과 인증샷, 라이딩을 합쳐 3-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육지에서 흑산도로 오는 것만큼 섬 내부의 지세가 만만치 않다.

옛날 흑산도로 유배령이 떨어졌을 때 죄인은 차라리 육지에서 죽기를 원했을지 모른다. 육로로 목포까지 쫓겨 내려가는 강행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빠져 죽기 십상이었다. 망망대해에 수장되는 원혼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서 흑산도에 도착하더라도 평생 거기서 썩어야 한다.

‘흑산도’(黑山島)라는 섬이름도 과거에는 꺼림칙했을 것이다. 같은 섬이라도 인근의 진도(珍島), 완도(莞島)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진도의 진(珍)자는 ‘귀하다’는 뜻이거나 돌(石)을 의미한다. 완도의 완(莞)은 웃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도나 완도는 육지에 인접해 내해나 다를 바 없지만 흑산도는 탈출은커녕 면회 오기조차 힘든 ‘빠삐용의 섬’이었다.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인근 우이도에서 생을 마감한 조선의 대표적인 학자가 정약전(丁若銓‧1758-1816)이다. 정약용과 형제지간인 그는 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 때 흑산도로 유배됐다. 천주교를 믿은 죄 때문이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근처 전망대에서 바라본 흑산도 전경.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근처 전망대에서 바라본 흑산도 전경.
전망대에서 다시 출발하는 자전거여행자들.

빠삐용의 섬 흑산도
정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생물에 관한 학문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펴냈다. 여기서 자산(玆山)이란 용어가 흥미롭다. 자산의 ‘玆’는 ‘검다’라는 뜻으로 ‘자’ 또는 ‘현’으로 읽는다. 천자문의 하늘천 따지 ‘검을현’인 ‘玄’은 ‘검다’이외에 ‘오묘하다’라는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데 ‘자’(玆)는 ‘검다’이외에는 쓰임새가 많지 않다.

‘자산어보’는 흑산도에서 관찰한 수산생물에 관한 기록이므로 ‘흑산어보’(黑山魚譜)로 쓰여야 마땅하지만 정약전의 생각은 달랐다. 선비이자 양심수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흑산도의 ‘黑’의 어감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던 듯하다. 이 때문에 그는 ‘黑’보다는 어감이 나은 ‘玆’를 쓴 것으로 보인다.

자산어보의 서두에는 ‘余謫黑山 黑山之名 幽晦加怖’(나는 흑산에 유배와 있어 흑산이란 이름이 어둡고 무섭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中)

그렇다면 ‘玆’의 독음을 ‘자’로 할 것인가 ‘현’으로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이럴 때 정약전이 책표지를 한글로 썼다면 문제가 깨끗이 해결됐다)

흑산도 지도바위 전경 안내판. 앞에 보이는 바위 중앙의 구멍이 우리나라 지도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채색을 한 옹벽과 어우러진 해안도로.
흑산도 일주도로 준공 기념비.
흑산도 관광 안내판.
흑산도 역사문화관광의 백미 유배문화공원입구.

학계는 지금 ‘자산어보’와 ‘현산어보’로 의견이 나뉘어져 있다. 그간 학계는 보통 ‘玆’는 검다는 뜻일 때 ‘자’로 발음했기 때문에 ‘자산어보’가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현산어보’를 주장하는 측은 흑산도를 정약전 후학이 ‘현산(玄山)’이라고 기록했다는 점과 정약전의 호가 ‘玆山’이라는 점을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철새전시관부터 시작된 고갯길이 뱀의 용트림처럼 굽이굽이 비틀어진다. 흑산도 일주로의 하이라이트인 12굽이길을 숨가쁘게 오르니 ‘흑산도아가씨노래비’가 나타난다. 흑산도아가씨는 1969년 개봉된 윤정희‧남진 주연의 영화지만 이미자의 노래로 더욱 유명하다. 영화와 노래의 타이틀인 ‘흑산도아가씨’는 요즘 ‘홍어아가씨’로 대체되고 있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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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만 2018-03-04 10:59:56
쉽사리 짬내서 가지 못할곳.역사와 인물까지 더불어 구경하니 재미지네요^^ 필력의 김작가 다음 이야기 기대해봅니다.~~ ㅎㅎ

oms 2018-03-04 08:08:31
김 여행작가님 멋진 인생이십니다. 자전거 여행 해보십네요

여행자 2018-03-03 18:31:20
자전거로는 어렵겠지만ㅋ 흑산도는 꼭 가보고 싶네요

kusenb 2018-03-03 16:53:30
흑산도 풍광이 너무 매력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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