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도마큰시장으로 나간 봄나들이
[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도마큰시장으로 나간 봄나들이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73)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3.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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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봄이 코앞에 왔다. 볕이 점점 나른해지는 대신 먼 산은 알아챌 만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주변이 속달속달 시끄러워지는 봄날의 초입, 무작정 도마큰시장을 찾았다. 무작정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주머니에 만 원짜리 두세 장을 꽂아 넣는 일을 잊지 않았다. 계백로 도마시장 정거장을 지나 도마사거리로 방향을 잡고 우회전해 제3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료는 1시간이 무료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왠지 뿌듯하다. 차에서 내리자 주차장 옆 공터에는 초로의 아저씨들이 모여앉아 볕을 쬐며 이런저런 세상사로 소일하고 있다. 전형적인 봄날의 풍경이다. 평일 낮 시간이라 전체적으로 한산하지만 아저씨들의 두툼한 옷차림은 아직 계절의 털갈이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도마동이라는 동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자르는 칼 받침을 떠올린다. 그러나 도마동은 동을 둘러싼 주변의 산 모양이 도마뱀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변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도마뱀을 떠올리며 골목길을 따라 시장의 도마사거리 쪽으로 입구로 향한다. 시장에 들자 제일 먼저 바닥에 앉아 데친 나물을 그릇에 담고 있는 할머니를 만난다. 얼굴에 그늘이 깊다. 아마도 봄볕이 밝아서 그리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화사한 스카프들이 지나는 이를 맞는다. 일정한 간격으로 붙여진 작은 간판들에는 각각 점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간파에 적힌 이름이 똑같다. 굉장히 큰 점포가 있는 것이다. 도마큰시장의 대표선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대일의류이다. 대일의류는 1972년, 도마큰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때부터 46년째 시장과 같이하고 있다.

지금 도마큰시장은 도마동 131-41번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당시 버드내 일원에는 피혁공장과 직물공장, 방직공장, 그리고 조폐공사 등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일대는 공장과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일이 끝나면 이들이 집으로 향하기 전에 장을 봐야했다. 이런 필요로 시장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이렇게 주택가에서 태어난 시장이라 사람들이 사는 골목골목을 따라 성장해나갔고 ‘ㄷ’자 형태로 넓어져 지금은 총 길이가 750m에 달한다. 현재 하루 평균 1만8천 명이 찾고 468개 점포와 1천2배여 명이 일하는 대규모 시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시장과 함께 태어나 성장하고 또 어려운 시간을 같이 견뎌온 대일의류는 처음에 액자와 소품을 파는 작은 가게였다. 그리고 의류업으로 업종을 바꿔 큰 성공을 거뒀다. 월급날이면 근처에서 일하는 여성근로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 본 의류점은 전통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1~2층에 걸쳐 넓지만 아기자기한 구조에 온갖 의류와 소품들을 갖추고 있다.

시장 길을 따라 유등교 방향으로 걷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건어물가게를 비롯해 젓갈, 채소 육류 등이 주인공인 골목으로 들어선다. 바로 큰 목소리가 들린다. 시장 안에서 큼직한 카트를 밀며 물건을 나르는 지긋한 아저씨가 지나며 상인들과 나누는 대화이다.

“오늘은 다 나물이네, 다 나물이여. 아, 점심이 늦으셨네.”

얼른 길을 비키고 나니 살짝 비릿한 나물냄새가 물큰하다. 봄은 나물냄새와 함께 오는 것이다.
두어 집 건너 채소가게가 시끄럽다. 빨갛게 입술을 칠한 할머니 한 분이 냉이를 비롯해 몇 가지 채소가 담긴 봉투를 들고 주인과 흥정이 한창이다. 덤을 요구하는지 가격을 깎으려는지 언성이 오른다. 얼굴에 웃음기를 띤 사람 몇이 모인다. 그러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갑자기 구성진 강원도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손님 할머니가 주인에게 노래로 공격을 가한 것이다. 모두 깜짝 놀랄만한 전문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웃으며 흥정을 마친다. 옆집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엿듣자니 시장 안에서 유명인인 듯하다. 채소가격이 문화가 되고 웃음이 되는 자리이다.

주머니 속에 있는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건어물상으로 다가갔다. 당차보이는 주인아줌마가 반갑게 맞는다. 먼저 김을 들어 가격을 물었다. 바로 다른 김을 들어 보여준다. 조금 비싸지만 그거보다는 돌김이 맛있다는 추천이다. 가격을 묻기도 전에 돌김은 비닐봉지에 담긴다.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이 더 느리다. “이 미역 좋아요. 싸게 줄테니까 가져가요” 봉지는 두 개가 된다. “낼모레 정월대보름인데 땅콩은 샀어요?”, “아, 아뇨”, “그럼 땅콩이랑 호두랑 미리 사놓아야 되니까, 지금 사요. 나중에 오면 제대로 못 사요.” 좋다, 싫다 답을 내놓기도 전에 대보름 부럼까지 담겨 봉지 네 개가 손에 들려있다. 순식간에 강매를 당한 것이다.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마지막 발악, “주차권 하나 주세요!”, “한 시간 무료고 30분에 2백 원이니까 싸잖아요. 얼른 가보세요.”

주차장을 나서며 주차권을 건네자 지긋한 주차관리 아저씨가 손을 내민다. “4백 원이요.” 그런데 동전이 없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1만 원 지폐를 꺼냈다. 아저씨의 얼굴에 잠깐 난감한 기류가 흐른다. “그냥 가세요. 시장에 자주 오시고.”

정말 자주 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도마큰시장을 나섰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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